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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창한오후 Mar 21. 2016

무심결에 하는 결정에 대해서

나를 움직이는 말들..

입술 물집이 또 올라온다. 

연고를 삼천 원 주고 샀다. 

이 놈은 한번 올라오면 삼일 간 수시로 두툼하게 약을 발라야만 물집까지 가지 않게 된다.


앗~! 연고를 분실했다. 

한번 사면 보통 다음까지는 쓴다. 지금 증상도 낫기 전에 사라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사러 간 약국.

"아시클로버 하나 주세요"


다시 사는 돈 아까운 마음에 약사 아줌마한테 구시렁. 

"며칠 전 샀는데 잃어버려서 또 사고 있네요."

"연고는요. 다 쓰면 빼지 말고, 상자에 넣어서 보관하면 안 잃어요"


증상이 비교적 자주 왔고 그래서 다 쓴 뒤 늘 보관 했었기에 이 말은 별 귀담아 들리지 않는다. 

열심히 바른 효과로 오늘부터 장기 보관에 들어가는데 

갑자기 아침부터 '상자에 넣어 보관하세요'라는 말이 계속 생각 난다.

별 얘기도 아닌데 하루 종일 걸레 빨 때, 빗자루질할 때 머릿속에 맴맴 돈다. 


식당 옆테이블 대화, 텔레비전 떠드는 소리는 뚫려있는 내 귀에 계속 들어오는 말들이다.

그 무의미할거 같은 말도 잠재되어 쌓인다. 


오늘도 잘못 걸려온 전화,  카드 포인트 사용하라거나, 보험가입 권유 스팸 전화.

아침에 만난 경비 아저씨와의 짧은 인사, 음료수 사며 만나는 편의점 알바의 의례적 대화.

그리고, 식당에서 카드 긁고 서명하라는 또, 안녕히 계시라는.. 

표정없는 그런 대화가 오늘 몇 퍼센트 될지 나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고작 이런 말들이 

어떤 것은 내 귀에 붙어서 습관과 원칙으로 남는 것이다 

앞으로 연고는 상자에 넣어서 보관할 것 같은 뭐 그러 시시껄렁한 것들처럼.


후배 '강'이라는 녀석과 어느 날 술자리 대화 중

"넌 어쩌다 고압가스 설비하는 직업으로 들어섰냐?"

강은 눈을 크게 뜨고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형이 학교 다닐 때 고압가스 유망하다고 자격증 따라고 했었잖아 기억 안 나?~"


뭐 그랬던 거 같기도 한데.. 

"말도 안 돼! 그래서 정말 네 지금 하는 일이 결정됐다고?"


내 한 마디가 누군가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는 걸 알았던 이때

큰 충격을 받았다. 

'사람은 그런 식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것인가?' 


내가 여기까지 살고 있는 것은 어떤 이의 말 한마디인지 모른다. 


보통 영점 몇 초 만에 결정을 하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루에도 무수히 찾아오는 그 순간. 

그런 결정을 내릴 때

누적된 어떠한 말이 잔상처럼 나를 움직인다. 

분석이나 논리적 방법이 아닌 대부분 어딘가로부터 옮겨온 소문과 풍문 그리고, 

근원을 알 수 없는 편협으로 결정된다.  

사실 이것도 내 자율에 의한 움직임이라 의심치 않다만 

 

또 내가 뱉는 말을 듣고 누군가의 결정에 영향을 준다 생각해보면

그냥 아무 말이나 하며 살 수는 없는 거다.  


대화를 해보면 농담도 꼭 비하를 즐기는 부류가 있는 것 같다.  

매일 만나는 인간관계에서 상처 주는 말 습관이 있는 사람과 멀리해야 됨을 느낀다.

왜? 

내가 순간적으로 하는 결정에 부정적 잔상이 끼어들지 않아야 되니까! 

그리고 내 인생이 엉뚱한 곳에 있는 모습을 보기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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