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위엄과 존경으로 대해야 하는 이유
노사 간(노동조합과 회사) 미팅의 중요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조직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으려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더해 내가 선호하지 않지만 반드시 감당해야 하고 성장하는 영역의 일을 더해야만 한다. 노동조합과 함께 일하는 것이 이번에 내가 새로 맡은 역할에서 많이 배워야 하고 성장해야 하는 영역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상태는 이 영역에서 경험이 부족한 초짜라는 말이다. 그러니 실수도 한다. 혹시 처음부터 모든 일을 잘할 거라고 스스로에게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꼭 노동조합 간의 협상뿐만 아니라 남편과의 싸움 같은 치열한 갈등의 현장에서 내가 생각하는 이기는 기술(결과를 모두 내가 가져가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종의 최선의 합의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은 경청이다.
경청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읽고, 그래서 그에 맞는 충분한 고민을 하고 안을 내는 것이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요구를 이쪽에서는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은 또 그럴만한 이유와 상황이 이쪽에서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평행선을 달릴지, 서로 합의점을 찾을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시작점은 상대방이 왜 그것을 원하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다.
“알겠으니 너는 떠들어라. 나는 들어줄 생각이 없다.”
이런 태도와 의도로 테이블에 임한다면 그곳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경청은 모든 대화의 시작이다. 그렇게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잘 이해하고 나면 처음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양보를 하고 절충안을 찾을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지루하고 힘든 여러 번의 대화와 협상은 그런 길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사실 리더들이 노동조합과의 대화에 아직 미숙한 내게 준 귀한 조언이다.
위엄과 존중을 갖춰라
영어로 Respect 하고 Dignity를 가지고
임하라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아직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첨예한 갈등의 대화에서 상대방이 화를 내거나 고함을 치거나 위협을 할 때, 같이 고함을 치거나 화를 내고 반박을 하면 안 되고 여전히 침착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대화하고 존중하라는 의미이다.
속으로 “저 인간은 왜 나한테 지랄이야… 진짜 못 해 먹겠네.” 하지 말라는 것이다.
“너 나한테 이렇게 했지. 너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그렇게 미숙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난주 논의의 자리에서 한 조합원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나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고, 내 딴에는 (테이블 밑으로는 손이 덜덜 떨려 두 손을 꼭 잡았지만) 침착하게 답을 했다. 그런데 내 답 중 특정 단어가 상대측의 심기를 건드렸다. 상대방은 화를 내었고 고함을 쳤다. 일단 마치고 아무렇지 않은 듯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걸어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무렇지가 않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잘 운다. 회사에서는 안 울려고 눈을 부릅뜨고 산다. 그런데도 당황스럽거나 괴로울 때면 눈물이 맺힌다. 자리에 앉아 다음 일을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눈에 눈물이 맺힌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 티슈를 꺼내 얼른 눈 밑에 찍어 누르며 눈물을 삼킨다. 마음을 다스리려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쉰다. 그러다가 당혹함이 화로 바뀐다. 나 자신에 대한 화이다.
‘그까짓 질문 하나에 답도 똑바로, 정치적으로, 전략적으로 못해서 비난이나 사고 말이야… 너 왜 이런 일 하나도 처리를 못 해.’ 하는 나 자신을 비난하는 말이다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되어 동료들이 밥을 먹자고 한다. 밥을 여럿이 둘러앉아 먹으니 협상에 같이 들어갔던 한 동료가 어깨를 살짝 토닥이며 “괜찮죠?” 물었다.
“그럼요 괜찮죠.” 하고 나도 아무렇지 않은 듯 답하며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먹고, 멋쩍어서 국을 쳐다보며 고개를 숙였다. 식사 자리에 있던 다른 동료들도 “아이고 오늘 상무님 힘든 일 있으셨구나. 힘내요.” 하고 말을 건넨다. 식사 후 커피를 사 준 동료도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면서 평정심을 되찾았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은 후 소파에 널브러져 핸드폰을 열어 한 동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 일을 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간 동료이며, 옛날 나의 리더이고, 내 전임자이고, 내 멘토이다. 누구보다 내 속을 잘 알 것 같은 이 동료의 한 마디가 간절했나 보다. 메시지로 나 이런 일이 오늘 있었고, 나 힘들었는데 동료들이 많이 힘을 주더라… 나 이거 잘할 수 있을까, 여전히 의심된다 그런 내용을 편하게 말한다. 이런저런 동료의 답변 메시지에서 내가 꼭 듣고 싶었던 말이 어김없이 나온다.
