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집중!
“김 부장, 다음 달 대리점 인센티브는 잘 정리된 것 같은데 CFO(최고재무책임자)께 금주 내 승인을 받아야 집행이 가능하니까 서둘러 줘. 벌써 수요일이니까 이틀밖에 없잖아.” 엄마의 상사인 이상화 상무가 말했다. “네, 차질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은율이 엄마, 그러니까 김지은 부장이 대답했다. 은율이 엄마는 여기저기 메모가 빼곡히 적힌 회의 자료들을 한 손으로 모아 다이어리 사이에 넣었다. 이제 곧 회의가 마무리될 것 같았다. 그런데 끝날 듯 끝날 듯하면서도 회의가 끝나질 않았다. 이 상무가 갑자기 “아, 맞다, 박 부장” 하고 부르며 회의를 다시 이어갔다.
은율이 엄마는 핸드폰을 봤다가 회의실 벽에 걸린 전자시계를 봤다가 했다. 전자시계가 5:59에서 6:00으로 바뀌었다. ‘오늘 은율이랑 스케이트보드 타러 가는 날인데, 지금 나가야 집에 가서 은율이 태우고 제시간에 스케이트보드 파크에 갈 수 있는데 말이지. 이 상무는 왜 저렇게 뜸을 들이고 난리야, 진짜.’ 은율이 엄마의 마음이 바짝 타들어갔다.
마음이 바쁜 건 은율이 엄마만이 아니었다. 옆에 앉은 박 차장은 7시에 치과 치료 예약이 되어 있고, 오 대리는 오늘 딸아이 하원 도우미 이모님이 휴가를 내신 날이라 어린이집 야간반에서 선생님과 둘이 놀고 있을 딸아이 얼굴이 아른거렸다. 이 상무는 이런 부하들의 애타는 마음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6시 9분이 되어 회의가 끝났다. 모두 각자의 짐을 챙겨 회의실을 나와 흩어졌다. 은율이 엄마도 책상 서랍에 다이어리를 던지듯 내려놓고 서랍을 닫았다. 노트북이 담겨 꽤나 묵직한 배낭을 둘러메고 나서면서 동료들에게 인사했다. “내일 봐요. 한 차장님, 저 먼저 가요.” 한 차장은 은율이 엄마와 야근을 서로 도맡아 하는 또래 직원이었다. 한 차장은 오늘도 야근을 하려는지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책상에 올려진 초콜릿과자를 뜯어 한 입에 넣으면서 “그래, 내일 봐.” 하고 은율이 엄마에게 인사했다.
은율이 엄마가 주차장에서 차에 시동을 거는데, 핸드폰과 자동차의 무선 카플레이(전화·메시지 앱, 내비게이션 앱이나 음악 앱 등이 모여 있는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으로, 핸드폰과 무선으로 연동됨)가 활성화되면서 “카톡” 하고 경쾌한 소리를 냈다. 아이폰의 시리가 메시지를 읽어주었다. “엄마, 오고 있는 거야? 오늘 스케이트보드 갈 수 있는 거지?” 엄마가 아이폰의 인공지능 기능인 시리(Siri)에게 말했다. “시리야, 우리 딸에게 전화해 줘.” 시리가 즉각 반응하며 “우리딸님에게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전화벨이 울리자 바로 은율이가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엄마, 어디야?” 은율이가 오늘 스케이트보드를 꼭 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미리미리 알려주지 않고 늘 스케이트보드 타러 가기 한두 시간 전에 급하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우리 딸, 미안해. 엄마가 오늘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주말에 보강하러 가자.” 이러곤 했다. 한 달에 네 번 가는데, 제 날짜에는 두 번 가는 달도 있고 세 번 가는 달도 있었다. 물론 속이 깊은 은율이는 엄마 사정을 잘 이해했다.
어떤 날은 “은율아, 엄마 오늘 대전 갔다가 올라가는 길인데 차가 많이 막혀서 제시간에 못 갈 것 같아. 선생님께 전화할 테니까, 은율이는 그냥 밥 먹고 쉬고 있어. 오늘은 안 되겠다.” 그랬다. 그러면 은율이는 “할 수 없지. 엄마, 그래도 토요일에는 꼭 같이 가기다. 조심해서 와. 안전 운전하고, 알겠지?” 하고 착하게 대답하며 상황을 수용했다.
