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특별한 졸업식

중학교 아들 엄마 후기를 마치며


아침 8시부터 시작된 온라인 회의를 마치고 부랴부랴 단장을 한다. 머리에 헤어 에센스를 발라 컬을 좀 살려주고 피부 화장도 꼼꼼히 하고 검정색 블라우스와 모직 바지를 입고 조말론 향수를 칙칙!!! 9시 반에는 출발을 해야 한다. 바쁘다 바빠!!!


오늘은 2024년 1월 10일, 우리 아들 중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에 오랜만에 아들과 팔짱을 끼고 정다운 사진 한 장을 남기려고 한다. 이런 기대감과 달리 졸업식 일주일 전에 아들이 통보를 해 왔다.


“엄마, 중학교 졸업식은 오지 마. 안 와도 괜찮아. 나 졸업식 마치고 친구들이랑 약속 있어서 엄마랑 밥 못 먹어. 그러니까 오지 마.”


‘엥? 이게 무슨 황당한 말씀?‘

너의 중학교 졸업식은 너만의 이벤트가 아니란다. 사춘기의 그 찬란했던 좌충우돌 시간의 대단원을 내리는, 너만큼이나 고생이 많았던 이 엄마에게 의미 있는 날이란다.

그래도 오지 말라고 하는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어 대학친구들 단톡방에 톡을 올린다. 우리 아들보다 더 큰 자녀를 둔 친구들의 조언을 구한다. 학부모로는 선배인 친구들에다가 중학교 현직 교사도 있으니 요즘 중학교 졸업식에 엄마가 가지 않는 경우도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친구들아, 나 조언 좀 해 줘. 우리 아들이 중학교 졸업식에 오지 말래” “요즘 중학교 졸업식은 엄마들이 안 가는 거니?” “학부모 선배님들의 적극적인 지도편달 부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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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에서 톡이 울려댄다.

“나도 우리 딸이 오지 말래서 나는 안 갔어. 굳이 오지 말라고 하는 딸의 말을 안 들어주기도 뭐 해서 용돈 주고 실컷 놀다 오라고 했어” 쿨한 여자친구의 답변이다.

“무슨 말이야. 가야지… 나라면 갈 것 같은데…” 아직 현실에 경험이 없는 친구의 말이다.

“내가 우리 아내에게 물어보니 (아내는 현직 중학교 교사) 그건 학교마다 케바케래… 그런데 선생님들은 부모님 오시는 것을 권한다네.”


결국 나는 중학교 졸업식에 가기로 결정했다. 사실 처음부터 가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다만 아들이 초대하지 않은 졸업식에 가기 위해서 그저 용기가 조금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함께 졸업식에 갔다. 학교 앞에서 작은 꽃다발도 하나 샀다. 아들이랑 남편이랑 오랜만에 찍는, 그리고 세상에서 한 번뿐인 다시 안 올 아들의 중학교 졸업식 사진에 예쁜 꽃다발을 더해 따뜻한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작은 SUV 차량 트렁크 문을 하늘로 활짝 열고 그 작은 트렁크 공간에 꽃다발을 늘어놓고 팔고 계시는 꽃다발 판매 사장님이 무슨 가격을 부르더라도 흔쾌히 샀을 텐데 예쁜 꽃다발이 1만 5천 원으로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학교의 강당 “학여울관”으로 들어갔다. 이름도 예쁘지… 학여울… 어떤 의미일까 … 그냥 오늘은 기분이 다 좋나 보다.


잠깐 아들의 중학교를 소개하자면 축구선수 이천수를 배출한 축구 명문 남자 중학교이다. 요즘 아이들이 많이 줄어서 한 학년이 다섯 반, 모두 합쳐 116명인 작은 학교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1 지망으로 인기가 많은 남녀공학을 지원했으나 똑 떨어지고 2 지망의 작은 남자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껌 좀 씹고 침 좀 뱉을법한 언니들은 없고, 운동 잘하는 남자 학교에 치맛바람도 그다지 없고 조용하고 무난한 학교였다. 공부는 그다지 열심히 시키지도 않고 다양한 교내외 활동을 열심히 성실히 했던 것 같다. 한 번은 학교에서 축제를 하는데 전교 남학생들이 참여하여 하나씩 맡아서 하다 보니 제비 뽑기로 여자 아이돌의 춤과 노래를 하는 미션에 당첨되어 아이가 둔탁하고 넓적한 엉덩이를 양쪽으로 흔들며 춤 연습을 하기도 하였다. 어찌 되었든 왕성한 사춘기를 겪었던 남자아이들과 이 시기를 함께 겪으며 아이들을 무사히 졸업을 시켜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강당을 들어서면서 선생님들을 보니 어떤 동지애 같은 것이 살짝 느껴지기도 했다. 선생님이라고 해도 선생님들도 결국 이곳은 일터이며 직장이고, 집에서는 또 누군가의 부모이고, 배우자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남의 자식들을 지도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다 싶어 그저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왔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이제부터 말하게 될 졸업식의 내용과 모양이다.


