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돌아오는 월 매출 마감 주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편두통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편두통이 오기 전에 스멀스멀 내 몸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조짐들을. 어깨와 뒷목이 뻐근하고 어깨와 등허리도 어쩐지 꼿꼿이 펴지지가 않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거나 눈을 찔끔찔끔 감았다 뜨게 된다… 이건 나의 개인적인 증상이지만 고등학교 2학년 이후 30년 가까이 편두통은 나의 삶의 일부였다.
월 중반까지도 목표 대피 영업 실적이 좋지 않아서 지난 금요일에 퇴근을 하면서 ‘주말에 계약이 더 들어왔으면…’ ‘대리점들이 조금만 더 힘을 내주었으면…‘ ’ 고객들이 구매 결심을 빨리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썩 가볍지 만은 않은 발걸음을 재촉해 퇴근했더랬다. 주말에 대구 사는 동생이 올라와 다 같이 창덕궁을 갔다. 우리는 수도권에 사는데 동생이 한 번씩 올라오면 우리는 서울 나들이를 가는 가족의 의식(MZ들은 리추얼, Ritual이라 한다더라)이 있다. 그래서 평소 찜해 두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창덕궁 후원도 예약하고 친정 엄마와 동생, 조카와 우리 딸을 데리고 서울 나들이 가이드를 자처했다. 맛있는 것 먹고 가을 하늘 만끽하며 연신 핸드폰 카메라를 눌러대며 사진을 찍고 다시 인스타그램에 피드까지 올리며 뿌듯한 주말을 보냈다. 하지만 걸을 때도 먹을 때도 사진을 찍고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매 순간에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평소 즐겨 듣는 노래도 틀지 않고 조용히 운전을 했다. 마음 한구석에 근심이 있었다는 말이다.
바로 이번 주는 영업팀을 이끌고 있는 내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월마감이 있는 주간이기 때문이다.
속절없이 주말은 빠르게 지나갔고 찌뿌둥한 몸과 묵직한 머리를 부여잡고 출근하여 팀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물었다. “부장님, 주말 사이에 들어온 계약 집계 좀 부탁드려요””차장님 주말 사이에 부산 행사에서 계약하신 고객 건 이번 주에 매출 가능한 지 OO 대리점에 확인 좀 부탁드려요. “ 평소 같으면 월요일 아침에 여유롭게 커피 한 잔 하며 노트북을 켜고 아웃룩에서 주간 일정도 확인하며 어떤 일부터 처리하고 또 누구랑 점심이라도 한 끼 할까 하고 주간 계획을 세우겠지만 이번주는 그 어떤 것보다 목표대비 부족한 판매숫자를 채워야 하는 것이 급선무이므로 월요일 아침 모닝커피 따위는 사치이다.
9시 반부터 시작되는 미팅 30분 전부터 자료를 다시 한번 보면서 보고할 때 시간에 쫓기지 않도록, 머리가 하얘지지 않도록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장표별로 꼭 언급할 토킹 포인트를 주르륵 머리에 넣는다. 드디어 리더십과 관련 부서들이 참석한 미팅이 시작되었다. 앞에서 발표하는 부서들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내 차례를 간단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꼼수를 부리며 혼자 숨을 고르고 내 차례를 기다린다. 이내 곧 앞사람들의 발표가 끝나고 내 순서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번달 판매가 부진하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 같아 송구합니다. “
“이번달에는 대리점들이 외부에 나가 열심히 판촉 활동을 힘닿는 데까지 하였고 3분기 실적이 부진했던 영업사원들의 판매를 독려하기 위해서 계획한 인센티브를 실행하여 하위 실적 영업사원들의 성장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기대했던 실적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경기가 어려워서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었고 경쟁사에서 신제품을 출시하는 바람에 저희 제품이 모멘텀을 잃었습니다. “
<중략>
“다음 달에도 다시 한번 마케팅팀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광고와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현장에서 더 많은 신규 고객을 발굴하고 고객을 잘 설득하여 더 나은 실적을 내겠습니다. ”
여기까지만 했어야 했다. 이어 내 입에서 불쑥 나온 마지막 말은 사족이었다. 하지 말았어야 한다. 후회된다. 그러나 이미 말해 버렸다.
