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이 뭔가요?

어느 워커홀릭 리더의 매우 주관적인 관점

<워라밸 때문에 안 될 것 같아요>


“차장님께서 이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조직이 원하는 이 일을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제안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저에게는 워라밸이 중요해서 새로운 일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눈다. 리더와 직원 간에 말이다. 리더들은 변화하는 조직의 사업 목표와 전략에 따라 늘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마련이고 그때마다 새로운 자리, 새로운 역할에 직원들을 초대하고 참여해 달라고 하곤 한다. 그러나 종종 돌아오는 직원들의 답변은 개인의 워라밸이 중요하니,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으면 제 때 퇴근도 못하고 야근도 할 거고 취미 생활이나 가족과의 시간에 영향을 줄 테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거절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개인의 삶, 가족, 건강이 회사의 어떤 거창한 비즈니스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데는 나도 생각을 같이 한다. 그러나 왜 어떤 직원들은 이런 기회를 거절하고, 다른 어떤 직원들은 같은 경우에 기꺼이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일까 생각해 보곤 한다.


멀리 서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 나는 최근에 21년 다닌 직장에서 11번째 역할을 새로 맡았다. 발령이 나기 며칠 전에 새로운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는 제의를 받았고 며칠 사이에 생각을 하고 결정을 했지만 사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것은 ”할래요? 안 할래요?” 의 Yes/No의 질문이 아니라 내게 주어지는 새로운 기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염려와 걱정, 잘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일단 올라타야 하는 파도와 같이 생각이 되어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한 번씩 업무가 변경되고 새로운 일을 맡을 때마다 어떻게 일상의 모양이 바뀌고, 불균형도 생기고 주변 특히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남편, 우리 아들 딸, 엄마가 또 새로운 일을 맡게 되었어. 두세 달은 새로운 일을 배우고 따라잡으려면은 야근도 하고 집에. 와서 일을 하기도 해야 해. 주말에 일 할 수도 있고 빨래가 밀리거나 집이 지저분할 수도 있어. 그래서 우리 가족이 많이 도와주면 좋겠어. “

”오케이.. 엄마 잘해봐. “

”그래 알았다. 나도 당분간 일찍 와서 애들 저녁이랑 챙길게 “

우리 가족은 엄마의 직장 내 역할 변화를 많이 보아온 터라 아주 쿨하게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각자 어떻게 엄마를 배려하고 아내를 도와야 하는지 이미 훈련이 잘 되어 있다.


실제로 나는 새로운 업무를 시작한 후에 매주 수요일에 가던 필라테스 선생님께 전화해서 4월 한 달간 수업을 못할 것 같으니 수업을 정지하고 5월에 다시 한번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였고, 매주 화요일에 가던 스케이트보드 선생님께 잦은 출장으로 평일에 못할 수도 있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매주 한 편씩 글을 쓰고 나누는 글쓰기 모임에도 나의 글쓰기가 불규칙할 수 있음을 미리 알렸다. 매주 한 번씩 하던 영어공부(링글)는 3주째 중단하니 “당신은 21일째 수업을 하지 않고 있다고” 알림을 보내왔다. 냉장고는 다양한 레토로토 음식으로 채워 놓았으나 요즘은 다양한 먹거리가 있고 때로는 내가 만든 음식보다 맛있어서 미안한 맘이나 죄책감이 덜하다. 아이들이 어느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나이가 되어 그것도 다행이다. 집은 좀 더럽고 빨래는 쌓이지만 남편이 틈틈이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도 하얀 옷과 속옷 색깔 옷을 모두 한데 넣어서 돌려서 아쉽지만 한 번씩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길래 칭찬과 감사를 표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밤낮으로 내게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자료와 보고 내용을 소화하기 위해서 자료 읽고 데이터 보기를 집중하고 “New comer (기존 조직에 들어온 새로운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서)”인 내가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Why?” 의 질문을 쏟아놓으며 건설적인 대화와 관계를 만들어가는데 집중하고 있다.


