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오빠와 아빠의 싸움을 중재하는 동생의 역할이란~
토요일 아침 은율이가 모처럼 꿀잠을 자고 눈을 떴다. 밖이 환한 것을 보니까 시간이 많이 되었나 보다 생각했다. 은율이가 방문을 열면서 평소처럼 “엄마, 나 일어났어.” 하고 말하면서 거실로 나갔다. 집이 너무 고요했다. 토요일 아침답지 않게 집이 너무 적막했다.
안방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방 안에서 엄마 아빠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다소 심각해 보여서 문을 열려고 했던 손잡이를 도로 놓았다. 그리고는 귀를 쫑긋 문에 바짝 갖다 댔다.
“나는 은호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매를 좀 들어야 할 것 같아.” 아빠가 심각하게 말했다. 엄마는 의견이 달라 보였다. “은호 아빠, 은호가 반항적인 것도 맞고 학교에서 한 행동도 잘못된 것은 맞아. 그렇다고 해도 나는 체벌은 아닌 것 같아. 은호가 지금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고려해서 말로 타이르거나, 은호 아빠 생각에는 강도 높은 제재가 필요하다면 벌을 주는 것은 어때?”
아빠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당신은 남자아이들을 몰라서 그래. 남자아이들은 자신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제대로 혼나서 겁도 좀 나고 그래야 해. 그래야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지난번처럼 호되게 혼날 수 있으니까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자제력이 생긴다고.” 엄마의 목소리가 더 올라가서 이제는 귀를 문에 대지 않아도 크게 들렸다. “나 참, 은호 아빠. 당신이 중학생이었던 그 시절 하고는 지금 시대가 다르다고. 우리 애들은 사회적으로 체벌을 권하지 않거나 자제하는 분위기에서 자라고 있어. 모두 집집마다 아이들이 적어서 얼마나 귀하게 키우는데 당신만 왜 이렇게 고지식하게 그러는 건데…” “안 되겠다. 당신은 빠져. 이번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할 거야.” 아빠도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아빠가 나오는 바람에 안방 문에 바짝 붙어 문고리를 붙들고 있던 은율이가 깜짝 놀라 넘어질 뻔했다. “최은율,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괜히 아빠는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은율이에게 화를 냈다. “아… 그게 아니라… 방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엄마, 아빠가 너무 심각해서 기다리고 있었지.” 은율이가 대충 말끝을 흐리고 머쓱해서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가 “최은호, 거실로 나와.”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은호 방의 문이 열리고 은호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나왔다.
사건인 즉, 요즘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며 절제가 잘 되지 않은 중2가 된 은호가 학교에서 기술 선생님과 싸워서 수업을 망쳐 학교에서 물의를 일으켰다. 선생님은 은호가 잘 통제가 되지 않아서 위클래스 선생님과(중학교의 상담교사) 면담을 하고 부모님께 연락을 하게 된 것이었다. 고지식하고 예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아빠는 일단 이 상황에 무척 화가 나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는 제대로 혼내서 예의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은호의 행동을 교정해야 할지에 대해서 엄마, 아빠는 아침부터 이야기를 하다가 의견 차이로 크게 다퉜고 은호는 아빠에게 혼나러 불려 나왔던 것이다. 엄마는 포기한 듯 열린 안방 문 건너편에 침대에 걸쳐 앉아 반대편 거실에서 아빠와 은호가 마주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은율이도 방문을 살짝 열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피고 있었다. 모두가 긴장되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빠가 말을 했다. “최은호, 아빠는 네가 학교에서 선생님과 싸웠다는 것 자체가 용납이 안 된다. 아빠는 널 좀 혼내야겠어.” 이미 아빠 손에는 여행을 갔을 때 샀던 조선시대의 목검(모조품)이 들려 있었다. 아빠가 그 목검으로 아이들에게 겁을 준 적은 있었지만 그 검으로 직접 체벌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아빠는 진짜 그 목검을 당장이라도 휘두를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은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지만 굳게 다문 입술과 꼭 쥔 주먹은 뭔가 기회를 기다리는 사자처럼 결연해 보였다. “그냥 아빠한테 한 대 맞자. 그럼 네가 다음에 선생님과 또 싸우고 싶은 순간에 엉덩이에 맞은 이 매가 생각나겠지. 그럼 아빠가 너를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어?” “아빠, 나도 한마디 말해도 될까?” “그래, 입이 있으면 해 봐.” “내가 잘못한 행동을 한 것은 맞지만 아빠도 내가 왜 그랬는지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야. 기술 선생도 썩 잘한 것은 없거든.” “야. 기술 선생? 너 지금 기술 선생이라고 했어? 너 아직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구나.” “그래… 기술 선생님…이라고 할게.” 비아냥거리듯 은호의 눈빛이 바뀌었고 마지못해 ‘님’ 자를 붙였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기술 선생님도 잘못했다고. 기술 선생님이 책을 안 가져온 나랑 성우에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면서 우리를 인신공격했어. 그래서 내가 말대답을 하다가 설왕설래하면서 다투게 되었다고.” “그래서? 잘했다는 거야?” 아빠는 은호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은호는 점점 더 화가 올라오는 것처럼 보였고 흥분해서 “아빠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어른이면 다 옳은 거야? 어른에게는 시시비비와 상관없이 예의가 더 중요해?” 하면서 따발총처럼 따지기 시작했다. 아빠가 같이 흥분해서 “이 자식이 어디서 소리를 질러?” 하면서 손에 있던 검을 들어 책상을 내리치려는 순간 은호의 손이 검을 잡았다. 사실 은호는 중1이 되면서 이미 아빠보다 키도 컸고, 덩치가 더 커졌다. 힘은 은호가 더 세 보였다. 갑자기 순식간에 집은 아수라장이 되기 직전이었다.
