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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너무 빨리 크지 말아 줄래?

야속한 시간의 속도 가운데 엄마됨을 곱씹어 본다

”우리 기도하고 자자“

침대에 같이 누워 소리 내어 기도를 한다.


“하나님, 제가 오늘 아침에 접촉사고를 내서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했는데 이렇게 우리 딸이랑 같이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 뭐야? 나한테 말 안 했잖아.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 “다행이다. 조심해서 운전해. 알겠지?”


내가 기도를 이어간다.

“우리 딸, 3월 한 달 다 보냈는데 친구가 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친구들 많이 생기게 해 주세요. 지금 학교 갈 때 같이 가는 친구는 5학년 친구이고 다른 반 친구이니, 6학년 같은 반에서도 친구가 많이 생기게 해 주세요. ”


딸아이가 또 말한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나 우리 반에서도 친구 생겼어.”


기도인지, 대화인지 구분 안 되는 저녁 잠자리의 짧은 대화이지만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매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제는 퇴근이 많이 늦었다. 9시가 넘어 사무실을 나섰고 집에 와서 식빵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채 썬 양배추를 올려 케첩을 마구 뿌린 후 뚝딱 15분 만에 먹고, 고등학생이 된 큰 아이 학원 픽업을 다녀왔다. 여기저기 글에 우리 큰 아이는 학원 안 다니고 자기주도학습하고 있다고 했는데, 고등학교 입학 4주 만에 스스로 “엄마 나 학원에 보내줄 수 있어?” 하고 물어왔고, 그렇게 방과 후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삼일째이다.


학원 앞에 도착해 차에 비상등을 켜고 핸드폰을 열어 유퀴즈를 본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스크롤해서 원하는 게스트만 짧게 보면서 아이가 내려오길 기다린다. 아이가 왔고 무척 피곤하고 힘들어 보이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15분 정도의 시간에 차 안에서 고등학교 다닐만한 지, 학원 공부는 할만한 지 짧은 대화를 나눈다. 아침에 ”우리 아들 잘 잤어? 오늘도 파이팅 해. 엄마가 기도하는 거 알지? 엄마만 기도하니?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삼촌들, 외숙모까지 너희들을 위해 기도해. 사랑해. ” 말하고 출근하고 다시 저녁에 이 짧은 라이딩의 대화가 오늘 아들과 함께 한 전부이다. 너무 짧아서 너무 소중하다. 그래도 매일의 이 짧은 교감이 쌓여 아이가 문득 격려가 필요할 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가족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지지하는지 엄마가 해 준 말을 기억할 거라고 난 믿는다.


큰 아이를 데리고 11시가 다 되어 집에 돌아오니 딸아이가 혼자 샤워하고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다. 딸아이는 TXT와 보넥도를 좋아한다. TXT는 Tomorrow by Together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 일명 투바투)이고 보넥도 는 Boy Next Door (보이넥스트도어, 이웃집 소년?) 아이돌이다. 얼른 드라이를 챙겨 아이 머리를 말려주고 이를 닦게 하고 가방을 점검하게 한 후 책 하나 꺼내 아이 침대로 간다. 책은 한 두 페이지나 읽을까? 그래도 습관이니까. 오늘 우리 딸과 함께 보낸 시간도 2시간이 채 안 되는구나 생각한다.


너무너무 아쉽다.


이렇게 정신없이 사는 가운데 아이는 저 혼자서도 쑥쑥 자라고 미안하고 안쓰러운 날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몸과 함께 마음이 잘 자란다. 한 동네 사는 친정 엄마는 나보다 아이들과 대화를 할 시간이 더 많고 저녁 식사도 자주 챙겨주신다. 그러면 아이들이 어느새 훌쩍 자라서 ”할머니, 우리 엄마 건강해야 해, 우리 엄마 진짜 열심히 살잖아. “ 그런 말도 하고 ”내가 학원 다니는 거 우리 엄마 부담 안 될까? “ 그런 말도 한다고 엄마가 전해주신다.


