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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Dec 29. 2021

나는 학부모는 어렵고 떡볶이는 좋아요.   




어제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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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애매하게 3시 30분 - 4시로 잡혀 있어서 원장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업을 빼고 나올 수 있었다. 학교 앞 정문에 가까워지니 주변엔 아이와 학부모들이 하나 둘 보인다. 슬쩍 부모들을 살펴보며 1학년 엄마, 아빠의 나이를 짐작해 본다. 나도 이제 꽤?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과 비교하면 아직까지도 앳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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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소집일을 앞둔 며칠 전, 남편에게 조언을 구했다.







“롱패딩에 운동화 신고 가면 너무 어려 보이지 않을까? 롱 코트에 구두 신고 갈까?”





“롱패딩이나 롱 코트 똑같이 어려 보일걸? 나이 들어 보이고 싶으면 머리를 위로 올려 묶고 가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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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언을 구했으나 남편에 조언이 딱히 마음에 안 들었다. 요새 가뜩이나 날이 추운데 머리를 위로 바싹 올려 묶으면 내 귀랑 목덜미는 매서운 바람을 맞을 거 아냐? 내가 말한 대로 검은색 롱 코트에 구두를 신고 나갔다. (답정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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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들어서니 아이 한 명과 학부모들이 순번을 기다리며 줄에 서 있다. 어떤 아이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이 불편한지 울먹이며 아빠에게 "무섭다"라는 말을 계속 속삭인다. 아빠는 아이에게 “뭐가 무서워, 그냥 이렇게 하고 가는 거야” 이야기하더라. 사실 예비소집일은 기대한 마음에 김이 셀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학교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했다. 다원이는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시간으로 착각하고 학교에서 나올 때 “뭐야? 이게 끝이야?’ 이야기하더라. 응 이게 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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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을 걸어 나오는 다원이가 놀이터를 향해 눈길이 간다. “엄마 우리 저기 가자!” 놀이터를 살펴보니 꽤 많은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여있다. 보자마자 가고 싶지 않아졌다. 다원이에게 코로나 핑계를 대며 놀이터에 가지 말고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사실은 놀이터에 있는 엄마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피한 거다.


​​​


엄마가 아닌 나로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은데 “엄마”로써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아직도 너무 어렵다.


​​​​​


학교 정문에 나오며 00초등학교 라고 적혀있는 글자 옆에서 다원이 사진을 찰칵- 찍어줬다. 옆에 지나가던 엄마들은 00엄마-!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한다. 엄마들을 쭈욱 살펴봐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얼굴들이다. 우리 동네에 아이들, 엄마들, 아빠들, 이렇게 많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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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이랑 학교 앞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어쩌면 나는 떡볶이를 먹던 여고생의 마음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나 생각해 봤다.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니 다가가는 것도 마주하는 것도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이젠 떡볶이를 졸업해야 될 것 같다. 마라탕으로 갈아타든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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