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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Nov 26. 2021

담배피는 여자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담배를 피워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담배피는 여자처럼 생겼다는 얘기를 주구장창 듣고 살았다. 진짜 억울한 건 살면서 담배 한 개비도 손가락에 껴보지 못했다는 거다. 억울함이 쌓여서 일까? 나는 언젠가 죽기 전에 꼭 담배를 피워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몇 살 때 필지는 아직 미정)


​​​​


나와 가장 밀접한 흡연자인 남편은 내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 연애 때 딱 한번 담배 피우는 모습을 봤다. 그때 사랑의 호르몬이 대용량으로 나올 시기였으니 남편의 담배 피우는 모습은 꽤 멋지다고 느꼈다.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음)

​​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남편은 내 앞에서 매번 당당하게 “나 담배 끊었어.” 이야기하지만 쓰레기를 버리고 온 남편의 손에서 기분 나쁜 담배냄새가 올라온다. 비흡연자로 거짓 연기를 할 순 있어도 기분 나쁜 담배냄새는 지울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남편에게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말이 통하지 않을 땐 나도 똑같이 담배를 피우겠다고 협박을 해 본다. 그런 내 모습에 남편은 “내가 당신이 담배 피운다고 하면 뭐라고 할 것 같아? 나는 친절하게 당신 담배 불도, 붙여주지-“  하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 모습이 나를 더 열 받게 만든다는 걸 남편도 이미 알고 있을 테지.



​​​​

남편은 지금도 글 쓰는 내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펴봐도 된다고 허허 웃으며 이야기를 한다. 나는 참 이상하게 상대가 너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면 되려 하고 싶지 않아 진다. (남편의 큰 계략인가-)





담배 피우는 여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영화  장면, 말레나의 담뱃불 장면.


말레나의 남편이 전쟁에 나가 전사했는 소식이 들려오고 말레나는 돈을 벌기 위해 창녀가 되기로 한다. (여자들의 시기 때문에 미인인 그녀에겐 일자리 조차 주어지지 않았음) 긴 검정머리를 싹둑 자른 붉은 머리의 말레나는 이미 표정에서 모든 걸 포기한 듯하다.


나는 영화를 보고 말레나에게 불을 건네는 남자들의 모습이 참 추잡하게 느껴졌다. 검은 의도가 분명한 친절함은 더러운 느낌까지 들게 하는 듯. 아, 찾아보니 이탈리아에서는 매춘부가 남자로부터 담뱃불을 받아 피우는 것이 남자와 관계를 받아들이겠다 의미로 해석된단다.



말레나의 담배 피우는 모습은, 현시대의 흡연하는 여성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아직까지 남성이 담배 피우는 것 과 달리 담배 피우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은 그대로인 듯하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담배 피우는 여자 어때요?” 남초 집단 커뮤니티에 올라온 질문들엔 “저는 별로.” “모르는 사람이 피는 건 괜찮은데 내 여자는 싫음” 이런 답변들이 주를 이룬다. (심지어 흡연자인 남자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음. 자기는 꼴초면서 상대는 비흡연자이길 바라는 심보는 뭐야?)



어쨌든 나는 살면서 모험을 즐겨보지 못한 것 같다.


인생이 한 번뿐이니 도덕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최대한 이것저것 모든 걸 해보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


아주 적절한 시기에 한대 펴보고 가야지. 검은색 스타킹에 쫙 달라붙는 검정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허리까지 기른 다음, 히피펌을 해야겠다. 그렇게 하고 주변에선 재즈 노래가 나와야 함. 조명은 어두컴컴해야 하고 딱 그런 곳에서 1대만 펴야겠다. 2개는 절대 안 되지.


- 나의 담배 판타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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