1993년에 있었던 나의 중학교 졸업식으로 가보자. 졸업식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길고 지루했던 훈화말씀과 ‘교육감상’부터 시작해서 ‘교장상’, ‘교감상’까지 성적 순서대로 상을 받는 친구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들러리 노릇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얼른 마치고 엄마, 아빠와 자장면을 한 그릇 먹으러 갈 생각, 엄마가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해 온 선물을 뜯어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2025년의 중학교 졸업식은 어땠을까? 나는 전국의 수많은 중학교 중 고작 한 곳을 경험했으니 일반화할 수는 없겠으나 나의 학부모로서의 아들 중학교 졸업식은 100점을 주고 싶다.


일단 성적순서로 하는 상 따위가 없었다. 강당을 들어설 때 받았던 3단 접지 안내 종이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3-4 홍 O동과 같은 형태로 일 년 동안 교내에서 아이들에게 주었던 상에 대한 공지가 있었을 뿐이다. 관심 없게 넘겼다면 그런 공지가 있는지도 알아채질 못할 정도였다. 그 상들도 특기상, 봉사상 같은 학업성적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상들이었다.


그다음에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짧고 간결한 데다가 그 내용이 아주 좋았다. “사랑합니다. OO 중학교 학생들~“ 이렇게 다정하게 말씀을 시작하신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재능이 있으니, 공부를 잘하는 학생,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 인간관계를 잘 맺는 학생, 운동을 잘하는 학생… 모두 다르고 다양하다. 앞으로 세상을 살면서 더 열심히 탐색하고 알아가면서 너의 꿈을 펼쳐라 “ 이렇게 마무리하셨다.


마지막으로 116명의 소중한 아이들(요즘 출생률이 얼마나 줄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지표들이 있다. 아이들이 다니던 어린이집, 유치원 모두 아이들의 수가 감소함에 따라 경영상의 압박으로 인해 문을 닫았다)은 모두 강단으로 올라가 교장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악수를 하면서 졸업장과 앨범을 받았고 뒤돌아 서서 학부모들과 친구들 앞에 인사를 했다. 아이들이 강단에 오를 때는 준비된 화면으로 중학교 3년을 마치면서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간단한 문장으로 적어 띄워주셨다. 각자 다르고 재치 넘치는 다양한 인사들이 강당 화면에서 보이면서 아이들의 졸업 행렬이 이어졌다.


만약 이 시대가 여전히 성적 순서대로 줄을 세우고 상을 주는 구태의연했던 90년대의 옛 문화를 간직했더라면 우리 아이들 중 많은 아이들을 그저 졸업식의 들러리로 3년을 다닌 학교의 강당의 단 위에 한 번 오를 기회, 교장 선생님과 악수하고 눈 맞힐 기회도 가져보지 못하고 학교를 졸업했을 것이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상을 타는 아이들의 엄마들은 우쭐하고 자랑스럽겠지만 그럼 다른 많은 엄마들은 “저 아이는 뉘 집 자식이길래 저렇게 상을 받을까? “ 하면서 우리 아이를 앞에 두고 남의 아이를 부러워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곳, 인천의 작은 공립 중학교 학여울관에서 116명의 아이들은 모두 귀하고 품위 있는 대접, 마땅한 존중을 받으며 위트 있는 졸업식을 하였다.


