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낮추기 위한 기대 조정
미국의 가장 저명한 비영리 의료 기관 중 하나인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에서 작성했다는 스트레스 관리방법에 대한 글을 보니 피하기, 받아들이기, 바꾸기, 적응하기 네 가지 방법이 나온다. 그중 4. 적응하기 (Adapt)를 읽다가 해방감을 느끼며 혼자서 빵 터져버렸다. 그중 일부를 발췌해 본다.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스트레스요인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기준을 바꾸거나 기대를 조정하는 ‘적응’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기준을 조정하세요. 꼭 일주일에 두 번 청소해야 하나요? 마카로니 앤 치즈가 라자냐보다 훨씬 간단하지 않나요? 완벽함을 포기하면 죄책감도 줄어듭니다. (중략) 큰 그림을 보세요. “이 일이 1년 혹은 5년 후에도 중요할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대부분의 경우 대답은 ‘아니요’ 일 겁니다.
미국에서도 나 같은 엄마들이 많은가 보다. 실제로는 마카로니 앤 치즈로 간단한 저녁을 준비할 형편밖에 되지 않으면서도 “나는 퇴근 후에도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라자냐를 만들고 말 테다, 만들 거야, 만들 수 있다”라고 암시를 하면서 잔뜩 짜증이 난 채 라자냐를 만들고 있는 어떤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영락없는 나란 말이다.
어느 날 보니 거울 속에서 이것저것 다 잘하고 싶지만, 그것은 마음뿐이며 실제로는 아무것도 만족스럽게 하지 못해서 잔뜩 화가 나 자신을 못 마땅해하는 심술궂은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야근을 하며 부랴부랴 퇴근하면서도 엄마를 못 기다리고 그 새 라면을 먹어버린 딸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며 어떻게든 집밥을 해 먹어야 직성이 풀리거나,
일주일에 몇 번 공원을 나가기도 어려우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매일 뛰어서 인스타에도 올리고 싶어 하거나,
“나는 가족의 건강도 놓치지 않을 거야 “라고(비염환자들이 집에 많음) 아홉 시가 넘어서도 아직 씻지도 않고 화장도 지우지 못했으면서도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도 부직포로 닦아야 하고,
거북목에 결리는 어깨를 위해서 매일 스트레칭도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다가,
어느 날 별것도 아닌 일에 눌러온 스트레스의 감정들이 활화산처럼 폭발하여 가족에게 소리를 지르며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곤 했다.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나를 향한 요구들이 정말 그렇게 중요할까? 차라리 이런 복잡한 요구사항을 끊임없이 말하는 나 자신에게 “그만 좀 해, 너 진짜 스트레스 많이 받잖아. 너 진짜 지금 괴롭잖아. “ 이렇게 말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말했다. “완벽함을 포기하자” “너 그거 다 할 수 없어” “인정해야지” 이렇게 냉정하게 거울 속 너머의 나에게 말해 주었다. 때론 다정한 위로보다 따끔한 충고가 효과적인 순간도 있기에
우리 집 냉장고와 냉동실을 각종 밀키트와 레토로토 음식들이 채운다고 하더라도, 내가 퇴근해서 문을 열었을 때 아이가 막 뜨거운 물을 부은 사발면을 먹을 태세라고 하더라도, 거실에 먼지가 풀풀 날려도, 공원에서 폼나게 나를 스쳐 지나가는 러너들 사이에 목 늘어난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그저 터덜터덜 천천히 걷는다고 하더라도, 다이어트에 실패해 다시 밀가루와 빵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고단한 몸뚱이로 오늘도 아등바등 최선을 다한 나의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머리를 쓸어 넘겨주면서 말해 주고 싶어졌다. “고생했어. 수고했어. 완벽하진 않아도 성실하게 살았잖아.”
그렇게 마음을 고쳐 먹고 나니 적당히 선선한 5월의 밤공기와 그 사이로 코끝에 닿는 풀냄새, 이마를 타고 넘어가는 바람이 나를 살포시 앉아주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오늘도 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