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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Nov 04. 2020

연장자의 말, 다 들을 필요 없잖아.

결혼을 하고 아줌마가 되고 나니 주변에 많은 연장자들의 경험담을 듣곤 한다. 집안일은 최대한 못하는 척해라. 시어머니 앞에서 잘하는 거 보이지 말고 못한다고 해야지 나중에 괴롭지 않게 된다. 이외에 너무 많은 경험담과 시월드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곤 하는데 결론은 나는 모든 이야기들을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는다.

흘러 들을 것과 머릿속에 담아둘 내용을 그 자리에서 처리해 버린다. 왜냐면 나에게 유익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더 많기 때문에..

엄마들 모임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데 서로의 남편의 잘하는 점과 아니면 못하는 점 육아의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앞에서는 안 그런 것 같지만 서로 비교하고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그 후 후폭풍은 집으로 되돌아가면 남편에게 꽂히게 되는데 가령 "00남편은 요리도 잘하고 애도 잘 돌본다는데 맨날 누워서 뭐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입 밖으로 안 나와도 누워있는 뒤통수만 봐도 얄미울 수 있다. 비교하게 되면 끝도 없이 욕할 구석이 보이기 마련이니까. 가만히 있던 남편도 당황스러울 듯..

내가 일하는 곳엔 기혼 선생님 3명과 남자 친구가 있는 미혼 선생님 1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함께 수다 떠는 일이 간혹 있다. 어제는 시어머니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제일 연장자인 선생님이 이야기하셨다. "어머님한테 나는 냉정하게 대해. 말을 걸 때도 어머님~ 하고 호칭을 한 적이 없어, 형님들에게도 그렇고 " 이야기를 듣던 미혼 선생님은 " 저는 남자 친구 어머님한테 살갑게 대하고 싶은데 그런 걸 잘 못하겠어요~ " 이야기했다. "살갑 게 대하긴.. 냉정하게 대하는 게 좋아"

그 이야기를 듣던 나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는데 시어머니에게 살갑게 대하는 내가 마치 정답을 어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라 한마디를 했는데 "저는 타고난 성격이 애교가 많은 편이라 어머님한테 살갑게 대하는 게 편한 것 같아요~" 그랬더니 연장자 선생님께서 "아 그건 선생님은 친정엄마가 안 계시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이야기하시는 거다.

거기서 아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을 끝내면 되는 것일 텐데.프로 불편러인 나는 "그거랑 무슨 상관이죠?" 이 말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럴 때 앞에서 공감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리액션을 한다. 선생질에 타고난 리액션은 사회생활 이곳저곳에서 잘 발휘할 수 있다.

시어머니를 살갑게 대하지 않는 연장자 선생님의 경험은 선생님의 경험일 뿐 나의 삶이 아니다. 나는 나대로의 삶을 살고 그거로 행복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정답인 양 이야기하고 마치 "너는 그렇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거야" 이야기하는 건 좀 불편하다.

이런 불편한 경험들 덕분에 많은 여자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정말 생각이 맞는 한두 명의 친구와 정기적으로 만난다. 그 외에 만남은 피로감만 주기 때문이다. 나는 겉보기엔 아주 외향적이고 사람과 금세 친해지지만 까다롭고 예민해서 사람을 가리고 특정 선을 넘는 것 같으면 사람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적당한 선의 머물러 있는 게 편할 때가 있다. 그저 편하고 재밌는 농담만 주고받는 사이.

그 이상은 진정 마음이 통하는 친구 한 명과 내 남편이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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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 소속 직업 일러스트레이터

어린 딸아이의 삶에서 이제는 엄마가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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