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은 양보다 질이라고 되뇌지만 늘 자책한다.
“엄마는 도대체 언제 나랑 놀아줄 거야?”
“엄마는 왜 내 공부는 안 봐줘?”
“엄마, 내가 다 끝낸 학원 문제집 책상에 올려놓은 거 봤어? 안 봤어?” “그냥 버린 거 아니야?”
초등학교 5학년 딸, 배려심 많은 우리 딸이 한참 참고 기다리다가 결국은 터져 버렸다.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고파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첫아들을 낳고 둘째를 낳을까 말까 고민할 때 우리 남편, 친정 엄마 모두 하나만 잘 기르라고 했다. 남편은 부담스럽다고 했고, 친정 엄마는 당신이 도와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니 딸의 삶이 고단할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내게도 딸이 한 명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딸일지 아들일지도 모르는 둘째가 내게 찾아오길 기대했고 그렇게 내게 또 다른 생명이 찾아왔다.
일 년 후 둘째를 낳았고 육 개월 휴직을 하고 아직 혼자 앉지도 못하는 둘째를 어린이집 원장님 품에 맡기고 다시 출근을 하던 날부터 오늘날까지도 아이들 각자에게 충분히 나를 (나의 마음과 나의 시간을) 내어주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저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죄책감과 싸워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어느새 모두 십 대가 되어 고단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엄마에게 “오늘도 고생했어” 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기도 한다. 어떤 날은 ”엄마 오늘 안 좋은 일 있었어? 회사에서 혼났어? “ 하고 나의 안부와 마음을 물어봐 주기도 한다.
오빠가 중학생활을 보낸 지난 3년간 동생인 우리 딸도 고생이 많았다.
첫째(그러니까 딸아이의 오빠), 오빠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엄마 아빠와 오빠의 잦은 사춘기 갈등에도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이 맘을 졸일 때도 있었고, 오빠 공부 문제로 혼날 때 같이 혼나기도 했다. (괜히 억울하게 말이다.)
그뿐인가? 오빠가 사춘기니까 기다려주자고 배려하자고 부탁하는 엄마의 말에도 순순히 그래왔다. 눈물을 삼키며 양보를 했을 거다.. 저도 어린이니까 …
그래서 가끔은 엄마와 저(딸)랑 둘이서만 여행을 갈 수 있는지? 둘만 영화를 볼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오곤 했다.
그러다가 확실하고 정기적인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엄마랑 딸이랑 같이 매주 한 번씩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운동신경이 좋은 딸아이가 자전거도 잘 타고 킥보드도 잘 타는데 성격이 조용하고 소심한 구석이 있어서 새로운 환경에 가서 적응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스케이트보드를 배워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질 않는다기에 나도 같이 한 달만 배우고 딸아이가 적응을 하고 나면 데려다 주기만 하자고 시작한 스케이드 보드를 이년 반째 함께 하고 있다. 스케이트보드 수업에 오가는 길, 차에서 같이 노래 듣고 이야기하고, 운동하는 동안 넘어지면 서로 일으켜 주고 엉덩이 털어주고, 힘내라고 응원해 주곤 한다. 마치고 나면 아이는 초코우유, 나는 식혜를 하나 사 먹으며 땀을 식히곤 한다. 이 시간은 아무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하는 우리 둘만의 데이트 시간이다. 우리만의 시간에 비밀과 추억이 켜켜이 쌓여 간다.
최근에 한 번 더 기회가 왔다. 코로나 전에 온 가족이 스키를 배웠는데 몇 년 사이 아들은 커서 더 이상 같이 갈 생각이 없다고 하고 아빠는 집에 남은 아들 학교 보내느라 집을 지키고 딸아이가 너무 가고 싶은 스키장에 둘이서 다녀왔다. 이번에는 친정 엄마도 동행하긴 했다. 친정 엄마는 산책하시는 동안 나는 딸아이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하늘 위 대화를 나누고 눈 위를 씽씽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면서 신나게 두세 시간을 보냈다.
짧은 일박 이일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운전을 하고 저는 내 곁에서 쿨쿨 잔다. 내가 묻는다. ”엄마랑 짧은 여행 어땠어? “ ”너무 좋았어. “ 우리 딸이 만족해서 정말 다행이다. 나도 우리 딸과도 시간을 보내고 친정 엄마랑도 시간을 보내서 일석 이조였다. 친정엄마도 딸인 나와의 시간과 대화가 늘 고프시긴 마찬가지이다.
딸아이는 매일 책을 읽어주고 기도를 하며 잠을 재워주고 싶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나 책을 같이 읽을까? 그래도 늘 다시 도전하곤 한다. 포기하지 않을 거다.
오후 두 시 반쯤이면 어김없이 전화가 온다.
”엄마, 통화 가능해? “
”응 말해. “
”학원 가는 길에 엄마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오후도 잘 보내.”
이렇게 부족한 나를 여전히 사랑해 주고 늘 엄마가 고파도 잠깐씩 허락되는 엄마와의 시간을 소중하게 흠뻑 즐겨주는 우리 딸이 있어서 감사하다.
둘째 아이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전화를 했을 때 선뜻 기뻐해 주지 않는 전화기 너머의 남편, 어머니의 반응에 왠지 모를 서러움에 길을 걸으며 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십이 년 전 둘째를 낳고자 소원했던 나의 선택이 얼마나 탁월했는가 생각한다. 지금은 당연히 우리 딸이 남편과 어머니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보배이고 위로이다.
이 아이와 나는 서로를 위해서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그런 존재로 오늘도 잠깐잠깐 허락되는 우리만의 시간을 누린다.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돌보면서 말이다.
집중하자. 우리에게 허락되는 이 순간에… 사랑하고 돌보기에 이 순간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