그 사이에 언제 나왔는지 은율이가 아빠 팔을 잡고 있었다. “아빠, 나 좀 봐봐. 아빠, 내가 방에서 다 들었는데, 아빠 왜 이렇게 감정적이야? 아빠, 이 검 제자리에 갖다 놓아.” 은율이가 이렇게 큰 소리로 말을 할 수 있다니 온 가족이 모두 놀랐다. 아빠가 말했다. “은율이, 너 방에 안 들어가? 너까지 지금 뭐 하는 거야? 아빠가 오빠 혼내는 거 안 보여?” 은율이가 지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알아. 근데 아빠가 이렇게 하는 것도 나는 옳지 않은 것 같아. 오빠 이야기도 충분히 들어야지. 그리고 나는 오빠 말에도 공감이 많이 되거든. 어른도 잘못할 때 있잖아. 오빠가 잘못한 행동만 혼내야지. 오빠가 어른이 아니라서 무조건 잘못했다는 것은 나는 아닌 것 같아.” 단호한 은율이의 말에 아빠가 움찔하며 목검을 내려놓았고 이내 곧 은율이에게 넘겨주었다. 은율이가 목검을 가지고 가서 베란다에다 던져 놓고 꼴도 보기 싫다는 듯 거실과 베란다 사이의 중문을 닫고 커튼을 확 쳐 버렸다. 다시 자리에 온 은율이가 이번에는 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도 목소리 낮추고 차분하게 이야기해 봐. 오빠가 하고 싶은 말을 아빠가 잘 듣게 하려면 오빠도 침착하게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해야지. 오빠가 흥분하니까 아빠도 흥분하고 둘 다 소리를 지르고 있잖아.”
어느새 엄마도 거실로 나와 있었다. “그건 은율이 말이 맞네.” 하고 거들었다. 은호가 “알겠어.” 퉁퉁 부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정리를 했다. “자자, 나도 방에서 다 들어봤는데 우리 지금 온 가족이 생각이 다 다르고 그래서 우리끼리 격돌하고 있는 것 같아. 우리 잠시 흩어지자. 각자 방으로 가서 30분만 생각해 보고 다시 와서 차분하게 거실 탁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자.” 거실에 엄마가 좋아하는 둥근 탁자가 있었고, 종종 가족회의 겸 해서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 제법 민주적으로 논의를 해 왔었다. 그래서 모두 30분 후에 둥근 탁자로 다시 모여 이야기하자는 말은 감정을 내려놓고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대화를 하자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아빠와 오빠가 각자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서 방으로 들어갔다.
은율이도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엄마가 은율이를 잡았다. 갑자기 엄마가 은율이를 안아 주었다. “최은율, 우리 딸 이런 대범한 면이 있는지 몰랐네. 오늘 은율이가 참 잘했어. 더 큰 감정싸움으로 갈 수 있었는데 은율이가 참 잘했어. 아빠도 은율이 말은 잘 들으시네.” 하면서 다시 은율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돌려보냈다.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했다는 거지? 난 그냥 하도 답답해서 아빠랑 최은호에게 한마디 해 준 것인데 말이지.’ 은율이가 빙그레 웃으며 생각했다.
집에는 다시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그러나 그리 차갑지 만은 않은 차분한 고요함이었다.
30분이 지났다.
가족은 모두 각자의 방에서 나와 거실의 둥근 탁자에 둘러앉았다. 이번에는 은율이가 사회를 보고 오빠, 아빠 순서대로 각자 자신의 생각을 민주적으로 나눴다. 은호의 당시 기술 수업 사정도 자세히 들었고 은호가 기분이 상했던 부분에 대해서 아빠도 공감해 주었다. 이러쿵저러쿵 엄마와 은율이도 의견을 거들었다. 은호의 사건으로 시작하다가 분위기가 훈훈해져서 저녁에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사다가 구워 먹자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다.
아빠는 괜히 멋쩍은 듯, “우리 애들이 많이 컸구만. 맘대로 혼내지도 못하겠네. ㅎㅎ” 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은호는 기술 선생님을 찾아가 사과를 하고, 선생님께 은호가 기분 나빴던 부분까지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눴다. 은호는 중간고사에서 기술·가정 시험을 100점을 맞았고 지금까지 기술 선생님과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