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인간, 호모사피엔스 2.0의 요즘 직장생활

AI가 바꾼 일하는 방식

이 보고서 꼭 필요한가요?


아침 8시에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8시 10분쯤 건물 1층의 커피숍에 들러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3층으로 올라가 8시 15분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로그인을 한다. 아웃룩 메일을 열어 밤 사이에 들어온 메일을 로딩하고 오늘의 일정을 체크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매일 아침 9시 전후로 항상 들어오는 리포트들이 있다. 시스템에서 매출 데이터를 다운로드하여 전일의 실적을 분석하고 엑셀과 각종 리포트 양식을 채우는 방식의 오래된 리포트들이다. 일부 자동화된 리포트도 있지만 사람의 수고를 요하는 리포트들이다.


어느 날 질문을 한다. 나와 동료들에게.
“이 많은 보고서들이 꼭 필요할까요? “


매일 나오는 리포트의 트렌드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수년 동안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계절적 요인에 따른 특징이 나타나거나 코로나, 반도체 수급 이슈, 트럼프의 관세 이슈 같은 특정 이벤트가 영향을 주어 일반적인 트렌드를 뒤흔드는 급격한 변화도 나타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많은 데일리 리포트를 여전히 만들고 있을까? 그리고 왜 이것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지 묻지 않았을까? 아마도 수년 전에 우리 조직의 의사 결정자들은 그 시절에는 아침마다 출력해서 보고하는 인쇄물을 보면서 의사 결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이러한 형식의 리포트가 필요했겠지. 하지만 이러한 리포트를 중단한다고 해서 오늘 우리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한편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이런 리포트를 만드는 일을 없애는 것이 누군가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도 조심스레 해 본다.



같은 사무실, 변화된 일의 방식, 일터를 찾아온 새로운 AI 도구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AI 기술의 발달과 사용자들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한 사무실 안에도 업무를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하는 다양한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얼리어답터가 애플 제품과 전기차와 같은 특정 산업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무실에서도 나타났다. 열심히 일하는 것(Work hard)이 아니라 똑똑하게 일하기를(Work smart) 선택하며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내는 요즘 직장생활의 달라진 모습에 대해서 나누고 싶다.


요즘 앞서가는 직원들은 Power BI 툴을 이용해서 데이터를 분석한다. 다양한 기준을 넣어 시각화할 수 있고, 각종 선택 기능을 만들어 사용자(리더나 실무자나)의 입맛에 맞게 데이터를 원할 때 살펴본다. 만약 같은 자료를 5가지 기준으로 다르게 살펴보기 위해 과거에는 다섯 개의 서로 다른 형식의 리포트가 필요했다면, 이제는 몇 가지 화면에서 데이터를 더 많은 변수에 따라 기준을 바꿔가며 더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툴을 통해 데이터를 보는 방식의 변화는 의사소통의 속도에 영향을 준다. Power BI에서 데이터를 공유하고 링크를 보내면, 과거처럼 엑셀 양식의 리포트를 메일에 첨부해서 아침마다 많은 수신자에게 보내는 대신, 데이터의 오너가 데이터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자동으로 발송되는 메일을 통해 “이 리포트가 홍길동에 의해서 업데이트되었습니다” 하고 알려준다. 그러면 그 자료가 필요한 사람이 필요할 때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소통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리포트를 만들기 위해 쓰던 시간을 데이터를 보며 의견을 교환하고 질문하고, 비즈니스 성과를 증대하기 위한 액션 플랜을 도출하는 데 쓰면 된다.


