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기간

따뜻한 햇살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by 송달

돈은 사회 전체 공유물이다.
네 것과 내 것 구분은, 단지 잠시 소유했을 뿐이라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돈은 사람 사이를 건너 다니며, 각자의 조건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게 한다.




돈은 유형이면서도 무형이다.
눈앞에 잡히는 듯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돈은 사람의 손에 의해 움직이므로, 벌 기회는 많다.
문제는 그것을 조금씩 얻느냐, 아니면 한 번 크게 얻느냐에 달려 있다.


옛말에 ‘작은 부자는 부지런하면 되고,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 했다.
먹고사는 일은 몸을 움직이면 가능하다.
하지만 큰 부자는 많은 사람에 대한 책임이 있기에 하늘의 도움을 받는다.


주식 거부들은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라고 조언한다.
이는 단순한 투자 원칙을 넘어 돈의 철학을 담고 있다.
돈은 물처럼 흐른다.
누구나 퍼 담을 수 있지만, 그릇의 크기에 따라 넘치기도, 모자라기도 한다.
욕심을 부리면 착오가 생기고, 결국 놓친다.
이것이 돈의 묘리다.


재물의 기준은 예로부터 황금과 땅이었다.
화폐는 교환의 도구일 뿐이다.
돈 버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상에 생각대로 되는 일은 없다.


그래서 갑부의 한마디나 서민의 한마디나, 그 가치가 다르지 않다.
갑부들은 검소와 겸손을 말하지만, 서민은 애초에 그렇게 살아간다.
사치를 부리지 않고 하루를 견디는 일상 자체가 겸손이자 검소다.


우리의 행복은 희로애락 속에 있다.
몸과 자손이 있으니 삶을 위해 재물이 필요할 뿐, 재물이 삶의 목적은 아니다.
진짜 부자들도 비법을 알지 못한다.

어찌해 모아도, 돈의 흐름은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왜 부자도 망하는가?
천석꾼, 만석꾼도 흥망성쇠를 겪는다.
그 까닭은 아무도 모른다.
옛말에 ‘자식과 돈은 자랑하지 말라’ 했듯, 본인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은 단지 잠시 머무른 공유물일 뿐, 의미를 두기 어렵다.


요리는 레시피대로 하면 맛이 나고, 자동차는 매뉴얼대로 조립하면 완성된다.
의료 기술도 규칙을 따르면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그런데 왜 돈은 매뉴얼대로 움직이지 않는가.


돈과 명예를 얻은 이들도 어쩌다 그 자리에 오른 경우가 많다.
물론 기본적 노력이 있었겠지만, 그것을 벌고 지키는 확실한 방법은 없다.
S전자도 64K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흑자가 나니 투자를 이어갔을 뿐이다.




실패를 거듭해야 비로소 성공이 자리 잡는다.
실패 속에서 보완점을 찾고, 상극을 경험하며, 긴 시간을 들여야 한다.


가진 자들의 자랑을 들으면 잠시 부럽고 감동이 온다.
나도 부자가 된 듯 행동해 보지만, 현실은 다르다.
물질은 진화와 시간을 필요로 하며, 우리는 하늘 아래 살기에 운과 노력을 함께 써야 한다.


평범한 삶은 노력으로 충분히 유지된다.
그런데 가진 자의 삶에 현혹되어 힘들어지는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공원 벤치에서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젊어 한때 금송아지 한 마리쯤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재물은 서산에 걸린 구름처럼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오늘날은 정보가 넘쳐 오히려 혼란스럽다.
얼마를 가졌다고 자랑하다가, 훗날 재물이 사라지면 무엇을 말할 것인가.
의도적으로 벌었다 해도, 그 또한 인간이 다 알 수 없는 흐름 속의 일일 뿐이다.




사진: Unsplash의 Mariia Shalabaie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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