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은 나약함이 아니다
생각은 뻔한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해야 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해결해야 할 문제도 머릿속엔 또렷하다.
그런데 몸은 마치 멈춰버린 듯 바닥에 붙어 있다.
외적인 경제적 문제와, 내적인 마음의 상처가 겹칠 때,
우리의 몸은 스스로 보호 시스템을 가동한다.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스위치를 돌리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작동되면, 한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눈앞에 보석이 있어도 손을 뻗을 수 없고,
뒤통수로 날아드는 비난조차 피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움직임은 곧 에너지 소비로 이어진다.
그래서 몸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멈추는 쪽을 선택한다.
겉에서 보면 의욕이 없는 사람처럼, 혹은 우울증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다.
방법은 하나다.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는 것.
‘왜 나는 움직이지 못하는가?’를 받아들이는 순간,
몸은 그 범주 안에서 서서히 탈출을 시도한다.
특히, 재물로 인한 상처,
그리고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몸과 마음이 복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마음이 밝아지고, 손끝에 다시 힘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우리는 아주 천천히, 예전의 나로 돌아온다.
그건 회복의 징조이며, 생존 시스템이 켜지고 있다는 신호다.
사람의 마음은,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 모든 것을 잠그고 숨어버린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상처를 안고,
작은 세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문제는,
그 누구의 위로도 진짜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이겨내야만 하는 시간이 반드시 존재한다.
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다.
어릴 적, 아이가 불장난으로 작은 화재를 일으켰을 때,
그 어머니는 아이를 혼내지 않았다.
“불장난으로 놀란 마음에 또다시 공포를 안겨주면,
그 아이는 제대로 자라지 못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래서 혼내는 대신, 아이를 도닥였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듯, 아이의 마음을 먼저 달래주었다.
지금은 누구도 우리 마음을 그렇게 다독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병을 안고 살아간다.
마음의 짐이 너무 클 때는,
그 짐을 내려놓거나,
누군가 나눠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물질의 목표에만 몰두한 나머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질 여유조차 잃어버렸다.
사실, 말의 순서만 달라져도
상처는 작아질 수 있다.
먼저 마음을 보고,
그다음에 문제를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