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째 영어 공부 진행 중
한 번은 나의 영어 공부 일대기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최근에 있었던 이불킥 사건의 부끄러움을 또 하나의 새로고침과 교훈(Lessons learned)으로 승화하고자 실행에 옮겨본다.
“I am sorry but I don’t know if we can achieve this sales target next month. 미안하지만 다음 달에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
내가 명색이 세일즈팀의 리더인데 영어로 왜 이렇게 자신감도 없고 후지게 말했을까? 나도 이 말이 입에서 나감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아 나 망했다.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었고, 다른 더 멋진 표현을 쓸 수도 있었잖아. ‘ 하고 생각했다. 회의를 마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후회하고 있었는데 우리 팀 동료가 와서 말했다.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아까 “ The sales target for the next month is very challenging 다음 달 목표가 상당히 도전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면 더 프로페셔널해보지 않았을까요? 하고 조언해 주었다. 우리는 평소 어떻게 하면 우리 영어를 더 향상할 수 있을까 서로 의견을 많이 교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조언은 아주 고마운 일이다.
내가 말했다. “맞아요. 나도 입에서 말을 뱉으면서 … 내 영어 좀 후지다.” 생각했어요.
나는 한국말을 잘한다. 꽤 잘한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OO 이는 어쩜 저렇게 조리 있게 말을 잘할까?” 하셨고 커서 ”억울한 사람 도와주는 변호사가 되면 좋겠다. “ 하셨다. 전 직원 미팅 같은 데서 리더니까 말할 기회가 많이 있다. 직원들의 심금을 울리는 말도 종종 한다. 하루는 어떤 직원이 전 직원 미팅을 마치고 일부러 사무실로 찾아왔다. “상무님, 저 오늘 감동 먹었어요. 오늘 해 주신 말씀이 마음에 남았고 동기부여가 많이 되었어요.” 그랬다.
이런 나이지만 영어로 말을 할 때 나는 내 말하는 수준이 너무 싫다. 속상하다. 사실 35년간의 노력, 꾸준한 공부와 투자한 시간과 돈으로 인해서 중급 정도 실력은 되지만 한국말하는 나와 영어를 말하는 나는 다른 사람 같아서 부끄럽고 못마땅한 날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영어를 제대로 공부한 것이 중학교라고 하니 우리 애들은 나를 구석기시대 사람처럼 바라본다. 나는 면단위 소재의 중학교에서 정년퇴직이 가까우신 남자 선생님으로부터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우리 또래 많은 사람들이 아마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리라.
“How do you do?”
“How are you?”
“I am fine. Thank you and you?”
나중에 성인이 되고 외국인을 처음 만났을 때 “What’s up?”을 듣고 뭔 말이야? 했다. ㅎㅎㅎ
선생님의 억양과 발음은 당시 영어를 잘 모르는 내 귀에도 이상하게 들렸다.
그렇게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활자로 영어를 배우고, 교과서와 성문 영어를 달달달 외우며 당당히 대학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는 당시에 서울의 어느 학원에서 영어강의를 비디오테이프로 대여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지방에 살았지만 그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영어를 공부했었다. 그래도 영어의 문법과 단어를 열심히 공부했기에 나중에 성인이 되고 말하기 듣기 영어 공부를 하는데 탄탄한 기초를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던 그 시절의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이과 대학에 들어가니 실용 영어 수업을 필수과목으로 들어야 했다. 말하기 수업인데 말을 못 하니 가장 낮은 등급의 반에 편성이 되었고 그 말하기 시간이 너무나 싫었다. 버벅대는 나 자신을 매주 마주해야 하는 그 시간, 그 외국인 선생님 너무 싫었다. 나는 수학을 전공했는데 수학책도 영어로 된 원서들이라 영어 읽기는 계속되었지만 그 실용 영어 수업 이후로는 영어에 흥미를 잃고 더 이상 애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대학 졸업 후 기독교 관련 비영리 기관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에서 지역사회 개발을 위한 단체에서 말이다. 그 단체에서 일을 하려면 다국적의 직원들과 일을 해야 한다고 해서 카자흐스탄에 들어가기 전에 영어 실력을 향상을 위한 6개월의 영어 연수를 받게 되었다. 3개월은 뉴질랜드, 3개월은 호주에 머물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영어 연수를 했다. 에어비앤비가 없던 시절인데 어떤 큰 게스트 하우스에서 청소도 하고 봉사도 하며 영국인 여자 선생님으로부터 영어 수업을 받았다. 앤이라는 영어 선생님이었는데 어쩌다 영국인이 뉴질랜드에서 살고 계셨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주 사려 깊고 따뜻한 분이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면서 일을 병행했기 때문에 그곳의 직원들과 매일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려니 처음에는 손짓 발짓 다 써야 했다. 그러던 내가 차츰 부엌에 있는 다양한 용도의 그릇들도 구분하여 말할 수 있게 되었고, 화장실 청소할 때 쓰는 도구와 각종 세제류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영어는 그만큼 상황(context)과 환경(circumstance/environment)이 중요한 것 같다. 내가 만약 게스트 하우스에서 밥을 해 먹고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이후로도 ’ 쌀을 씻는 체‘ 가 영어로 “Sieve”라는 것을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영어 연수를 마치고 카자흐스탄에서 2년 동안 일을 했다. 지역 사회 개발을 하는 기관이어서 일주일에 삼일은 단체의 돈이 들고 나는 것을 관리하는 경리(book keeping) 일을 했고, 일주일에 두 번은 카작 학생들에게 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한국 연세대 어학당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단기 연수를 이수하기도 하였다. 이 이년 동안 내 영어는 일취월장했다.
