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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선 Sep 19. 2019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_#001

ebs 다큐프라임-다른 아이들

<ebs 다큐프라임-다른 아이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_#001- 
 
화면 속 혜정은 커피를 좋아한다.
왜 그럴까?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언니 혜영은 이야기 한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왜 커피에 집착하는 걸까?
그러면서 커피에 대한
내 경험을 생각해봤다.
나도 커피를 좋아 했다.
내가 어릴 때  
“아메리카노커피” 그런 거 몰랐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아는 커피는 일명 다방커피.
예쁜 커피 잔에 
커피 한 수픈
크림 두 수픈
설탕 세 수픈
황금 비율로 제조해 마시면 
우아한 사람이 된 듯하다.
지금은 흔하디흔한 커피가
당시엔 귀한 음료 이었고
어른들은 나이가 어리면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
왜 안 되는지
이유도 설명도 해주지 않고
그냥 어른들만 마시는 음료라고만 했다.
엄마와 대학생인 언니가 커피를 마시면
그윽한 향기에 이끌려
청소년인 나와 동생은 
왜 안 되다는 건지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다 엄마와 언니가 없는 틈을 타서
몰래 먹을 땐 그 맛과 향기는
가히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좋았고
어른이 된 듯 한 묘한 해방감도 느껴졌다.
금단에서 풀려난 나이가 돼서는
마음 것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게다가 커피를 마시면 지성인처럼
우아하고 뭔가 있어보였다.
그러다 IMF 이 후 대량 생산돼는 
믹스 커피가 등장 하면서
동전만 넣으면 자판기에서 뚝딱 하고 튀어 나와 
언제든 먹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공원에서
자판기 커피 한잔은 
일상에 쉼표를 찍는 시간이가도 했다. 
게다가 믹스커피는 종이컵에 마시면 왠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프림이 몸에 안좋다는 뉴가 심심찮게 나오면서
원두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자판기 커피는 점차 지양하게 됐고
원두커피인 아메리카노 커피를 선호하게 됐다.
그렇다고 믹스커피를 완전히 등한시 한건 아니다.
피곤할 때 가끔 믹스 커피에 설탕 한 수픈 더해
달달하게 마시면 피로도 풀리는 같고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아 가끔 마시곤 한다.
그러던 커피를 장애가 심해지면서
점차 멀리하게 하게 됐다.
이유는 화장실 때문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다보니
접근 가능한 화장실 찾기가 쉽지 않아
좋아하는 커피를 자제하게 되면서
커피와 난 애증의 관계가 됐다.
가끔 다른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 향은 심적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마셔봐 괜찮아 그렇게 좋은 커피를 참으면서 살 필요 있어?”
“아니야, 참아야 하느니라, 커피 마섰다간 
화장실 가는 고생을 어찌 감당하려고”
그러다 유혹에 넘어가 커피를 마시면 영락없이
화장실로 직행하는 고행을 감당해야 한다.
하루는 이른 새벽에 목포행 기차를 탔다.
큰 맘 먹고 보온병에 따듯한 커피를 가득 담고
찐 계란으로 기차여행의 낭만을 만끽하고 싶었다.
기차 안에서 찐 계란을 먹고 커피를 마시니 기분은 좋았다.
“그래 이게 바로 기차여행의 정석이야” 한 것 기분은 업돼 있었다.
그런데 찐 계란은 목이 메이는 단점이 있어
커피를 두 잔씩이나 마시고 나서야 
계란이 쑥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곧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열차 안에 휠체어 접근 가능한 화장실이 있지만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중심을 잡아야 하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중심을 잃고 낙상이라도 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져 꾹 참고 있다 
목포 역에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런데 화장실 다녀온지 삼십분도 안 돼 
또 쉬가 마렵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화장실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접근 가능한 화장실을 찾아 쉬를 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그런데 삼십분 정도 지나 또 쉬가 마려웠다.
이를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지만
화장실 찾아 헤매다 겨우 발견하고
볼일을 마쳤다.
그날 아침에 커피 두잔 마신 대가로
하루 종일 열 네 번의 화장실을 가야하는
생고생에 시달리며 그날 저녁엔 
옴짝달싹 하지 못할 정도로 파김치가 됐다.
게다가 화장실이 없는 곳에서는
참다 참다 못해
기저귀에서 영역 표를 해야 하기도 했다.
내가 왜 괜한 짓을 했을까는 후해는
하루 종일 나를 괴롭게 했지만
커피는 장애가 있는 내게 
구성원 인이라는 결속 감과
어른이라는 증명이기도 하다.
그렇게 커피와 난 금기와 자유의 경계에서  
늘 고민의 대상이 됐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커피가
누군가 에게는 화장실 문제로 금기의 대상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어른이 되었는데도 제제의 음료 이기도 하다.
어쩌면 혜정은 어른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하려
커피를 자주 먹는건 아닐까? 
시설 생활 하면서 가끔 마셔보는 커피 맛은
내가 어릴 때 엄마 몰래 마셨던 커피의 맛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혜정이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른이 되면 마실 수 있다고 강요 하는것은 아닐까.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은 시설 생활에서의 
강요된 학습 때문인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탈 시설 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중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커피를 
마음 것 마실 수 있다는 것에서 
해방감과 자신이 어른임을 증명 하려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어른이 된다.
하지만 어른이 됐다고 
누구나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적 편견이 성인이 된 장애인에게 
아이 같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EBS 다큐 프라임 다른 아이들을 보고서..... 
 
https://www.youtube.com/watch?v=WUwwi5k_-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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