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보자
032-XXX-XXXX
모르는 번호가 핸드폰 액정에 뜬다. 받을까 말까 하다가 받는다
“여보세요”
“OOO 어머니세요?”
“네, 맞는데요.”
“아 … 어머니 다름이 아니라 오늘 학교에서 아이들 간에 다툼이 있었어요. ”
“네? “
말문이 막히고 우리 아이가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당황스러운 이런 일이 종종 벌어졌다.
중학교 아이와 중학교 엄마로서의 나의 이야기를 쓰자고 작정한 날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도 꼭 다뤄야 하는 이야기이지만 어쩐지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학교폭력에 대한 것이다. 다른 여기서 순화해서 갈등이라고 하고 싶다.
내가 어른이 되어 보니 각자 30년을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라 성인이 되어 함께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된 우리 부부, 그리고 매일 여덟 시간을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지만 서로 다른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은 관계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피할 수가 없는 필연적인 것이더라.
그런데 막상 어떻게 갈등을 직면하고 이야기하거나 다투면서 그 갈등을 발판 삼아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더라는 말이다. 그래서 부부도 부부싸움 이후에 서로 화해를 잘하고 교훈이라도 하나씩 나눠갖고 깊어지는 관계도 있지만 적당히 두 사람 사이에 섬을 하나 두고 웬만하면 서로를 건드리지 않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는 경우도 있다. 직장도 마찬가지이다. 꼭 필요한 회의와 소통만 하고 서로 깊은 상호 작용을 하지 않는 그런 사무적이고 딱딱한 관계도 많다.
그러니 아직 성품이 다듬어지지 않고 혈기 왕성하며 대인관계에 미숙한 중학생 아이들에게 갈등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특히 조용하지도 자기주장을 숨길 줄도 모르는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좌충우돌하며 개성 넘치는 학생으로 캐릭터를 확실히 보이며 그렇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가끔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가슴이 철렁하고 그랬었다.
그런데 아이가 중학교에 간 다음에 실제 내가 경험하게 된 공립학교의 갈등 해결 과정은 30년 전의 학교와는 달랐고 많이 진보되어 있었다. 내가 진보되었다고 함은 어떤 갑작스러운 아이들의 갈등과 다툼에 대해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학교와 선생님들이 알고 있었고 그렇게 사전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당황한 부모들을 안심시키며 갈등해결의 과정으로 인도해 주었다.
급식실에서 줄을 서다가 아이들끼리 다툰 적이 있었다. 손에 숟가락, 젓가락이 들려 있었으니 살짝 서로 밀치고 가벼운 신체 접촉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도구가 사용되어 큰 다툼으로 번질 수 있었던 상황이라 선생님께서 아이들의 다툼을 즉시 멈추고 화가 난 두 아이들을 각각 불러 각자의 입장을 들어보고 차분히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아이들은 이미 화를 누그러뜨리고 서로에게 사과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두 아이의 부모님들에게 각각 전화를 주셔서 어떤 다툼이 있었고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과정과 결론을 투명하게 이야기해 주셨고 양쪽 부모님에게 상호 간에 전달하길 원하는 것이 있는지도 물어봐 주셨다.
한 번의 사건이 더 있었다. 이번에는 우리 아이가 피해자가 되었다. 그러나 발단이 되는 사건이 있었으니 우리 아이도 과정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말로 장난을 치고 이야기를 하다가 오해를 샀는데 화가 난 상대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주먹을 날려 심한 몸싸움이 일어났다고 했다. 게다가 장소가 화장실이었다니 물도 있었고 공간이 협소한 곳이니 아이들이 말리고 즉시 선생님이 개입하지 않으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아이가 가해자라고 했어도 죄인엄마가 되니 괴롭겠고, 아이가 피해자라고 해도 상상을 해 보니 너무 아찔하고 속이 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사건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형편없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학교 생활을 해 주기 바랐던 그런 엄마였기에 이 사건을 빨리 종료하고 잊히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상했고 친구들이 모두 보는 가운데 수치스럽고 불편한 상황에 처했으니 시시비비를 가려서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학교는 이 사건을 사적이 사건으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아이나 부모가 원하면 교육청의 학교폭력위원회까지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는지 물으며 그저 내 마음 편하자고 했으나 남편과 아이는 절차에 따라 진행하고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결국 몇 주에 걸쳐 각자 진술서 쓰고 전문가 위원들 모이는 위원회에서 두 아이의 직접 접촉 없이 사건을 심도 있게 살펴 주었고 상대 아이가 폭력을 썼으므로 우리 아이에게 공식적으로 사과의 편지 겸 반성문을 쓰고 부모님께서도 아이를 지도하는 숙제를 받은 후 일단락 되었다. 아이는 모든 과정을 마친 후에 사춘기 들어 꽤나 서먹서먹했던 아빠에게 ”아빠 내 억울한 마음을 알아주고 풀어줘서 고마워 “ 하며 마음을 전달했다.
우리 아이도 언제든지 자제력을 잃고 누군가에게 주먹을 날릴 수 있는 혈기 왕성한 열 일곱 소년이고, 실제 가끔 혼나고 방으로 들어가면 화가 나서 책상과 의자를 얼마나 세게 내리치고 때렸는지 자기 책상에 이런저런 스크래치로 분노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상관없이 학교 울타리 안에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갈등과 사건 사고에 대한 예방이 되어 있고 절차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은 이 사회가 조금은 성숙해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되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에는 학교에 위클래스라고 하는 상담 선생님이 상주하는 공간에 필요하면 아이들이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이와 선생님, 나와 선생님이 각자 상담을 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열여섯의 소년이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 가기 위해서는 학교 안에서의 갈등, 집에서의 갈등을 직접 겪고 통과하는 어려운 과정이 매우 값지다는 것이 내가 중학교 아들을 키우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점이다. 너무 고단할 때 왜 우리 아들은 순종적이고 조용하지 않고, 자기주장도 강하고 개성이 강할까 말도 안 되는 불평을 할 때가 있었다. 초등 6년, 중등 3년 동안 꽤나 전화를 받았던 나의 변명이라면 변명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운전을 하다가 불현듯 깨달아졌다. ‘그래 이 아이, 세상에 하나뿐인 이 아이를 품고 울타리가 되어 온전한 성인으로 키우는 것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이 아이를 아들로 주셨나 보다’ 하고 말이다.
이제 중학교 때 있었던 다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정도가 되는 것을 보니 나도 그 사건들에 대해서 담담해지고 조금은 의연한 엄마가 되어 가는 중인가 보다.
고등학생이 되어 또 다툼이 있을 수 있지. 그럼 그럼…
결혼 18년 차인 엄마도 아직 아빠랑 종종 다투는데 말이야
그러나 우리 설사 친구들과 갈등을 또 겪게 된다고 하더라도 잘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그런 훈련을 멈추지 말자꾸나.
넘어지고 일어나고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 인생인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