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미네 집에 엄마가 있었다.

비록 우리 집엔 방과 후 맞아주는 엄마가 없을지라도

5월은 한음초등학교 과학축제가 열리는 달이다. 반별로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운동장과 강당에 과학 실험 부스를 만들고, 여러 학년 친구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이 이벤트는 과학축제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행사였다. 담임선생님인 이동호 선생님은 민주적인 토론과 학급 친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과학축제는 4학년 3반이 어떤 과학 부스를 운영할지 주제를 정하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반장이 앞으로 나와서 친구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함께 주제를 정하는 걸 도와줄래?”
선생님의 말씀에 반장 인아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럼 이제부터 아이디어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아이디어, 나쁜 아이디어 그런 건 없으니까, 누구든지 손을 들고 자유롭게 발표해 주세요.”

인아는 언제나 준비된 리더답게 반장 역할을 잘해 냈다. 그러나 아이들은 조용히 눈치만 볼 뿐이었다.

“자,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야기해 보자, 친구들아.”

그래도 교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빙그레 웃고 있는데, 정적을 깨고 의찬이가 손을 들었다.

“김의찬 학생, 의견 말해 주세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게 좋은 아이디어인진 모르겠는데, 상한 음식에서 곰팡이가 생기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관찰하게 하면 어때? 사실 내가 어제 곰팡이를 봤거든. 엄마가 지난주에 고구마를 쪄줬는데, 내가 먹다 말고 책상에 올려놨거든. 근데 그 위에 우리 동생이 큰 인형을 올려놓고 며칠을 지냈더니 이상한 냄새가 나서 보니까 곰팡이가 피었더라고.”

교실에 웃음이 터졌다.
“김의찬, 생각만 해도 우웩이다!”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의찬이 덕분에 다른 친구들이 어떤 식으로 아이디어를 내야 할지 감을 잡았다. 물꼬를 튼 의찬이를 시작으로 상미와 지형이도 손을 들었다.


1. 김의찬: 곰팡이 관찰하기 — 준비물: 상한 음식, 냄새나지 않게 뚜껑 있는 통에 담아 오기

2. 박상미: 햇빛으로 그림자 시계 만들기 — 운동장 한가운데 막대기를 세우고, 매 시간마다 방문하는 친구들에게 그림자를 표시하게 하기. 그러면 시간에 따라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이 달라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준비물: 막대기, 핸드폰(사진 촬영 및 기록용)

3. 오지형: 물속 굴절 마술 — 종이에 화살표를 그리고 컵에 물을 채워 종이 뒤에 두면 화살표의 방향이 바뀌는 현상 관찰. 준비물: 투명한 물병, 종이, 펜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인아가 세 가지로 추려 투표를 제안했다. 결과는 상미의 그림자 시계 만들기가 압도적이었다. 큰 준비물이 필요 없고 간단했기 때문이다. 스물여섯 명 중 스무 명이 선택했다. 사실 상미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나도 안 해 봤는데… 정말 잘 될까? 과학축제 전에 한 번 연습을 해 봐야겠다.’


마지막 5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친구들이 가방을 챙겨 뛰쳐나갈 때, 상미가 은율이와 인아를 붙들었다.
“은율아, 인아야! 집에 가지 말고 잠깐 기다려 봐.”
“왜, 상미야?” 인아가 물었다. 은율이도 궁금한 눈으로 상미를 바라봤다.

“사실 내가 낸 아이디어, 진짜 되는지 해 본 적이 없어. 미리 해 봐야 할 것 같아. 만약 잘 안 되면 과학축제 때 창피하잖아.”
“아, 그래?” 두 아이가 대답했다.

셋은 아이들이 모두 귀가한 후 운동장으로 나가, 막대기와 돌멩이를 이용해 그림자를 표시하며 실험을 시작했다. 놀이 같기도 하고 실험 같은 한 시간 두 시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자, 은율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모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우리 집 가서 라면 먹을래?” 상미가 제안했다.

영어학원을 가야 하는 은율이가 망설이자 인아가 말했다.
“나도 수학학원 가야 하긴 한데… 오늘만 빠질까?”
은율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상미네 집으로 향했다.
은율이는 이런 ‘일탈’이 처음이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엄마한테 한 번 혼나버리지 뭐.”
그 말을 뱉어버리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비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상미네 집에는 상미 엄마가 있었다. 상미 엄마가 세 아이를 반갑게 맞아 주시며 라면을 끓여 주고, 과자와 우유도 내어주셨다. 방과 후 배가 고프면 늘 사발면에 온수를 부어 혼자 먹던 은율이는 괜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왜 상미 엄마는 집에서 상미를 맞아 주시는데, 우리 엄마는 늘 출근하고 자주 야근해야 할까?’
즐겁게 놀면서도 중간중간 엄마 생각이 났다. 상미네 집에서 돌아온 은율이는 엄마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엄마, 언젠가 나도 학교 갔다 오면 엄마가 집에서 나를 맞아줬으면 좋겠어.”
“나 사실 오늘 학원 안 가고 상미네 집에 가서 상미 엄마가 주신 간식 먹고 놀았어.”

곧 답장이 왔다.
“그랬구나. 엄마 집에 가서 더 이야기하자. 회의 들어갈게.”

엄마는 바빠 보였다. 짧은 대화는 곧 끝났다.


쓸쓸했지만 은율이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가방을 열고 물병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았다. 문제집을 펴고 연필을 깎아 이내 공부를 시작했다.


그날 밤, 엄마는 은율이를 혼내지 않았다.
“은율아, 엄마 다음 주에 휴가 냈어. 금요일엔 학원 빼고 우리 하루 놀자.”
“정말? 엄마, 우리 놀이동산 갈까?”
“오케이, 렛츠 고!”

며칠 뒤, 놀이공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은율이가 말했다.
“엄마, 나를 위해 휴가 내줘서 고마워.”
“뭘 그런 말을. 우리 딸, 엄마가 일 너무 열심히 해서 서운했지?”
“아니야. 처음엔 그랬는데, 우리 반에 보니까 전업주부 엄마도 있지만 엄마처럼 일하는 엄마도 많이 있더라고. 각자 자기 인생 사는 거지 뭐.”
“이해해 줘서 고마워. 우리 딸 다 컸네. 은율이도 자기가 원하는 거 하면서 살아. 엄마가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이윽고 놀이동산에 도착했고, 그날 엄마와 은율이는 아쉬움 한 조각 없이 온종일 실컷 놀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둘은 약속했다. “다음 달에도 엄마 월차 내서 또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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