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원인을 속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아이들의 학습을 지도하다 보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듣는 일이 생긴다. 결국 서로 감정이 상하고, 나는 소리를 지르게 되고, 아이는 울면서 책을 덮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내 두 자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한 아이는 “엄마가 설명을 잘 못해서 내가 이해를 못 했어”라고 하고, 다른 아이는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래”라고 한다. 엄마의 권위만 생각한다면, 후자의 태도가 더 나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녀의 성향, 그리고 그 이후의 성장 과정을 생각해 보면 과연 어떤 반응이 더 건강하고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고민하게 된다.
‘설명이 부족했다’고 판단하는 아이는 유튜브를 찾아보거나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께 도움을 청한다. 이해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그러고는 결국 자기 힘으로 끝내 이해해 낸다. 그 아이는 그렇게 몰랐던 것을 내 것으로 만든다. 반면 스스로의 머리와 재능을 탓하는 아이는 금세 낙심하고 실망하고 포기하려 한다. “그게 아니야, 엄마가 부족했어”라고 내가 아무리 말해도, 자기 능력에 대한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그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서는 반복된 노력과 더 많은 작은 성공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걸 나 역시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나도 대학원에 다닐 때, 이런 관점을 정확히 짚어내던 한 교수님의 수업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케팅 채널(유통 및 판매경로) 분야에서 탁월하신 분이었는데, 교수 자신도 결국 어떤 이론을 직접 만들어낸 사람이라기보다는 이전의 이론이나 더 탁월한 학자의 이론을 강단에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자신은 ‘창조자’가 아니라 ‘유통업자’라고 정의하셨다. 그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다. 교수님들께는 죄송하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서 너무 집중하기 힘들었던 수업들, 졸음을 참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으며 들었던 강의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땐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어쩌면 고객(학생)의 문제라기보단 유통 채널의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생각은 곧 내 일터로 연결됐다. 수많은 리포트, 소모적인 회의들. 우리는 모두 유형이든 무형이든, 상품과 정보, 지식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흐름 속 어딘가 문제가 있다면, 그건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의 문제일 수도, 받는 사람의 문제일 수도, 아니면 통로 자체의 구조적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문제이 원인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 문제는 전혀 다른 솔루션과 개선책으로 연결되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너무 빨리 원인을 단정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 빨리 단정함으로 인해서 새로운 기회 또는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문 앞에 다가가지도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들여다보려 한다. 그리고 하나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해결책을 만들어 접근해 보았으나 잘 작동되지 않는다고 하면 다른 원인을 또 찾아 다른 방법으로 도전해 보려고 한다.
조금 더 넓게 생각해 보니 우리 삶도 마찬가지이다. 쉽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소원하고 바라는 것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원하는 것에 다가가는데 다양한 원인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매일매일 새 마음으로 부딪혀 볼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