또 어떤 날은 “은율아, 엄마 오늘 갑자기 저녁 8시에 콜이 잡혔어. 미국 사람들이랑 하는 회의라서 시간 조정이 안 되겠네. 그쪽은 아침이고 우리는 저녁이거든… 미안해서 어쩌지? 우리 이번 주에 주말에 꼭 타자.” 그러면 은율이는 또 “알겠어. 그럼 엄마 회의 마치고 올 거야? 아주 늦게? 저녁은 먹고 일해.” 하며 오히려 엄마를 챙겨주곤 했다.
엄마가 그렇게 녹록지 않은 직장 생활 속 다양한 변수에도 불구하고, 은율이와 매주 수요일에 스케이트보드를 타려고 애를 쓴다는 것을 은율이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엄마가 집으로 오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엄마 어디야?” 하고 묻는 은율이 질문에 엄마도 경쾌하게 말했다. “엄마 지금 집에 가고 있지. 7시까지는 도착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뭐라도 먹고 있어. 엄마는 옷만 갈아입고 바로 나와야겠어.”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은율이가 대답했다. “오케이. 나 밥 먹고 있을게. 조심해서 와.”
은율이가 밥통에서 밥을 반 공기쯤 담고 그 옆에 있는 도시락김 묶음에서 김을 두 개 꺼내 식탁에 앉았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이것저것 반찬통이 있었지만 깍두기 김치 그릇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릇을 꺼내 식탁에 놓고 뚜껑을 열었다. 은율이는 입이 짧았다. 엄마가 옆에 없으니 밥이랑 깍두기랑 김을 올려놓고 단출하게 먹었다. 그래도 꿀맛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은 짭조름한 김하고 왜 이렇게 잘 맞는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은율이는 야채를 잘 먹지 않고 편식을 했지만 김치는 잘 먹었다. 그중에서도 깍두기를 잘 먹어서 엄마는 은율이를 ‘깍두기 공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 두 장을 겹쳐 놓고 그 위에 밥을 한 숟가락 올려 짭조름한 밥숟가락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깍두기를 하나 더 입에 넣으니 시원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밥을 다 먹고 그릇을 모아 싱크대에 놓았다. 엄마가 물로 불리라고 했던 기억이 나서 밥풀이 남아 있는 공기와 숟가락, 젓가락에 물을 뿌려 놓았다. 김은 몇 장 남았는데 손으로 입에 계속 넣으면서 다 먹어치웠다.
화장실에 가서 손을 닦고 이도 닦았다. 학교 다녀와서 현관 앞에 벗어 두었던 뒤집혀 있는 양말을 다시 제대로 뒤집어 신고 검은색 운동복 바지를 입었다. 시계는 6시 45분을 지나고 있었다. 엄마 곧 오겠지 생각하면서 핸드폰을 열어 쇼츠영상을 몇 개 보다 보니 10분이 금방 갔다. 6시 55분. 이제 엄마 진짜 와야 하는데… 생각했다.
‘띡띡띡띡 띡’ (엄마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 ‘철컥’(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현관문이 열리고 엄마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은율아, 밥 먹었지? 엄마 옷만 갈아입고 나가자.” 말을 하면서 엄마가 가방을 현관 앞에 내려놓고 동시에 방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엄마가 순식간에 운동복을 입고 나왔다. 뒷베란다로 가더니 김치 냉장고 위에 올려져 있던 바나나 하나를 꺼내 들고는 “은율아, 출발 출발, 가자.” 말했다. “엄마, 차 키 챙겨야지.” 하면서 엄마 가방에서 차 키를 챙겨 정신이 없어 보이는 엄마에게 주었다. 스케이트보드 장비는 모두 엄마 차의 트렁크에 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나가면 되었다.
은율이가 먼저 나가서 엄마가 신발을 신는 사이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놓았다. 엄마는 나오다 말고 도로 들어갔다. “나 아무리 바빠도 커피는 한 잔 가져가야겠어. 속이 탄다.” 엄마는 어디 가려고 할 때마다 들락날락 몇 번 하는 습관이 있어서 은율이는 그러려니 했다.
이윽고 엄마가 바나나 한 개와 텀블러를 들고 나왔다. 엄마는 액상으로 된 커피 원액에 찬물을 타서 마시곤 했다. 그래서 텀블러에 금방 커피를 한 잔 만들어 나왔다. 이미 밖은 어두컴컴했다. 주차장에서 차에 타고 안전벨트를 하고 둘은 스케이트보드 파크를 향해 출발했다. 엄마는 아직도 분주해 보였다. 익숙한 길이니 차분하게 운전하고 있었지만 그래 보였다.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 정차한 틈에 엄마가 텀블러 뚜껑을 열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내려놓으면서 “은율아, 이거 바나나 껍질 좀 까 봐. 엄마 운전하느라 이것까지는 못하겠네.” 은율이는 얼른 바나나 껍질을 반쯤 까서 엄마 손에 쥐여 주었다. 엄마는 얼른 받아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새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고 차는 다시 출발했다.