어떻게 미국도, 영국도 아닌 카자흐스탄에서 영어가 향상될 수 있었을까? 나는 브라질 사람, 말레이시아 사람과 같이 한 아파트에서 방 세 개를 각자 쓰면서 살았다. 직장에서는 영국, 호주, 스위스, 싱가포르, 러시아, 남아공, 카자흐스탄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 우리의 공통 언어는 영어였다. 이들의 영어는 각양각색이었다. 억양도 다르고 발음도 다르고 그들이 같은 물건을 부르는 단어도 다양했다. 이런 다국적 영어에 노출이 되니 내 영어도 수많은 영어 중 한국식 영어 (Korean English ) 일뿐이었다. 부끄러움은 온데간데없고 생존 영어로 아무렇게나 말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 차츰 내 영어를 수정해 갔다. 이 때는 다양한 살아있는 영어를 듣는 것이 내 영어 향상에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다. 나의 영어 단어 스펙트럼은 달달 암기식의 고등학교 영어공부 덕분에 상당히 넓었기 때문에 그 다양한 국적의 영어를 들을 때 ”아하, 이 단어는 이럴 때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 하고 쏙쏙 이해하면서 연습과 실전에 적용을 해 나가게 되었다. 그러니 헛짓같이 보이는 앞의 영어 공부에 대한 그런 노력들도 다 쓸모가 있더라.
이 시기에 언어 학습에 대한 나의 이해를 좀 더 확장하는 기회가 하나 더 있었는데 현지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카자흐스탄을 간다고 할 때 부모님이 주변 어른들에게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미혼의 딸이 왜 거기에 가는지, 뭐 하러 가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던 탓에 ”우리 딸 소련에 공부하러 가요 “ 이렇게 둘러댔다고 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은 소련에서 90년대 초에 독립한 여러 CIS 국가 중의 하나이고 이곳에는 오래도록 이 땅에 살아온 카자흐 민족을 비롯한 다민족이 살아왔다. 고려인도 그 다민족의 하나이다. 그래서 나는 카작어를 배워보기로 했다. 이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자신들의 언어를 배우는 나를 현지의 카작인들이 마음을 활짝 열고 환대하고 도와주었다. 물론 전체 공용어 중의 하나인 러시아어도 시장 가고 버스와 택시 탈 정도로 배웠으나 맛보기만 했다. 카작어를 열심히 배웠는데 2년을 마치고 올 때는 상당히 유창하게 할 수 있었다. 2년 차에는 카작어-한국어 사전 번역 작업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정도였다. 돌아보니, 나는 살면서 영어, 카작어 말고도 중국어도 이년을 배웠다. 언어에 대한 갈증이 내 맘 깊은 곳에 있나 보다.
새로운 언어를 성인이 되어 배울 때 우리가 얼마나 좌절하고 자책하기 쉬운지 모른다. 그러나 두 개의 언어를 한국이 아닌 다른 환경에서 배워보니 나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가능한 문제도 아니거니와, 상대적으로 언어를 배우기 더 적합한 환경에 있을 때 결과가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언어를 배우는 상황을 고려하여 스스로에게 좀 더 친절하고 관대하게 대하려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공부를 놓지 않은 나 자신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어도 좋겠다 싶다.
