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콜택시 5시간 기다린 밤

한겨레

by 전윤선

<장애인 콜택시 5시간 기다린 밤>

그래도 여행을 멈주지 않는다

[6411의 목소리]

출처 : 한겨레 네이버

입력 2025.12.22. 오전 8:02 수정 2025.12.22. 오전 8:12


전윤선 | 무장애 여행작가

∣‘무장애 여행지’ 개척할 사람도 필요해요


나는 휠체어를 타고 대한민국 구석구석 여행하는 일을 한다. 여행 준비부터 쉬운 게 하나 없는 게 무장애 여행의 특징이다. 이동부터 식당, 화장실, 숙박, 여행지 동선까지 순조로우면 이상하다. 그럼에도 이 일이 나에게는 천직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게 ‘휠체어 탄 노마드(유목민)’라고 한다. 무장애 여행은 철저한 준비로 최대한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접근성 문제로 장애인들은 느닷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정이 못 되기 때문이다.


서울지하철 북한산우이역에서 1.3㎞를 휠체어로 이동해 우이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오늘 여행지는 우이령 고개다. 해마다 교현탐방지원센터에서는 장애인을 초청해 산악 휠체어를 타고 우이령 고개를 탐방하는 행사를 연다. 흙길은 울퉁불퉁했지만 여행 관록이 있는 내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북한산국립공원 우이령 구간은 4.5㎞ 정도로 전동 휠체어를 타는 내겐 양호한 거리다. 완만한 길을 따라 오봉전망대로 향했다. 평탄화 작업을 하지 않은 울퉁불퉁한 흙길이라 배수로에 흙이 쌓이면서 곳곳에 턱이 생겼다. 낮은 턱을 찾아 최대한 천천히 휠체어로 이동했다. 전망대 접근성은 무난해 휠체어 탄 나도 오봉전망대까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전망대를 둘러보고 다시 교현탐방지원센터로 발길을 이어갔다. 옛 사격장 옆 공터에는 오봉산 석굴암 가는 길이 있어 들러보려 했지만, 전동 휠체어로 갈 수 없는 급경사길이 이어져 안전을 위해 포기했다. 여행도 안전이 우선이다. 휠체어 타고 여행하다 보면 사고에 노출되는 상황이 빈번하다. 휠체어 바퀴가 터지거나, 제어장치가 망가진 적도 있다. 모터의 퓨즈가 나간 적도 있고, 휠체어 탄 채로 굴러떨어진 적도 있다. 휠체어가 지하철 단차를 넘지 못해 몸이 지하철 바닥에 떨어지면서 개구리처럼 쫙 뻗은 적도 있다.


내려오는 중간에 장애인 콜택시를 신청했다. 장애인 콜택시는 원하는 시간에 탈 수 없는 구조라 미리 연결 요청을 해야 한다. 요청 시간은 오후 4시26분. 교현탐방지원센터까지 내려가는 동안 차량 연결은 되지 않았다. 고갯길을 다 내려와서 주변 식당에서 저녁까지 먹었는데도 30분마다 ‘연결 지연’이라는 연락만 왔다. 예측할 수 없는 장애인 콜택시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하는 교통수단이다. 늦을 것 같아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밥을 먹으려 하면 바로 오고, 일찍 올 것 같아 기다리면 한없이 늦어지곤 한다.


자꾸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주변에 휠체어로 갈 수 있는 화장실은 없었다. 해는 지고 주변은 어둑해졌다. 인가도 드물고 식당도 문을 닫으려 했다. 계속해서 용변을 참아서인지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배는 여전히 아팠다. 소변은 이미 본 상태라 기저귀가 흠뻑 젖어 있었다. 야외 활동할 때는 기저귀 착용이 필수다. 이미 젖어버린 기저귀 때문에 불안한데 장애인 콜택시는 오지 않는다. 뱃속은 이미 전쟁 중이었으나 식은땀이 날 정도로 참으며 컴컴한 곳에서 장애인 콜택시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린 끝에 밤 9시가 되어서야 차량이 배차됐다는 문자가 왔다. 차량 도착 시간은 9시38분. 신청부터 차량 탑승까지 총 5시간12분 걸렸다.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는 일은 늘 겪지만 늘 적응되지 않는다. 화장실이 급할 땐 더욱 그렇다. 집에 도착해 화장실부터 찾아 들어가 전쟁을 종식시켰다. 무장애 여행은 원초적 본능마저 참아야 하는 고행의 시간이다. 극한 직업이다.


여행에서의 즐거움은 먹는 것도 한몫한다. 하지만 장애인 화장실이 없는 곳이 많아서 먹고 마시는 것은 최대한 자제한다. 휠체어 탄 여행자에게 맛집 여행은 그림의 떡일 때가 대부분이다. 문턱 없는 식당이 드물고 그런 식당을 찾아 들어가도 종업원이나 식당 주인의 문전박대가 다반사다. “휠체어 탄 사람에겐 밥 안 판다”며 나가라는 곳도 있다. “자리가 이렇게 많은데 나가라뇨” 하면 “여기 예약석이에요” 하는 곳도 많고, 대놓고 다른 손님에게 방해되니까 나가라는 곳도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손님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서 가지만 여러 장소에서 여러 형태로 계속되는 거부로 자존감이 무너진다. 그럼에도 무장애 여행 활동은 포기할 수 없다. 장애인의 여행 권리가 확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백퍼센트 무장애 여행지는 없을 것이다. 다만, 무장애 여행을 지향할 뿐이다. 무장애 여행의 위상이 높아지고 지평이 넓어져야 장애인도 보편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 계획대로 될 수 없는 인생에서, 장애인도 여행을 통한 일탈이 필요하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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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 첨성대 앞의 필자. 전윤선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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