“We believe in you. 우리는 너 믿어. 너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다시 힘을 얻고 평정심을 찾은 후 공원에 나가 어제와 내일처럼 또 걷고 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심기일전하여 돌아올 다음 협상에 임하려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상대방인 노동조합은 나쁜 사람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협상 테이블 밖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모자를 쓴 동료이다. 서로 갈등이 있고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때로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서로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이들도 내 편에 서서 내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동료들과 다름이 없는 그런 직장 동료인 것이다.
’아, 이번에 맡은 조직 내 역할을 통해 이런 것을 배워가는구나, 배워야 하는구나.’를 알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금요일 오후, 모르는 전화번호가 핸드폰에 떴다. 잘 모르는 번호는 요즘 받지 않는데, 왠지 모르게 받고 싶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본부장님, 저 ㅇㅇㅇ입니다. 제가 내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쁘시겠지만 참석해서 축하해 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일 결혼하는데 오늘 전화를 하다니, 상대방도 나를 초대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던 모양이다. 우리는 노동조합 미팅에서 만났기 때문에 사적인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던 터였다. 그러나 망설임 끝에 결혼식에 나를 (꽤 편하지만은 않은 사이인 나를) 초대해 준 것이, 나도 어쩐지 기분이 좋고 갑자기 심리적 거리가 확 좁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혼자 갈 용기는 나지 않아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혹시 내일 ㅇㅇㅇ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한 사람과 내일 같이 가기로 했다. 30분 전에 결혼식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러고 있는데 그 동료가 조금 있다가 말했다.
“아이고, 다른 대의원은 오늘 부친상을 당했네요. 내일 갈까 하는데 결혼식 갔다가 같이 가실래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러시죠… 같이 가요.”
이렇게 결혼식에 이어 장례식 약속까지 잡았다.
토요일이 되었다. 결혼식을 가서 노동조합의 조끼와 완장을 벗은, 말끔하게 차려입은 새신랑 동료를 축하하고, 결혼식에 온 많은 동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어색한 듯 괜찮은 듯 대화를 나눴다. 결혼식을 마치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건너가니 또 다른 무리의 동료들이 장례식장에 앉아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인과 부친상을 당한 동료에게 예를 갖춘 후에
“아버지는 평소 지병이 있으셨는지? 임종은 지켜드렸는지? 홀로 되신 어머니는 돌봐드릴 분이 가까이 있는지?”
대화를 나눴다. 결혼식을 다녀온 터라 장례식장에서는 잠깐 음료나 마시고 갈까 하고 앉았는데, 테이블에 노동조합 동료들이 몇 명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갈등의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고, 식혜를 하나 따서 종이컵에 따라 주면서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아이스 브레이킹이 끝나고 비슷한 연배의 우리들은 서로 자녀는 있는지, 고향은 어디인지, 하다 못해 교회를 다니는지까지, 그저 또래 비슷한 친구들이 나눌 그런 흔한 대화를 나누며 꽤나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내가 그렇듯, 저들도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아들이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들이다. 저마다 이유를 가지고 열심히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고, 노동자의 편에 서는 것이 옳다고 믿어 완장을 차고 띠를 둘렀을 뿐, 나와 같은 사람인 것을.
뜻밖에 찾아온 동료들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통해 협상 테이블 사이에 있던 거리,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의 거리가 조금은 좁혀진 것 같다.
왜 나의 리더들이 존중과 위엄의 마음으로 협상 테이블에 임하라고 했는지, 조금 헤아려지는 부분이다.
나는 여전히 미숙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여전히 실수를 할 것이고, 또 상대를 불같이 화나게 할 수도 있고, 첨예한 갈등으로 내닫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미리 알고 대비할 뿐만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서 각자의 역할에 맞게 최선을 다한 후 무대를 내려올 때, 우리는 다시 동료이고, 친구이고, 선후배이고,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을 잊지 않는다면, 다음번 협상의 테이블에는 조금은 더 담담하게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우리가 함께 성장하는 이 시간을 인생의 과정으로 감사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