까마귀처럼 살아남기
가장 조심해야 할 한 글자가 있다. ‘불(不)’. 삶의 희망이 흔들리고, 마음이 멎는다. 세상은 그 글자 하나로 뒤집힌다. 우리는 살아가며 얼마나 자주 ‘불’을 입에 담는가. 그 어떤 말보다 조용히, 깊게, 인간성을 갉아먹는 단어이다. ‘불’이라는 글자를 통해 욕망과 삶의 균형, 자연의 이치를 되새긴다. 지금은 더 가지려는 힘이 아니라, 덜 가지는 용기다. 살면서 가장 멀리해야 할 글자가 있다면, 단연 ‘불(不)’ 자일 것이다. 불안, 불면증, 불행, 불가능 등등. 단 한 글자만으로도 삶의 긍정을 바꾸어 버린다. 특히 ‘불합격’, ‘수술 불가능’ 같은 말은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인에게도 마음과 시간을 멈추게 한다. 음식도 그렇다. 자연에 가까운 음식은 장수를 돕고, 인공적이고 과한 것은 병을 부른다. 돈벌이 역시 같다. 이치에 부합할수록 경제적으로 불리해진다. 재물은 순리를 거스를수록 빠르게 축적된다.
그러나 삶의 끝에 가서는 분명히 알게 된다. 한 사람은 건강하게 오래 살고, 또 다른 사람은 병에 의지한 장수를 맞이한다. 물질의 뿌리는 고통에 있다. 그래도 초가집에서 웃으며 사는 것보다 울면서 기와집에 사는 것을 선호한다. 착한 사람은 이 땅에도 필요하지만, 하늘에도 필요하다. 욕심 많고 이기적인 사람은 하늘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오래 산다라고 한다. 삶은 종종 역설로 가득하다. “가난하면 까마귀처럼 살아라.” 이는 빼앗으라는 말이 아니다. 까마귀처럼 틈새를 찾고, 상황을 관찰하고, 살아남으라는 의미다. 상업 행위에서 이익을 좇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지나치면 파멸을 부른다. 자연은 늘 경고 없이 그 대가를 안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이 들어 재물이 몰릴 때 조심하라는 말도 있다. 왜 하필 노년일까? 기질이 약해지는 시기에 욕망만 커지면, 균형이 깨진다. 결국 스스로 삶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가을이 지나면 생명을 거두는 숙살지기가 오듯, 달도 차면 기운다. 그래서 인생도 항상 ‘조금 모자란 듯’ 해야 한다. 진짜 행복은 그 모자람 속에 숨겨져 있다. 닭은 동료가 물에 빠지면 도망치다가 곧 따라 빠진다. 그래서 멍청한 사람을 두고 ‘닭대가리’라 한다. 사람은 영물이라 하면서도, 물질의 넘침이 파멸임을 알면서도 따라 한다. 닭과 사람의 차이는, 닭은 몰라서 하고, 사람은 알고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재물을 두고 ‘피와 같다’는 말은, 그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우리는 안다. 한 번의 실수가 생명을 잃게 한다는 것을. 그러나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아니겠지. 잘 피해 가겠지." 이 자기 합리화가 과잉 욕망을 키우고, 끝내 파멸을 부른다. 욕망은 원자폭탄처럼 퍼진다. 선택과 결과는 무수히 많고, 통제는 어렵다. 보이스피싱이 사라지지 않고, 마약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쾌락은 쉽게 자제력을 망가뜨리고, 그 재범률은 압도적으로 높다. 그래서 인간의 부정적인 행위는 억압이나 법으로는 막을 수 없다. 결국,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인성교육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세월이 흐른 뒤에 ‘불’ 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AI가 오류를 내는 것보다 수천 배 더 위험한 것이, 인간의 통제되지 않는 재능이다. 잘 쓰면 그 혜택은 은혜가 되겠지만, 반대일 경우 오점만 남긴다. 역사는 평화보다 전쟁의 시간이 더 길었다. 지금도 TV를 통해 수많은 갈등을 목격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성 교육은 여전히 경영학과 1등의 기쁨에 내몰리고 있다. ‘사람 위에 사람 되는 법’을 배운다. 그러니 인간의 도리를 벗어난 행동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명문대 출신들조차 다수가 불안정하고 불행하게 산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행복지수’라는 개념이 중요해졌다. 강대국이라 불리는 나라들, 미국이나 유럽은 이 지수에서 상위권에 들지 못한다. AI 시대에 하버드보다 인문서적만 4년간 읽는 대학이 오히려 취업률 1위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는 서양 사회가 여전히 졸업장을 중시하면서도, 그 기반이 되는 철학과 인문에 목말라 있다는 증거다. 우리나라는 21세기 중심 국가이다. 예의와 인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에 기술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균형과 조절. 우리는 이미 갖췄다. 이제는 욕망을 비워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때다. 우리는 알고도 넘치고, 알면서도 욕망을 따르고, 편익을 위해 진실을 외면한다. 우리가 진짜 갖추어야 할 것은 소유보다 절제이다. 그래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