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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Dec 31. 2021

살아있었으면 그걸로 된 거지.  




어젯밤, 샤워를 끝내고 안방에 들어가 보니 침대 위에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이게 뭐냐고 남편에게 물으니


​​​


“그거 다원이가 당신한테 주는 상이래”









위 어른은. 열심이. 아이들을 키우고. 짜증을 만히 내지만. 열심이 아이들을. 열심이 키워서. 이상으로 친찬을 합니다.


​​​​

전체적인 글은 나를 칭찬하는 말이지만 어째 내 눈엔 “짜증을 만히 내지만” 에 꽂힌다. 은근히 나를 맥이는 것 같은 기분은 뭐지. 역시 다원이는 날 닮아서 솔직하다. 나의 한 해를 돌아보니 다원이 글에 변명할 여지가 없다. 나는 웃음도 많고 화도 많고 짜증도 많다. 심지어 눈물도 많다. (남들이 알기 어려운 특정 부분에 꽂혀서 눈물을 흘림)


​​

함께 웃기도 많이 웃지만 다원이가 나의 짜증 내는 모습도 많이 봤구나. 반성 해 본다.






남편은 씩씩상을 받았다.

​​​


위 어른은, 아이들께 씩씩한 모습으로 아이들한테. 멋지게 보여주어서 따뜻한, 마음으로 이상을 드립니다.

​​


아빠에게 준 상엔 은근히 맥이는 부분이 없네. 아빠의 환심을 사려는 수작인가? 남편은 매번 내 편인데 가끔 남편이 다원이와 한패를 먹고 나를 놀릴 때가 있다. 다원이는 분위기를 살펴보고 “이때다” 싶은지 아주 거침없이 나를 놀린다. 허허 당돌한 녀석.. 나는 속이 좁아서 2:1로 한껏 놀림을 당하고 나면 살짝 시무룩 해진다. 그리고 다원이가 꿈나라로 갔을 때 남편에게 “왜 둘이서 나 자꾸 놀려. 으으 열받는다.” 얘기한다.

​​​


남편은 그런 모습 때문에 더 놀리고 싶단다. 아오





남편과 어제 소파에 누워서 돌아가신 이북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20대 때 할머니를 보러 가면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셔서 손주인 남편을 보며 허허 웃기만 하셨단다. 그러다 간혹 “잘생겼네-“ 이야기하시고, 불현듯 옛 기억이 떠올랐는지





“그래.. 00이 죽었지..”




자기 자식을 잃은 기억은 치매가 걸려도 잊히지 않나 보다. 아들이 죽었지 이야기하시고 할머니의 얼굴은 갑자기 어두운 낯빛으로 변했다고, 남편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돌아가신 이북 외할아버지가 엄마 장례식장에 오셨던 장면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 지팡이를 짚고 들어오던 할아버지는 엄마 영정사진을 보고 몸이 휘청하시더니 “니가 정말 가버렸구나..” 하셨다.​​​


.


.


.

​​​​​​​​



2021년은 가고 이제 2022년을 맞이한다.​​



사람들은 지나온 세월에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서 아쉬워하고 후회도 하지만 사실 살아있었으면 그걸로 족하지 않나, 그걸로 효도를 다 했고 그래도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오늘 전화로 사랑한다고 얘기하면 좋을 것 같다.




여러분들도,



한해 잘 살아계셨으니 다음 해에도 건강히 잘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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