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힘으로만 모두 해 낼 수 있는 어른의 일이 있기는 하더냐?
자정을 넘겼으니 벌써 25년의 반을 보내고 7월을 맞이했다.
무언가를 판매하는 부서를 이끌고 있는 사람에게 말일은 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날이다. 잘 나가던 일별 판매 실적이 좌우지간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사고와 시장의 상황으로 곤두박질칠 때도 있고, 목표대비 미달을 해서 마음을 졸이며 날마다 기도를 하다가 막판 스퍼트로 실적을 초과 달성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암튼 내가 해 본 일 중에서 무엇을 판다는 것, 영업은 예측불가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을 도전해 보지 못하고, 영업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 보지 못한다면 후회할 뻔했다. 조직의 많은 부서의 지원을 받아 결국 고객 접점에서 실적을 견인하는 판매부서의 역할은 무겁지만 좋은 실적을 달성했을 때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만약 영업에서의 실패를 먼저 경험해 보지 못하고 성공을 맛보았다면 꽤나 의기양양하며 남의 공을 가로챌 뻔했다. 그러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작년 이 맘 때는 여러 가지 이유로 판매가 부진한 제품의 영업부서를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매월 마감일마다 죄인 같은 기분으로 실적 보고서를 경영진에게 보내고 무거운 마음으로 어둑어둑한 주차장을 걸어 차를 몰고 거의 마지막으로 회사를 나서곤 했다.
여러 가지 이유는 이랬다.
경기가 어려웠다. 내가 팔던 제품은 아주 고가의 제품이다 보니 현금으로 사는 사람이 별로 없고 OO캐피탈과 같은 금융사를 통한 리스로 많이 구매를 하는데 신용승인이 나지 않아 구매를 하고 싶어도 구매를 못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데다가 몇 개월이 있으면 연식 변경에 따른 신제품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있어서 소비자들이 기존 상품에 대한 높은 할인을 요구했는데, 우리는 브랜드를 보호하기 위해 가격을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는 정책은 지양했다. 이렇게 까다로운 구매 환경에서 고객들도 구매를 망설이거나 지연시켰다. 계약을 했다가 취소하거나 구매를 미루는 고객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살 수 있는 여력이 되고, 브랜드의 충성심이 높은 고객들만이 제품을 구매했다. 내노라하는 전국의 베테랑 영업사원 및 대리점과 고군분투했지만 매월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으로 00% 목표 대비 미달, 부진 사유는 1) 번 xxx, 2번) xxx 이렇게 적고 또 적은 후 다음 달에 어떤 전략으로 판매를 만회하겠는지 액션 플랜까지 덧붙여 보고 메일을 보내야 또 한 달의 영업이 마감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래도 리더인데 결과에 관계없이 한 달을 또 고생해 준 팀원들에게는 “결과는 아쉽지만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달에는 더 잘해봅시다. “ 하면서 따뜻하게 먼저 퇴근을 시키곤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무리를 하고 나오는 내 마음 한편은 늘 쓰리고 아팠다. 그때 내 멘토들이 “네 잘못이 아니잖아. 힘내.. 견뎌보자…” 그렇게 위로를 해 주곤 했는데 그 말이 크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다르게 하면, 노력하면 곧게 뻗은 내 손이 거기, 그곳에 닿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보란 듯이 성공해 내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그 자리를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고 새로운 부서로 이동할 때까지 나는 내 마음에 후련한 그런 성공적인 실적을 내지 못했다. 그리고 아쉽지만 ‘내 역량이 안 되는 그런 일도 있구나,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이 있구나 ‘그렇게 담담히 받아들이며 그 무대에서 퇴장을 했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내가 부서를 옮기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새롭게 출시된 제품이 대박이 나버렸다. 가격도 올랐는데 계약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게 되었다. 어떤 동료가 농담으로 짓궂게 장난을 쳤다. “상무님, 진짜 운이 없네 …. 어떻게 그렇게 떠나오니 그 부서는 대박이 납니까?”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랑 인연이 없나 봐요. “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 성공을 맛볼 시간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이후 그 제품이 잘 되면 잘 될수록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내게 공을 돌렸다. “전임자가 씨를 열심히 뿌렸다. 가망 고객을 많이 모았다. 너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 ”
그렇게 받고 싶었던 인정을 막상 그 무대에서 내려오고 쓸쓸히 퇴장했다고 생각했던 그때에 받고 있었다. 새벽에 눈이 떠져 일찍 일어났는데 정말 고생을 많이 했던 그 실패의 시간들에 대한 의미가 비로소 깨달아져 알 수 없는 감격이 나를 압도했다. 톡을 열어 옛 동료들의 톡방에 글을 몇 자 적었다. “우리가 작년에 제대로 잘 살았나 봐요. 우리가 뿌린 씨가 올해 열매를 잘 맺고 있네요. 누가 열매를 거두든지 상관없이 우리의 수고를 우리는 서로 아니까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싶어요.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굉장히 이른 새벽이었는데 바로 답이 달리기 시작했다. 동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을 느끼고 배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제야 ”그 실패는 네 탓이 아니야 “라고 했던 멘토의 말을 기억하고 나에게 스스로 말해주었다. 사실 실패인 줄 알았던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누군가는 성공을 맛보고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힘든 시간을 견디는 일을 해야 했고, 그게 내 몫이었는데 성공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데 대해서 뿌듯함마저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가 성공을 맛보고 있다고 해도 그 성공은 오롯이 나의 수고의 결과가 아닐 수 있고, 실패의 깊은 골짜기를 통과한다고 해도 그 골짜기에 꼭 필요한 의미와 이유가 있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작년 이 맘때와 달리, 올해는 새로 이끌게 된 부서에서 6월의 실적을 초과 달성하며 팀을 승리하고 칭찬받는 팀으로 이끌었다. 흑백요리사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 승리하는 팀의 리더가 되어야겠다고 했다던 최 OO셰프의 말을 인상 깊게 봤는데, 내가 그런 리더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 혼자가 아닌 우리 팀이 이 수고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시 월마감 보고 메일에, 실적에 대한 내용과 초과 실적을 견인한 여러 가지 이유를 잘 정리한 후에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6월의 마지막 날 가벼운 발걸음으로 유유히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조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의 메일에는 “수고하셨습니다 “ ”좋은 실적 축하해 “ 하는 기분 좋은 답메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냉장고에 있는 여러 가지 재료를 가지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후루룩 잡채를 만들고, 아들내미가 좋아하는 연어장을 꺼내고, 남편이 좋아하는 미역국을 데워 저녁을 차렸다. 실패했던 말일은 눈물지었지만, 성공한 말일은 들뜨지 않았다. 왜냐하면 실패가 실패가 아니듯 성공도 성공이 아니기 때문에 씩 한 번 웃고 그저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내일이면 7월의 목표를 다시 받아 새롭게 매일매일의 판매를 쌓아가야 한다. 그렇게 또 치열한 일상이 시작되니 팀원들을 너무 들뜨게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따뜻한 격려는 꼭 해 주고 싶었다. 톡을 열어 몇 자 적었다.
“시간이 쏜 살 같아요
정말 다이내믹한 2분기를 우리가 함께 살아내었어요
정말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각자 수고한 자신을 토닥여 주세요
7월엔 다 같이 시원한 맥주 한 잔 같이 해 보겠습니다^^“
말수가 많지 않은 동료들이 간단한 답이나 하트와 좋아요를 누르며 마음을 표현한다. 이렇게 우리는 또 우리의 몫을 함께 잘 살아내었다. 이렇게 썩 괜찮았던 6월을 비로소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