업계 동향 조사는 어떻게 할까? 전문적인 고객이나 상품 반응 분석등은 여전히 전문 리서치 기관에 의뢰하지만 동종 산업의 업계 동향은 전보다 훨씬 빠르게 할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뉴스기사를 하나씩 검색해 가며 내용을 정리하고, 그것을 다시 리포트 양식에 채워서 보고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요즘엔 CoPilot이나 ChatGPT를 통해 다양한 관련 정보를 찾고 쉽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여전히 정보의 깊이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우리 산업의 브랜드별 고객 케어 프로그램을 알려줘.”라고 질문하면, 일반적인 정보들을 종합한 내용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고객 케어 프로그램 중 유상상품과 무상상품을 구분해서 알려주고, 이런 상품을 이용할 때 고객들이 지불하게 되는 오너십 비용에 대해서 알려줘.”라고 질문한다면 훨씬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얻게 된다. 여기에 해외 사례, 최근 변화, 법적 관점, 비용 구조 등의 변수를 추가해서 정보의 방향을 확장시킬 수도 있다. 다만 기본적인 산업에 대한 이해와 감각으로 제공된 정보가 적합한 지 판단하는 검토과정과 제공된 자료의 소스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세밀함은 꼭 필요하다.


외국어 사용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회사는 미국계 회사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동료들, 해외 고객 또는 최상위 리더십과 일을 하려면 영어를 사용한다. 말하는 영어는 회의에서 쓰지만 매일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읽고 쓰는 영어의 비중이 높다. 과거에는 영어에 자신 없는 직원이 “저는 언어 때문에 이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라고 아쉬운 말을 해야 했지만, 요즘에는 회사가 적극 권장하는 CoPilot의 사용 덕분에 많은 직원들의 이메일이나 보고서와 같은 영어작문이 고급스럽게 바뀌고 있고, 말하는 영어가 다소 부족한 직원들도 조금만 노력하면 업무 제약 없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나 같은 경우 중상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고 있는데, 우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작성한 뒤 CoPilot에게 영어표현을 다듬어 주고 국어로 번역을 요청한다. 그러면 내가 쓴 문장을 원어민의 표현에 맞게 다듬고,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 주니 내가 원래 말하려던 의도가 잘 전달되는지 검토할 수 있다. 말하는 영어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는 스크립트를 미리 작성한 후 ChatGPT와 말하기 연습을 한다. 그러면 나의 발음, 억양, 말하는 속도 등을 교정해 준다. 원어민 없이 가상의 원어민과 공부하는 셈이다.


콘텐츠 작성은 생각지도 못했던 변화를 경험하는 분야이다. 한글로 원고를 써야 하거나 특별한 이벤트의 어젠다와 콘텐츠를 구성해야 할 때, 과거에는 홍보/광고 대행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초고를 직접 작성한 뒤, 맞춤법 교정, 문단 나눔, 인용구 보완, 핵심 주제 확인 등을 AI를 통해 빠르게 점검할 수 있다. 최근에는 몇 년 전에 읽었던 특정 심리학자의 이론을 인용하여 글에 깊이를 더 하고 싶어 검색하니 몇 초도 안 되어 정확한 문장과 근거 자료를 찾아주는 편리한 경험도 하였다. 또 다른 직원들과의 미팅에서는 “스트레스 관리”라는 주제로 자유 토론을 준비했는데, 몇 가지 키워드로 적절한 어젠다를 구성하고, 그에 맞는 디지털 초대장을 손쉽게 만들어 직원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었다.


구체적인 홍보물을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티브의 영역까지도 예외가 없다. 과거에는 제품 카탈로그를 만들 때 광고 대행사를 통해야 했고, 그에 따라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었다. 예를 들어 제품 내용과 기획 의도를 모르는 광고 대행사 직원에게 우리 제품을 교육하고 브리핑 세션을 거친 뒤, 몇 주가 지나야 기획의도에 맞는 크리에이티브 제안이 나왔고, 그 후에도 수차례 피드백을 주고받다 보면 제품 출시 일정이 촉박해 카탈로그 인쇄도 못 한 채 출시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결핍이 혁신을 만든다고나 할까? 한 직원은 광고비를 절감해야 하는 상황에서 핸드폰으로 직접 제품 사진을 찍고, Canva라는 이미지 편집 툴을 사용해 카탈로그를 직접 편집했다. 그리고 AI 음성 기술로 내용을 읽어주는 디지털 카탈로그를 제작했다. 물론 첫 시도이니 부족함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 소요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값진 혁신의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행동은 그 결과에만 머물지 않고 조직의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변화의 물고를 트기도 한다.


