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소일거리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허리와 다리와 몸이 성한 곳이 없이 몸이 정말 안 좋아지셨다. 명절 때마다 할머니는 항상 앉아 있으셔서 할머니가 걸어 다니시는 걸 잘 못 봤는데, 여기에 있으니 할머니의 행동을 잘 살펴볼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지팡이가 없으면 거동이 불편해서 밖에도 못 나가시고, 집에서는 거의 기어 다니다시피 하신다. 무릎에 불편하신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예전에는 할머니께서 온 식구들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고추와 깨, 깻잎, 토란, 고구마 등 직접 다 농사를 지으셨는데 이제는 몸이 불편해서 그마 저도 못하신다고 하신다. 그래서 할머니의 일과는 그저 특별한 거 없이 집에 있으며 하루를 보내신다. 그나마 봄이 오면 할머니에게 소일거리가 생긴다.
따로 심지 않아도 들에 나는 향긋한 봄나물들이 할머니를 반긴다. 할머니는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심심풀이로 쑥과 달래와 같은 봄나물을 캔다. 할머니가 먹을 만큼 그리고 운이 좋으면 장에 나가 조금 팔 수 있을 만큼을 캐오신다.
이번에는 비도 잘 안 오고 추워서 봄나물들이 많지는 않는다고 한다. 오늘은 할머니가 들에 나가 쑥을 캐오셨다. 내가 같이 간다고 했는데 가시도 많고, 넝쿨도 있어서 나는 못 간다고 말려서 할머니 혼자 갔다 오셨다. 내가 낮잠을 잔 두 시간 사이에 할머니는 한 바구니만큼의 쑥을 캐오셨다. 집에 오자마자 마루에 앉아 쑥을 일일이 손질하고, 두 주먹 정도 되는 양을 손질하고 “이 정도면 2천 원을 받을 수 있다”라고 하신다. 장작 한 시간 정도의 걸친 손질이 끝나니 버리는 양이 처음에 캐오신 양의 1/3이고 총 6 주먹 정도의 양이 됐다.
우리가 조금 먹고 다음 주 장에 가서 파신다고 하신다. 쑥 6천 원어치, 3명의 손님이 2천 원씩 구매해가면 3번이면 끝나는 양이다. 적은 양이고, 큰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 할머니는 오늘 하루를 보람차게 보낸 것 같아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집에 있던 날 보다 행복해 보이셨다.
그날 저녁은 할머니가 캐오신 쑥으로 쑥 파전을 해 먹었다. 쑥이 아직 어려서 쑥 향이 많이 나진 않았지만 할머니께서 무심한 듯 부쳐주신 쑥 파전은 앞으로도 비 오는 날마다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