우리 아들은 이미 내게 통보한 대로 식을 마치고 급히 사진 한 장을 찍은 뒤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으로 가 버렸다. 그 아들에게 “재미있게 실컷 놀다 와”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남편과 둘이 백화점 푸드 코너에 가서 1인분에 1만 9천 원을 하는 (나의 보통의 한 끼 식사로는 비싼 편임 ㅎ) 맛있는 쌈밥을 같이 먹으며 “우리 참 수고가 많았다, 그렇지?” 하면서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했다. “우리가 그래도 아들 중졸학력은 만들어줬네 ㅎㅎㅎ”. “ 나 아직도 OO 이 태어나서 병원에서 처음으로 얼굴 보던 날이 기억나 ㅎㅎㅎ” 하면서 잠시나마 웃으며 추억도 함께 소환을 했다. 그러고 나서는 여성복 코너로 올라가 30% 겨울 세일에 들어간 브랜드 숍에 가서 평소 찜해 둔 카디건도 하나 구매를 했다. ‘지난 3년간 수고가 많았으니 나도 이 정도는 선물 받아도 된단 말이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남편에게도 평소 지갑에 넣어 둔 상품권을 몇 장 꺼내 “오빠도 에어팟 고장 났다면서…하나 새로 사” 하고 쿨내 나는 아내의 사랑과 아량을 보여줬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온종일 기쁨으로 충만했던 이유는 정작 따로 있었다. 아이들과 노래방을 가는 그 가벼운 발걸음과 살짝 상기된 아들의 얼굴에서 또래 친구들과의 진한 우정과 상호작용으로 인한 만족감, 기쁨, 들뜸 그리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1 지망으로 친한 초등학교 친구들이 다른 학교에 가고 2 지망의 학교에 왔을 때 우리 아이는 마음 붙이고 속내 나눌 한 명의 친구를 만나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그 또래의 흔하디 흔한 교우관계에 대한 마음고생을 많이 했더랬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목요일마다 팀즈 온라인 미팅으로 온 가족이 근황도 나누고 기도도 하는데 할머니, 삼촌들, 숙모들, 엄마, 아빠가 모두 우리 OO이 좋은 친구 만나고 좋은 선생님 만나서 즐거운 중학교 시간을 보내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었다. 오늘 졸업식에서 그 기도가 얼마나 성실하게 응답이 되었는지를 보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감사하고 기뻤다. 한 명의 친구를 얻기가 쉽지 않은데 어느새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고 엄마, 아빠 보다 친구가 좋은 지극히 정상적인 열여섯의 소년이 열일곱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의 한 페이지가 너무나 감격적이고 소중했던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못마땅한 것,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매몰되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한다면 얼마나 수많은 감사와 행복한 순간을 놓치고 나 자신을 비교와 자기 비하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가? 또 내가 이미 가지고 있거나 누리고 있는 관계들도 그저 당연하게 여긴다면 귀한 것을 귀히 여기지 못하는 실수를 얼마나 많이 저지르는가 말이다.


이제 중학교 아들 엄마 이야기를 마치려고 한다. 다음에는 고등학생 엄마 이야기로 돌아오련다.


아이가 중학교 생활을 하면서 저도 무척 마음고생을 하거나 좌절을 했을 날들이 있었음을 나는 안다. 기쁘고 즐거운 날도 있었겠으나 엄마 아빠에게 말 못 할 속상한 일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흐리고 궂은날, 비 오는 날, 새찬 비가 온 뒤 맑게 개인 날, 그저 그렇게 히끄무리한 날들을 모두 통과해 준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가? 나도 엄마가 처음인데 뭐 이리 어렵냐?’며 때론 자책하고 때론 다그쳤던 나 자신에게 ”정말 수고 많았다. OO 엄마야. “ 이렇게 다독이며 안아주련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욱더 세상을 살며 무엇이 중한 지 고민하는 것을 멈추지 말고, 중하다고 생각하고 믿는다면 그 믿음대로 용기 있게 엄마의 길을 가면서 이 세상에 건강한 어른을 한 명 배출할 그날까지 남은 자녀 양육의 시간을 성실히 뚜벅뚜벅 걸어가자고 다짐해 본다.


아직 브런치 구독자도 적고 이 글을 읽는 독자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혹여 누군가의 지지가 필요하고 세상에서 용감하게 소신껏 아이를 기르고 싶은 누군가가 언젠가 이 글을 발견하고 ‘아 세상에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아이를 아이답게, 존중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저마다의 속도대로 자녀 양육을 하고자 하는 다른 엄마들이 있구나 ‘ 생각하면서 그 엄마 됨의 길을 걸어가는데 작은 힘과 격려가 되었으면 좋겠다.


엄마라서 참 행복하지만 고되다.

중학교 엄마는 진짜 힘들고 힘들었다. 그러나 모든 고생은 끝이 있고 그 끝이 올 때까지 견디면 된다.

그 끝에는 언제나 그렇듯 뜻밖의 선물 - 그것이 한 줌의 지혜이든, 감사이든 뿌듯함이든 성숙함이든 - 이 반드시 있다.


<중학교 아들 엄마 나눔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