여기에 공유한 사례들은 대부분 예산 절감, 시간 단축, 일손 부족 등의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직접 배우고, 부딪치고, 적용하다가 얻어진 값진 조직의 변화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우리는 이제 변화해야 합니다. “라고 리더가 혼자 백번 말하는 것보다 조직 구성원들에게 더 큰 파급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내 곁에서 매일 마주하는 동료의 일하는 방식과 태도의 변화는 “나도 할 수 있구나” “나도 해야겠다”라는 긍정적인 동기 부여의 메시지가 되어 다가오는 것이다.


이렇듯 이제는 우리 직장인들도 어느새 우리 사무실로, 우리 일상으로 성큼 들어온 다양한 AI 도구들을 배우고 익히면서 어느 산업을 막론하고, 콘텐츠 기획자로, 창의적 결과물을 내는 크리에이터로, 정보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분석가의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유용한 도구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도구의 활용이 단순 검색과 정보의 탐색에 머물지 않고 더 나은 결과물과 비즈니스 성과로, 더 나아가 개인의 성장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어떤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가?” 하는 명확한 목적과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수가 된다. 또한 어디까지 얼마나 도구를 활용하고 어떤 부분에 인간의 창의력과 사고력의 진정성을 더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도 필요하다. 이 또한 조직 내 리더와 구성원이 함께 고민하고 실행하고 또 고민하면서 차차 찾아나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 2.0, 지혜로운 인간


AI의 발전으로 인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히 존재한다. 실제로 밀접한 산업에서 상당한 해고와 실직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일은 오늘과 다른 새로운 일을 하고, 변화를 맞이할 마음가짐과 배움의 열정이 있다면 우리의 일은 사라지기보다 재창조될 것이다. 수명이 길어지고, 평생직장이 사라진 지금, 이 변화는 마치 서핑을 하는 서퍼가 반드시 올라타야 하는 파도와 같다. 우리가 그 파도를 올라탈 수 있다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바다와 풍광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나타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도구만이 아니라, 창의성과 상징성이 결합된 복합 도구를 만들어냈다. 뼈, 나무, 돌을 조합해 낚시를 하고, 사냥 기술을 고도화하며, 장식적 도구로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들에게 도구는 곧 인간의 사고 확장이고, 표현 수단이며, 환경을 재구성하는 창의적 도전이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우리는, AI라는 도구를 활용해 스스로를 재설계하고 있는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라고 말하고 싶다. 데이터를 읽고 트렌드를 읽어내는 송길영 작가님의 ‘시대예보, 호명사회’ 책에서는 개인의 역량과 이름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이 시대에는 조직이나 집단의 이름 뒤에 숨기보다, ‘내 이름으로 불리며’ 진정한 역량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직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 새로운 도구를 익혀 나가고 있지만, 여기에 상상력을 더해 창의적 도전을 이어나가다 보면 모든 직장인의 꿈인 ”언젠가 나도 한 번 창업“ 을 뛰어넘어 ”창명(나의 이름을 새로 만드는)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겨난다.


물론 아직도 때로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도구들과 세상의 변화가 버거울 때도 있다. 그러나 겁내지 말고, 주눅 들 필요는 없다. 세상에 산해진미가 가득해도, 우리는 내 입맛에 맞게 골라 세끼를 먹으며 하루를 살아간다. 오늘도 내가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하루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그에 맞는 새로운 도구를 하나씩 골라 시도해 보자. 그렇게 지혜롭게 한 걸음씩 내딛는 호모 사피엔스 2.0으로 나아가보자.


<위에서 소개된 도구들>

Power BI: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데이터 시각화 및 대시보드 도구. 다양한 데이터를 연결해 실시간 분석과 공유가 가능하다

ChatGPT / CoPilot: 생성형 AI 기반의 텍스트 도우미. CoPilot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에 내장된 AI 기능으로, 이메일/문서 작성, 번역, 분석 등에 특화되어 있다.

Canva: 템플릿 기반의 디자인 플랫폼으로, 이미지·동영상·프레젠테이션 제작을 손쉽게 도와주는 온라인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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