은율이가 자연스럽게 엄마 핸드폰을 열어 음악 앱을 켜고 플레이리스트에서 ‘아이돌’이라고 된 폴더를 열었다. 엄마 차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러 가는 날이나 엄마와 어디를 가는 날에, 엄마가 은율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편하게 들으라고 음악앱에 은율이 전용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노래들을 저장해 주었다. 은율이도 좋은 노래가 생각날 때마다 엄마 핸드폰을 열어 ‘아이돌’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 두었다. 능숙하게 리스트를 열어 ‘전체 듣기’를 선택했다. 그러자 아이돌 노래 중 “어느 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투바투의 노래다).”가 흘러나왔다. 핸드폰과 연결된 차 전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작은 차량 내부를 가득 채우며 귀와 가슴을 동시에 자극했다. 은율이는 손을 휘저으며 춤도 추고 이내 노래에 심취했다. 얼마나 자주 들었는지 엄마도 따라 불렀다. “우리 둘이 둘이 둘이잖아. Oh oh oh oh oh.” “뭐야? 엄마 이거 가사 다 외웠어?” “아니, 다는 아니야. 그냥 중간중간 몇 소절만.” “그래도 대단하네.” 은율이가 엄마를 치켜세우자 엄마도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내가 생각해도 난 좀 멋진 것 같아. 투바투 노래 따라 부르는 엄마 많지 않을 걸. ㅎㅎ” “아마도.” 은율이가 맞장구를 쳐줬다.
그 이후에도 “Good Boy Gone Bad”, “5시 53분의 하늘에서 발견한 너와 나” 같은 노래들을 더 들었다. 자동차 디스플레이의 시계는 7시 27분을 향하고 있었다. 7시 30분부터 수업이라서 아슬아슬했다.
엄마가 주차를 하고 트렁크를 열어 장비 가방을 꺼내, 은율이 것은 오른쪽 어깨에, 엄마 것은 왼쪽 어깨에 둘러메었다. “엄마, 내 거 내가 멜까? 엄마 바나나 한 개 먹어서 기운 없지 않아?” 은율이가 묻고 엄마가 대답했다.
“아니야, 괜찮아. 바나나가 순간 에너지를 내주는 것 같은데… 아직 괜찮아. 너는 헬멧 들어줘.” 엄마는 키도 안 크고 힘도 세지 않지만 필요할 때는 어디서 에너지가 마구 솟아나는 것 같았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할 때 늘 그랬다. 주말에 자전거 타고 와서 자전거를 우리 집 베란다에 넣을 때도 엄마는 번쩍 자전거를 들어 성큼성큼 거실을 가로질러 갔다. 온라인 장보기로 산 물건의 새벽 배송이 오는 날에는 아침에 현관 앞에 놓인 서너 개의 큰 박스들도 혼자 번쩍 들어 다용도실로 옮기곤 했다. 큰 쌀 봉투를 뜯어 쌀을 쌀통에 부을 때도.
스케이트보드 파크는 3층처럼 높은 2층에 있었다. 높은 계단을 올라가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파크에서 스케이트보드가 움직이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제 3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밖에서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은율이와 엄마는 “오늘 애들이 많은가 보다.” “어, 웬일이지? 오늘 애들이 적나 보네.” 하면서 상황을 대강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러 가지 스케이트보드 소리와 힙합 음악이 섞여 시끌시끌했다. “오늘 애들이 많나 보다. 우리도 신나게 타보자.” 하면서 문을 열었다. 가방에서 스케이트보드를 먼저 꺼내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얼른 다른 장비를 꺼냈다. 무릎 보호대, 팔꿈치 보호대, 손 보호대를 엄마와 은율이가 각자 능숙하게 착용했다. 엄마가 손목에 두르고 있던 고무줄로 은율이 머리를 하나로 묶어 주고 헬멧을 씌우며 준비를 끝냈다. “은율아, 몸 좀 풀고 있어. 선생님 금방 갈게.” 선생님이 은율이에게 말했다.
