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이는 나의 친정 아빠를 좋아한다. 손녀에게 한없이 자상하고 모든 걸 들어주는 할아버지다.
어쩐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면 “나한테는 저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빠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나에겐 잊혔진 기억이지만 내가 어릴 때도 아빠는 똑같은 모습으로 놀아줬던 것 같다. 아빠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아마 커가면서 아빠와 엄마의 다툼을 너무 많이 본 탓에 아빠에 대한 기억이 좋지 못한 것 같다. 딸은 엄마가 겪는 감정을 거울처럼 그대로 받는다. 엄마가 아빠에게 상처받고 슬퍼하는 마음 그대로 나도 겪어버렸다. 나는 아빠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에 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미움이 남아있다. 속 안에 꽁꽁 숨겨두어도 아주 사소한 문제에 미움이 폭발하곤 한다.
남편은 마음 속 이야기들을 뿌리 뽑아야 된다고 했다. 상대와 싸우고 상처를 할퀴더라도, 옛 기억을 끄집어내서 “그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비쳐야 하고 그래야 상대방도 과거 속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다고 했다. 내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그들은 과거에 내가 갖고 있던 감정마저도 기억하지 못하겠지. 감정의 고리를 끝마치지 못한 체, 삶이 끝나버리면 그때는 후회만이 남는다.
남편에게 옛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아직까지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아픈 엄마와 무심한 남자 둘. 그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서로를 이어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엄마를 위해서 가족 모두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랬지만 내 뜻대로 되진 않더라. 엄마는 계속되는 실망과 외로움, 서운함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그럴 때마다 가족에 대한 증오가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아! 당신은 아시죠.
내 마음 속 더럽고 추악한 죄들을- 그때 지은 죄들이 너무 많아서 과거를 떠올릴 때면 심장이 콕콕 쑤시는 것 같아요.
아버지. 제가 당신을 많이 미워했어요. 상상 속에서 당신을 찢어 죽이고 또 많이 죽였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나아지질 않았고 그때 지은 죄들은 마음속에 남아서 한 번씩 울컥- 울컥 올라와 저를 괴롭힙니다. 이런 나의 죄를 알고도 당신은 용서할 수 있나요. 언젠가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밉지만 사랑하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