”저희 팀들과 대리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저희를 믿어 주시고 기다려주십시오 “
나는 선거를 앞두고 아낌없는 한 표를 구하는 정치인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영업 실적을 책임져야 하는 부서장이 아닌가?
이렇게 답변이 돌아왔다.
“알고 있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하지만 영업팀은 결과로 실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속으로 ’네 물론이죠. 저도 알고 있죠.. 그게 안 되니까 너무 괴롭다고요 ‘ 대신 “잘 이해했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의 마지막주 월요일 보고는 막을 내렸다.
보고를 마치고 나오니 팀원들이 “고생하셨습니다”. 하고 총대를 메고 앞장섰던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에둘러 말한다.
”그러게요.. 또 이렇게 11월의 고비를 넘겼네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의연하게 웃었지만 오전 내내 신경을 써서 속은 쓰리고 더부룩하고 편두통이 시작되는 듯하여 진통제를 얼른 쑤셔 넣었지만 머리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마케팅도 해 보고, 서비스도 해 보았지만 영업이 참 고되다. 내가 직접 파는 것도 아니지만 대리점과 우리 팀들이 함께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어 공동의 목표를 쫓아가고 회사의 많은 지원부서들이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지만 그래도 참 고되다 싶다. 왜냐하면 영업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많은 상황들과 싸워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지갑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공부한 만큼의 시험 성적을 받았던 학창 시절과 지원부서의 일을 했던 많은 날들이 이렇게 야속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결과를 내가 예측할 수 있거나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꽤나 유능한 사람인 듯, 괜찮은 사람인 듯했다. 그러나 영업을 맡은 이래로 어떤 날은 영업일수가 부족해서, 어떤 날은 경쟁사가 할인을 너무 많이 해서 내 전략과 전술이 작동을 하지 않아서 속으로 운다. 또 어떤 날은 뜻밖의 고객들이 와서 제품을 구매하는 바람에 온종일 기분이 날아갈 듯하다. 어제는 목표를 달성해도 오늘은 달성을 못하면 어제 목표 달성해서 웃었던 기억은 온 데 간데없고, 지난달에 목표를 초과했는데 이번달에 목표를 미달하면 지난달에 좀 덜 팔았으면 좋았을 걸 하고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업부서의 일을 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노력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 알량하고 얕은 경험으로 교만을 떨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 좌절하고 실패해 보고 어려운 상황을 통과하는 것은 그저 괴롭기만 하지는 않다. 충분히 괴로우나 그 괴로움의 깊은 계곡을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값진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아들딸에게 엄마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테니 너희도 한 번 해 보자는 진정 어리고 힘이 실린 조언을 해 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자영업 하는 우리 남편, 음식점 하는 우리 동생, 한 아파트 단지에서 서로 경쟁하는 카페 사장님들, 문방구 사장님 그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 배우는 중이다.
몇 달 전에 재무부서의 전 직원 미팅에 초대받아서 짧은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사람의 마음을 얻어본 경험이 있으세요? “
그리고 부탁했다.
”저는 남편 마음, 사춘기 아들 마음 하나도 얻기가 쉽지가 않은데 우리 팀들, 우리 영업사원들 날마다 고객 마음을 얻어 제품을 팔기가 보통 어렵지가 않아요. 그것밖에 못 팔았어? 그러지 마시고 오며 가며 고생 많아요. 힘내세요.라고 격려해 주세요. “
그 이후 사람들이 복도에서 나와 마주치면 ”힘내세요 “ 그런다. 빼빼로 데이에도 빼빼로를 제법 많이 받았다. “힘내세요. 파이팅 ^^”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여진 빼빼로를 말이다.
매월 돌아오는 월마감주간을 엄숙하게 받아들이며 오늘도 수고가 많았다고 나를 토닥인다.
이순신 장군이 말씀하셨다.
”지금 저에겐 아직 열 두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나에게 말한다.
“내겐 아직 4 영업일(화~금)이 남아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