육아는 양보다 질이라고 말한다. 나도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정말이지 부단히 해왔다. 그러나 절대적인 양이 너무나 부족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어디서 책을 보고 그렇게 강제로 수면 분리를 한다고 밤에 울며 오는 아이를 돌려보낸 적도 있다마는 지금은 잊었다가 돌아보면 새 잎을 내고 또 내는 화초처럼 날마다 자라 가는 아이들의 오늘이 너무 아쉬워서, 남편에게 ”나 오늘 우리 딸 옆에서 잘게, 나 오늘 우리 딸이랑 2시간 밖에 함께 하지 못해서 비비고 같이 잠이라도 자야겠어 “ 말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을 높인다는 것은 ”놀아주기 “ 가 아닌 ”함께 놀기, 함께 고민하기 “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와 스케이트보드를 탄다. 부끄러움이 많은 여자 아이가 스케이트보드를 배우자니 용기가 필요해서 엄마가 같이 배울 수 있겠는지 물었을 때, “그래 한 달만 같이 하자”고 시작한 것이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야근할 때, 수술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출장 갔을 때 못 간 날도 있었지만 화요일 저녁 1시간만큼은 아이와 온전히 스케이트 보드를 타면서 같이 땀을 흘리고, 넘어지고 서로 일으켜 세워준다. 스케이트 보드는 넘어짐과 일어섬의 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튼 이 스케이트보드를 배우러 갈 때 차 안에서 항상 투바투와 보넥도의 노래를 들으니 나는 어느새 멤버들은 구별을 못해도 노래를 흥얼거릴 줄 알게 되었다.


딸아이가 나도 오빠처럼 중학교 때는 학원 안 다니고 혼자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5학년까지는 영어수학학원을 다녔다. 그런데 학원이 문을 닫게 되어 겨울 방학 때 연습 삼아 혼자 공부하기 (매일 일정한 양의 문제집 풀기)를 해 봤더니 가능한 것 같아서 6학년에는 본격적인 자기주도학습을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매일 주는 공부의 양, 국어 1장, 수학 2장, 영어 2장 이렇게 해 놓으면 정상적으로 퇴근한 후에 1시간 정도 쭉 보면서 같이 복습을 한다. 이 시간이 공부시간이지만 우리 딸과의 교감시간이기도 하다. 아이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어떤 것을 잘하고 있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니까. 어떤 날은 수학 문제집 한쪽에 공란도 없이 빼곡하게 시도해 본 노력의 흔적을 볼 때 너무나 흐뭇해서 그 위에 메모를 남긴다. “열심히 공부해 줘서 고마워. 네가 수학 문제 풀면서 고민한 흔적이 엄마는 너무 좋아. ” 이렇게 말이다.


일을 하면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잠을 설친다. 새벽 3시에 눈을 뜨고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출근 준비 전까지 갑자기 생긴 이 새벽 고요한 시간 속에서 이렇게 또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어 다행이다.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퇴근 후에 아이들 재우고 이유식 만들다가 부엌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었다. 일이며 가정이며 육아며 아내며 뭘 많이 하는데 제대로 하는 것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몸은 고단해서 그냥 울었다. 여자인 것이 싫은 적도 있었고. 하지만 어느덧 마흔의 끝자락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삶인지 깨달아 가는 중이다. 나같이 부족한 인간에게 왜 하나님은 이토록 소중한 두 명의 아이를 허락하셨을까? 세상에 이 아이들을 가장 많이 사랑하고 돌봐주고 성장시킬 엄마로 내가 낙점이 된 것이다. 신박한 인연일세. 또 이 아이들은 나라는 인간을 더 겸손하게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선물인 것이다.


이 순간의 충만한 감사와 기쁨을 놓치지 않고 기억하며 엄마의 삶을 오늘도 계속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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