카자흐스탄에서 돌아온 후 미국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전공무관 해외영업 부서를 입사한 탓에 영어로 밥을 먹고살아야 했다. 직장생활 초반에는 경영진에 계시는 미국분들보다는 주로 여러 마켓의 실무자들과 일을 하느라 다시 한번 인도 영어, 태국 영어, 남아공 영어, 유럽 영어, 호주 영어를 겪으면서 일을 했고, 지금은 나도 리더가 되어 북남미에서 오신 경영진들의 영어를 상대하고 있다. 주요 회의는 영어로 진행되고, 영어로 리포트를 쓰고, 영어로 발표를 한다. 회사를 20년 넘게 다녔지만 영어로 발표를 하는 일은 여전히 두렵고 떨린다. 그리고 내용을 숙지하고 미리 미팅을 준비해도 계획된 것과는 달리 버벅대는 경우도 많이 있어 그럴 때면 어김없이 이불킥을 하며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예전과 달라진 점은 영어도 중요하지만 영어보다 비즈니스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록 나의 영어라는 그릇이 투박해도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인 비즈니스에 대해서 더 철저하고 탁월하기 위해서 몸부리림을 친다.
다만 그 사이에도 나는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아이들을 낳고 육아를 하면서 피곤에 찌든 시절에 잠깐씩 손을 놓은 적은 있지만 미드(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졸더라도 영어에 대한 노출을 이어가려고 애를 썼다. 중간에 MBA를 다닐 때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와 같은 영어 텍스트를 열심히 읽으면서 소화를 해 내었다. 회사에서 개설된 점심시간 영어 수업을 몇 년간 듣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링글’ (내돈내산인데 요즘 이 영어 프로그램 주변에 침 튀기며 엄청 홍보하고 있다. 링글 사장님이 나를 홍보대사로 써 주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이라는 영어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매주 수업을 듣는다 고작 일주일에 20분짜리 수업이지만 미국, 영국과 같은 곳의 명문 대학생들, 졸업생들과 수업을 하는 것이다. 좋은 읽기 교제와 질문을 선택해서 예습을 하고 튜터와 20분 수업을 하면 AI와 튜터의 피드백을 받는다, 내 대화를 모두 녹음하여 AI가 냉정하게 내 발음이 얼마나 개선이 필요한 지 조목조목 알려준다. 장모음, 단모음도 엉망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파닉스 같은 것을 배운 세대가 아니다. 영어를 글로 배웠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이 수업에서 튜터들이 내게 “What is your purpose/objective of studying English? 당신이 영어 공부를 하는 목적/목표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 나는 언제나 말한다. 지금도 영어를 말합니다. 매일 영어로 일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좀 더 고급지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언어의 맛을 영어에서도 누려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 내 표현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켜 요즘 미국 사람들, 영국 사람들이 뉴욕에서 또는 런던에서 쓰고 있는 그런 영어로 바꿔준다. 그렇게 영어를 계속 공부한다. 물론 그 많은 교정 중에 한 두 개라도 실제 써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비록 더디고 지지부진해도 괜찮다. 밤 10시에 인천에 있는 내가 영국에 있는 튜터와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영어를 공부하기 더 좋은 세상이 되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우리 애들은 학원을 안 다닌다. 현재는 두 아이, 초6, 고1 둘 다 각자 공부하고 내가 조금 돕는다. 그러나 나는 나의 한을 풀고자 어릴 때 아이들을 영유(영어유치원)를 보냈다. 그래서 여섯 살, 일곱 살에는 재미있게 영어를 말하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초등, 중등을 거치니 결국 외국인 하나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말하는 영어는 잊어버렸고 이제 어휘와 읽기만 남아 있다. 그러나 기초를 잡아놓았으니 다시 말하는 영어를 하고 싶을 때 스스로 동기부여가 될 때 아이들이 선택해서 영어 공부를 할 때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나중에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영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지원해 달라고 하면 빚을 내서라도 어학연수도 보내주고 아낌없이 지원을 할 작정이다.
이 정도로 나의 영어에 대한 미련은 쉽사리 식지 않는다. 35년을 공부했지만 영어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고, 맘에 들지 않을 때가 아직도 많다. 가끔 비즈니스 실력은 없는 것 같은데 샬라샬라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들 엄청 부럽고 억울할 때도 있다. 다시 태어나면 영국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영국 악센트가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수많은 언어 중의 하나로 보고 맘을 편히 먹으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언어를 배운 다는 것은 문화를 이해하고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배울 때 느꼈던 그 재미와 소중함을 영어를 배울 때도 놓치치 않으려고 한다. 영어 공부를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생각을 바꾼다면 좋을 것 같다. 영어 공부 이제는 즐겁게 하고 싶다.
몇 년 전에 TV 광고에서 조정석 배우가 말했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Of course, I can do it. 영어 까이껏 하면 되지.. 지치지 말자고… 꾸준히 하는 것도 실력인 것을 …이 생애에서는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