스케이트보드 파크에는 나무로 만든 다양한 기물이 있었다. 높이가 서로 다른 기물들과 반원 모양의 기물들이 있었다. 높이가 낮은 반원 모양의 기물은 미니 램프(Mini Ramp)라고 불린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더 높이가 높은 반원 모양의 기물은 하프파이프(Half Pipe) 도 있다. 높이가 꽤 높아서 위에서 아래로 하강할 수 있는 쿼터 램프(Quarter Ramp) 도 있다. 기물들을 이용해서 배운 여러 가지 동작으로 몸을 풀었다. 제일 먼저 드롭인(Drop-in)을 했다. 드롭인은 높은 곳(램프)에 스케이트보드의 뒷부분을 걸친 뒤, 보드 앞부분을 과감히 기울이며 중심을 앞으로 던져 내려가는 기술이다. 스케이트보드의 앞부분이 허공에 떠 있다가 하강을 하면 보드 아래 작은 네 바퀴가 기물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서 속도가 붙었다. 쌩— 하고 달리는 스케이트보드에 두 발을 올리고 있으면 스케이트보드 파크 안의 공기가 달리는 사람의 몸과 빠른 속도로 부딪혀 바람이 일어 머리를 쓸어 올리는 기분이 여간 시원한 것이 아니었다. 아주 짜릿했다.
엄마와 은율이는 높이 150cm 되는 램프에서 드롭인을 시작했다. 이제는 능숙하지만 3년 전만 해도 고작 50cm에서도 넘어지곤 했었다. 150cm 드롭인을 두 번 하고 180cm 램프에서 드롭인을 10번 정도 하고 마지막엔 200cm에서 드롭인을 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면서 가속이 붙어 반대편 램프까지 시원하게 달렸다. 이제 둘은 더 낮은 미니 램프로 가서 램프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락투페이키(Rock to Fakie), 스위치 락투페이키(Switch Rock to Fakie), 테일스톨(Tail Stall), 백사이드 하프캡 락투페이키(Backside Half-Cab Rock to Fakie), 백사이트 락앤롤(Backside Rock and Roll), 백사이드 하프캡 락앤롤(Backside Half-Cab Rock and Roll) 등 그간 배운 것들을 하나씩 돌아가면서 했다. 은율이는 엄마보다 훨씬 많은 기술을 더 능숙하게 할 수 있지만, 심적으로 엄마와 함께하는 것이 좋아서 엄마의 속도에 맞췄다. (기술에 대한 용어 설명은 글 하단에 기재함)
20분쯤 몸을 풀고 나니 선생님이 오셨다. “오늘은 알리를 배워볼 거예요.”
알리(Ollie)는 스케이트보드의 가장 핵심적인 점프 기술인데 보드를 밟아 뒷부분을 튕기며 점프하고, 동시에 앞발로 보드를 끌어올려 공중에 뜨는 동작이다. 스케이트보드의 거의 모든 응용 기술은 ‘알리’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이 기술을 익히고 마스터해야 했다. 선생님의 알리를 잘 관찰하고 따라 했다. 쉽지 않았고 뒤뚱뒤뚱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은율이도 엄마도 매번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 넘어지고 실패하는 과정은 필수라는 것을 이미 마음으로 배우고 몸에 익혔다. 그래서 지치지 않고 계속 시도해 보았다.
엄마의 속도에 맞추지 않았다면 은율이는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기술을 연마했겠지만, 엄마의 운동 속도와 엄마의 바쁜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3년이 되어 가도록 아직 알리를 마스터하지 못했고, 여전히 그렇게 높은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었다. 사실 파크에는 레일(Rail)( 기다란 금속 파이프 형태의 기물)도 서너 개 있었고, 은율이보다 더 어린 친구들도 레일을 타는 기술을 마스터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레일을 타는 것은 아직 먼 나라의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천천히, 매시간을 은율이와 엄마의 속도로 즐겼다. 그래도 충분히 즐거웠다.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알리를 연습하고 자세를 교정하는 사이에 두 사람 모두 땀범벅이 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연습 더 하다가 가세요.” 선생님과 헤어지고 둘은 알리가 조금 더 익숙해질 때까지 더 머물러 연습을 했다. 엄마가 먼저 땅에 스케이트보드를 멈추고 그 위에 엉덩이로 앉으며 말했다. “은율아, 나 더는 못하겠어. 너무 배가 고파. 은율이는 더 해.” 은율이가 말했다. “아니, 엄마. 나도 힘들다. 내가 가서 바나나우유랑 베지밀 b 사 올게.” “그래, 그럼 장비 벗어 놓고 가. 엄마가 가방 싸서 내려갈게.”
그렇게 은율이는 편의점으로 가서 음료수를 사고, 엄마는 가방을 싸서 주차장에서 만났다. 차에 타고 앉았다. 옷소매 끝을 모아, 아직도 이마에서 눈 옆과 미간으로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은율이가 바나나우유에 빨대를 꽂아 한 모금 마시고 베지밀 뚜껑을 따서 엄마에게 내밀었다.