누군가 내 삶을 토막으로 잘라서 4월 1일부터 오늘까지만 본다면 ”워라밸이 없구나 “ 하고 쯧쯧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속단은 하지 마라.. 내게는 인생 전체를 흐르는 워라밸이 있으니 말이다.


<각자의 워라밸은 다르다. 워라밸은 삶의 우선순위에서 오기 때문이다>


워라밸은 말 그대로 Work(일)와 Life (가족이나 개인의 삶)의 균형이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 9시 출근, 6시 퇴근, 이후에 집에 가서 쉬거나 넷플릭스 보거나, 아이들 돌보거나, 헬스장 가거나 영어공부 하거나 모두 그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누구나 24시간, 매주 7일, 일 년 365일을 살지만 그 안에서 1분 1초를 어떻게 쓸지는 각자의 우선순위에 따라 달라진다. 나의 경우는 삶을 관통하는 우선순위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집중이다.


성장?

회사에서 직위의 상승이나 집에서의 자산의 증식일까? 그것은 결과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무언가를 배우고 깨닫고 성장하는 중인가이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매일 하루의 여덟 시간은 가족이 아닌 타인과 일터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만두고 싶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일을 하기로 한 이상 출근을 하기로 결심하고 이불을 박차고 나오는 순간부터는 매일의 모든 순간은 나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면 나의 하루는 온전하고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간절함이 내게 있었다.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너무나 빠르게 자라면서 아쉬움이 큰 만큼 한정된 시간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간절함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그러니 회사에서 새로운 기회가 있고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성장하는 일은 내게 중요하기 때문에 비록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일을 억수로 해야 하는 불균형이 온다고 해도 그것은 기꺼이 잡을만한 중요한 기회였다. 내 삶의 우선순위를 잘 지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집중?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을 내어줄 수 없지만 틈틈이 그들의 필요를 돌보고 내가 함께 해야 하는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 몸과 마음을 함께 하려고 한다. 집중하고 몰입하기 위해서다. 주말에는 집밥을 해서 먹이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아이들이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공부를 돌보는 일, 학원에 다니게 된 큰 아이를 학원에서 데리고 오는 15~20분의 차 안에서의 대화(요즘은 진로에 대한 고민을 자주 듣고 의견을 교환하다), 매주 한 번씩 딸아이와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그곳에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아이돌(투마로우바이투게더, 보이넥스트도어)의 음악을 함께 듣는 시간, 일요일에 친청엄마를 교회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종종 들르는 코스트코 장보기, 아주 가끔 함께하는 일요일 공원 산책… 모두 짧게 짧게 끊어진 시간들이지만 여전히 이 모든 순간에 가족에게 집중하고 가족을 돌보고 가족 안에 있기에 부끄럽지 않다. 조금 미안한 사람이 한 명 있기는 하다. 우리 남편에게는 좀 소홀하구나. 그러나 열 번째 일을 맡았을 때는 “내조의 왕”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애쓰는 남편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플레이스테이션(고가의 게임기기)을 선물하기도 하였다.


개인의 삶은요?라고 묻는다면 … 워킹맘이라 지독하게 일하고 나머지 시간 가족에게 다 내어주고 그러면 개인의 삶은요?라고 묻는다면? 나도 내게 그런 질문을 하곤 했었다. 억울한 생각도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미술관이나 전시 티켓을 사놓고 가지 못한 적도 있고, 클래스 101에 담아 놓은 몇 가지 개인계발과 취미 강의는 진도를 못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답도 스스로 찾는 계기가 있었다.


<워라밸은 생애주기에 따라 다르다>


이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한창 리더가 되고 일을 하는 몇 년 사이에, 또 아이들이 어려서 내 손이 많이 필요했던 그 사이에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었다. 아버지가 “피곤하니 다음에 와라” 하는 배려의 말을 하실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손이라도 잡고 했었어야 한다는 것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눈물을 흘리며 깨달았다. 아버지는 내가 딸이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당당히 남성 중심 조직에서 존재감을 내며 성장하고 일하는 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셨고 회사에서 있는 크고 작은 이야기를 들으시는 것을 너무나 즐거워하셨는데 말이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가 병을 얻고 급격히 늙으셨고 코로나로 인해 병원에도 들어갈 수 없던 시기에 병원에서 8개월 정도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그 8개월 동안 기관 삽관을 하셔서 말을 하실 수 없는 아버지에게 영상 통화로 “아빠 기도하고 있어요. 힘내요. 사랑해요” 하면서 나의 마음을 전했을 뿐 임종 직전에나 가서 거의 반응이 없으신 아버지의 손을 비비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했다.


