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부터 남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면이 강했던 것 같다.
유치원을 다닐 때도 선생님들이 어떻게 하면 나를 더 예뻐해 주실지 연구를 하며 지냈다. 지금까지 29년이란 오랜 시간을 걸쳐 공부했으니 지금은 사랑받기 전문가 정도는 되었으려나?
아이들은 흔히 관심받고 싶을 때 돌발행동을 한다.
갑자기 웃기는 행동을 하던지, 아니면 소리를 빼엑- 지른다던지, 찡얼거리며 불평을 한다던지. 다 어른들에게 관심받기 위한 수단들이다. 근데 앞서 이야기 한 돌발행동으로 관심을 받는다는 건 긍정적인 피드백보단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기 쉽기 때문에 하수들이나 사용하는 방법이다. 되려 돌발행동은 사랑받기보단 핀잔을 듣고 혼날 가능성이 더 농후하다.
:: 그런 아이들에게 혼내거나 핀잔을 주면 아이는 더 강한 행동을 보이며 미쳐 날뛰는 망아지가 되기도 한다. 뒤에서 살짝 안아주며 좋은 목소리로 타일르거나,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아이에게 선생님이 귀가 아프니까 조용히 말해달라고 이야기하면 거의 다 말에 따라준다. 결국엔 관심받고 싶은 아이들에겐 관심과 애정을 더해서 문제 행동을 고치는 게 가장 좋다.
사랑받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고 적당한 친절함과 유머를 겸비하면 대부분 좋아한다. 내가 정한 기준의 적당함이 참 모호한데 (설탕처럼 계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려나?) 상대방이 부담스럽지는 않게 그렇다고 차갑지는 않게 행동해야 된다.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 또 유머도 적당하지 못하고 과할 정도로 하는 사람은 삐에로 광대처럼 슬퍼 보인다. 어떤 감정이라도 과도할 정도로 절제하거나 밖으로 표출하는 건 모두가 불편함을 느낀다.
어렸을 때 선생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혜리는 어딜 가도 사랑받겠다.” 이런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말을 들은 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좋은 어른, 사랑받고 싶은 어른에게만 사랑스러운 아이처럼 행동했다.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까지도 그 버릇이 여전하다. 좋은 어른은 만나면 사랑받고 싶어서 경쟁의식도 생긴다. 일할 때에도 대표에게 가장 사랑받는 근로자가 되려는 마음도 있다. 시골 개처럼 사람 앞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 좀 바라봐 달라는 사랑구걸이 나한테 좀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내가 가장 1순위가 아닌 것 같을 때 귀여운 시골 개가 미친개처럼 변할 때도 있다. <왜 나를 최고라고 하지 않는 거야. 물어뜯어버려? 왈왈!>
사랑받기 위해 행동하던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사랑받기 위해 내내 노력하며 놓쳤던 여러 가지를 생각해본다. 늘 사랑받으려고 했지 누군가에게 온전히 마음을 다해 사랑을 주진 못 했던 것 같다. 어릴 땐 내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사랑을 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아-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나는 노래.
< 심수봉 님의 백만 송이 장미 >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나라로 갈수 있다네.
나는 언제쯤 내 별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깐따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