“엄마, 이거 마셔.” “그래, 고마워.” 엄마는 어찌나 배가 고팠던지 원샷으로 베지밀을 마셨다. 액체가 엄마 입에서 목을 타고 내려가는 듯 ‘꿀꺽꿀꺽’ 소리가 들렸다. 병뚜껑을 닫고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수납함에 내려놓았다. 빨대 껍질과 베지밀 뚜껑에 씌워 있던 비닐을 구겨서 엄마가 주머니에 넣었다. 엄마는 쓰레기를 주머니에 넣었다가 집에 가서 분리수거를 해서 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시동을 걸고 차가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러닝을 하는 사람들은 30분쯤 달리고 나면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해서 쾌감을 느끼는 시점이 있다고 하는데, 엄마와 은율이는 스케이트보드를 한 시간 이상 타고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기분이 최고로 상쾌했다. ‘스케이트보더스 하이(Skateboarder’s high)’라고 해도 좋겠다. 몸은 땀범벅이지만 오늘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는 성취감으로 뿌듯하고 쾌감을 느꼈다.
“은율아, 엄마는 가끔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거나, 너처럼 초등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어른이 이런 운동을 하는 게 무척 창피할 때가 있어. 파크에 오는 어른들은 모두 너처럼 십 대부터 타서 선수처럼 멋진데, 엄마는 늘 초보 같고 둔하니까 말이야.” “엄마, 에이 왜 그래? 엄마가 아마 파크에 오는 성인 여자 중 최고령은 맞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남들은 엄마가 그렇게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엄마가 그랬잖아.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일에 관심 없으니까 남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그건 그래. 엄마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이렇게 우리 발바닥의 근육을 다양하게 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발바닥 어디에 힘을 주고 몸의 중심이 어느 방향을 향하느냐에 따라 스케이트보드의 동작이 달라지는 게 참 신기해. 그래서 보드를 타고나면 안 쓰던 발의 근육을 더 써서 건강해진 느낌까지 들어.” 엄마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느낀 경험에 심취해서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 엄마 되게 디테일하다. 사실 나는 그런 거는 잘 모르겠어. 그냥 너무 재미있어. 그리고 엄마가 이렇게 같이 해 줘서 너무 좋아.” “엄마 곧 50살인데 계속 탈 수 있을까?” 엄마가 은율이에게 물었다. “엄마 포기하지 마. 그럼 나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 보드도, 공부도.” 은율이가 답하며 엄마의 기운을 북돋웠다. “사실 엄마도 그래. 너랑 엄마랑 보내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잖아. 늘 미안하거든. 그래서 이 시간은 어떻게든 함께 하려고 해. 지난 몇 년 동안 여기에 오지 않았다고 해도, 아마 그 시간들에 유튜브 영상 몇 편을 더 보거나 소파에 벌렁 누워서 드라마를 봤을 거야… 암튼 우리 둘이 너무 잘하고 있어.”
은율이가 다시 음악을 틀었다. 이번에는 보넥도(BoyNextDoor)의 ‘Earth, Wind & Fire’였다. 엄마가 볼륨을 더 올렸다. 그리고는 랩 부분을 따라 불렀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say yes.”
엄마는 노래를 그리 잘 못했지만 한껏 신나게 목청을 높였다. 은율이가 옆에서 춤을 추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엄마가 몸의 열기가 쉽사리 식지 않는지 창을 조금 내렸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시원한 밤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와 엄마와 은율이의 땀을 식혀 주었다.
<8화에서 소개된 스케이트보드 용어 >
1. 드롭인(Drop-in) 높은 곳(램프나 하프파이프의 가장자리)에 스케이트보드의 한쪽을 걸친 뒤, 보드 앞부분을 과감히 기울이며 중심을 앞으로 던져 내려가는 기술.
2. 락투페이키(Rock to Fakie) 반원형 램프의 벽면을 올라갔다가 보드의 앞바퀴를 램프 윗면에 살짝 넘긴 뒤 다시 뒤로 내려오는 기술.
3. 테일스톨(Tail Stall) 보드의 뒷부분(테일)을 램프 끝에 걸쳐 잠시 멈추는 동작. 다음 동작을 준비하는 정지 상태.
4. 백사이트 락앤롤(Backside Rock and Roll) 램프 벽을 올라가 몸을 뒤로 틀며 보드 앞바퀴를 살짝 넘긴 후, 몸을 회전시켜 정방향으로 다시 내려오는 기술.
5. 알리(Ollie) 보드의 테일을 튕겨 점프하고, 앞발로 보드를 끌어올려 보드와 몸이 함께 공중에 뜨는 기본 점프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