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부자는 평온하다

진실 유무를 알 수 없음이 현대 정보다

by 송달

흔히 부자를 떠올릴 때 화려함이나 특별함을 상상한다.

부자는 결코 티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부(富)는 소리 없이 드러난다.

옷차림은 단정하지만 과하지 않고, 말투는 부드럽다.

가진 것을 나눌 줄 알되 생색을 내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목소리 큰 사람이 중심이라 착각하지만,

진짜 중심은 언제나 고요한 사람이다.

어디서든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자리한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신뢰를 느끼고, 존중을 보낸다.




어릴 적 여자 친구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면 남자아이들이 장난 삼아 고무줄을 끊곤 했다.

그럴 때 여자아이들이 종종 하든 말이 있다.

"야, 이 머슴 아야, 저리 가라!"

70년대만 해도 이런 말투가 일상적이었다.


예전에 좀 산다는 집에는 꼭 머슴이 있었고,

'머슴아’라는 표현은 그런 배경에서 나온 말이었다.

부잣집 아이들이 자주 쓰던 말투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석아’라는 표현을 거쳐

요즘은 그냥 ‘친구’라는 말로 통일된 듯하다.




사람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수많은 고민을 한다.

그중 많은 부분이 ‘돈’에 대한 생각이다.

내가 있어야 세상도 있는 법,

그러니 나의 존립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재물은 그 존립을 지탱하는 실질적 조건이 된다.


법원의 분쟁 중 상당수가 물질과 관련되어 있고,

국가 간의 갈등도 결국 이권에서 비롯된다.

최근의 관세 분쟁만 보더라도 그런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예전에 사채로 유명했던 한 분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분은 평생 차용증 없이 돈을 빌려주었다고 한다.

놀라운 건, 단 한 번도 돈을 떼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비결은 ‘사람을 보면 정직함이 보인다’는 직관이다.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고 했지만,

그분은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 감각이 있었다.

아마도 상대방이 말을 할 때 드러나는 안정감,

그 속에서 정직함의 유무를 읽은 것이 아닐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나는 금융가의 큰손에게 물어봤다.

진짜로 돈 많은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느냐고.

그는 말했다.

“그 사람들은 걸을 때 발이 땅에 박히듯 무겁게 걷는다.”


자신감이 몸에 배어 있고,

그 자신감은 세상을 다 가진 자들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어느 사회이든, 어느 집단이든 부의 쏠림은 크다.

상위 몇 퍼센트가 전체 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들의 결정이 세상의 흐름을 바꾼다.


없는 자들의 권력은 정치일지 모르지만,

부귀가 인간 삶의 최종 목표처럼 여겨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른들은 "돈 나올 모퉁이가 죽을 모퉁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재물은 위험하면서도 강력한 힘이다.


어떤 성직자는 “처자식을 먹여 살릴 자신이 없어 홀로의 길을 택했다"라고 한다.

그 또한 재물의 무게와 책임을 반증하는 말일 것이다.


일상은 겉보기에 평화롭다.

뉴스를 봐도 희망의 메시지가 많아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말 못 할 삶의 고단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부자들은 자신에 대한 신뢰가 있고,

크게 시비가 생길 일이 없다.

웬만한 문제는 돈으로 해결된다.

그들만의 주거지, 모임, 세계가 있다.

그들만의 ‘바운더리’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오히려 더 평범해 보인다.

재물의 무게가 너무 크기에, 반대로 행동은 더 단순하고 조심스러워진다.

그 평범함은 삶의 여유에서 우러난 자연스러운 에너지다.


재물도 관성의 법칙이 있다.

일정 수준의 자산이 형성되면, 복리적 증식이 작동해

사용한 것보다 더 많은 부가 저절로 쌓인다.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부의 순환 구조 속에서 자동 부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 함께 존재함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부가 언젠가 흩어진다면, 결국은 우리 안의 누군가에게 옮겨올 것이다.




강남에 이런 일화가 있다.

한 사람이 부자들의 생활을 그대로 모방했더니,

어느 날 보니 자연스럽게 부가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욕심을 버려야 돈이 들어온다고 하고,

힘을 빼야 골프가 잘 된다고도 한다.

재물에 대한 집착을 덜면, 의외로 방법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여유 있는 자에게나 통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없는 사람은 오늘 하루도 급하다.

어찌 마음의 힘을 빼고 여유를 갖겠는가.


그래서 악순환은 계속되고,

부자는 점점 더 부를 축적하며,

가난한 자는 기회조차 멀어진다.




올해 내 운이 좋은지 궁금하다면, 철학관에 가지 않아도 된다.

내 주변을 보면 된다.

운이 바뀌는 시기에는 사람도 바뀌고, 나의 길도 바뀌며,

옷차림마저 달라진다.


돈은 사람에게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의 ‘수준’을 보면 내 운의 흐름도 짐작할 수 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은 그래서 진리다.

내 주변 사람은 나의 거울이다.


어른들이 자녀에게 ‘친구를 잘 사귀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이는 모임조차 가려가며 삶의 방향을 모색한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앞도, 옆도 돌아볼 틈 없이

그저 오늘도 성실히 살아간다.

‘일(一)’ 자는 성(誠)이라 하였다.


하나를 천직으로 삼아 열심히 살아간다면,

좋은 일이 올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스스로 행복하고 즐겁다면,

그 또한 괜찮은 삶이 아니겠는가.


산속에서 동떨어진 채 사는 어느 분이 말했다.

“너무 행복하고 좋습니다.”


행복은 결국

‘관점’과 ‘생각’의 차이 아닐까.



사진: UnsplashImam Kurnia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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