인생은 유한하고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는 말을 모든 가족이 내 곁에 있을 때 건강할 때 진정으로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한다. 아버지의 죽음과 이별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이제 마흔 후반이 된 내가 어떻게 남아있는 유한한 삶을 살아야 할지 깊이 돌아보게 하는 귀한 선물을 주고 가신 셈이다. 지금은 내 생애 주기상 돌봐야 할 가족이 가장 많은 시기가 되었다. 혼자 계신 양가 어머님, 남편 (파트너이지만 손이 좀 많이 가기는 한다 ㅎㅎ ), 학업이 중요하게 된 사춘기를 막 지난 고등학생 아들과, 사춘기를 향해 성큼성큼 들어서고 있는 딸까지. 그러나 이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은 미술관과 공연은 조금 미루고, 잠도 조금 모자라도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나고 부모님이 떠나기 전에 이 소중한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바로 사랑하고 함께하고 돌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초록으로 변한 봄날 공원을 가로질러 가다 보면 아이들이 어린 가족들이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한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때가 참 고되다고 생각했는데 꿈과 같은 행복한 시간이었고 내게는 다시 안 올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행복을 만끽해야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십 대 초반 학부 때는 비싼 돈을 들이고도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학위만 땄다. 일을 하고 나서 사십 대 초반에는 일을 더 잘하고 역량을 끌어올리고자 스스로 MBA를 갔다. 그때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다. 요즘도 다양한 주제의 글을 읽으며 영감을 얻는 일이 큰 즐거움이다. 그러면서 또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이 생겼는데 지금의 생애주기상 그리고 생계를 위해 일하는 동안에는 할 수가 없다. 잠시 미루고 버킷리스트에 담아둔다. 노인이 되어 공부를 하고 신문에 나올지도 모르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이십 대에 여러 나라를 갈 기회가 있었고, 삼십 대는 아이들과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고 캠핑도 다녔다. 이제 사십 대 후반이 된 나는 아직도 해가 뜨면 날이 좋으면 여행을 가고 싶지만 아이들이 바빠서 혹은 아이가 원치 않아서 온 가족 여행은 당분간 가기가 힘들 것 같다. 그래서 더욱 나무가 가득한 오래된 우리 아파트가 감사하고 그 안에서도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무와 꽃과 풀을 보면서 매일 출근하고 봄을 누린다. 큰 아이가 대학에 가면 우리 가족 모두 해외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고단한 나날 속에서도 보람과 짜릿함과 감사를 발견한다. 남편과 친정엄마가 나를 사랑하기에 말한다. 적당히 좀 해라.. 그만 열심히 살아.. 하신다. 그 말이 고맙다. 그러나 괜찮다. 한 번뿐인 인생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내 우선순위에 따라 고군분투하는 매일의 삶… 이것이 바로 나의 워라밸이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아이가 아프면 내 탓같고 일도 라이프도 엉망진청인 것 같아 눈물 흘릴 때도 있었다. 여전히 질서가 무너지는 날도 있고 내가 한심해 보일 때도 있다. 저글링을 하는 듯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인생 전체를 흐르는 워라밸을 바라볼 때 나에게 조금 관대하게 다독이며 용기를 주고 싶다. “No problem. It’s on-track”이다. 크고 작은 문제가 있지만 그게 인생이고 방향이 옳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나와 같이 고군분투하며 삶의 질서와 워라밸을 찾는 당신에 묻는다.

“당신의 삶의 가장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요?

워라밸의 답은 바로 거기에 있음을 기억하길 바라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