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 역사소설 임진왜란(전 8권) 읽고서
일본 최초 통일한 그들의 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
명나라 정벌로 가는 길을 빌려 달라는 명분으로 조일전쟁을 일으켰다.
가당키나 한가? 명나라 정벌이라니.
조선은 최고 사대를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소중화라 외치는 나라인데?
더구나 왜를 문화적으로 매우 멸시하였기 때문에 문무백관은 이 건방진 통지에 들끓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200년간의 평화로 너무 문약했다.
당시 명 황제는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그를 둘러싼 환관의 전횡과 부패로 점차 망국으로 향하는 중인데
실제로 60여 년 후. 몇 안 되는 종족인 만주 여진족에 멸망당했다.
그에 비해 히데요시는 밑바닥부터 싸움으로 최고 자리에 올라온 입지 전적 인물.
소설 '대망'을 보면 용인술이 뛰어나고 매우 빠른 판단력으로 뛰어나 전쟁을 만들어 가는 지도자라 평하고 있다.
이에 반면 조선의 선조는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악군.
정통성 약한 왕은 열등감과 시기심이 많았다.
단, 왕권 지키기에만 아주 똑똑한 인물이었다.
국내 전쟁영웅이 생기면 백성들이 자신보다 따를까 싶어 모함으로 살해를 한다.
어? 도망가는 것도 진짜 뛰어난 임금이었지.. 이승만 생각난다.
정규군은 장수 졸개 할 것 없이 왜군이라는 말만 듣고도 도망가던 때.
의병장 김덕령은 수많은 전과를 올렸음에도 선조에 의해 모살되었는데,
이는 너무도 유능했던 게 죄라면 죄인 셈.
선조는 이순신도 그렇게 하려 했으나 신하들 반대에 그쳐 백의종군 선에서 봐주게 된 것이다.
선조가 만일 이순신을 사사했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자! 그러면 히데요시는 명나라로 직접 가면 되는 것을 왜 조선을 거쳐 가려했던 것일까?
명으로 바로 가면 배후의 조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 대양을 항해할 능력도 없었다.
이상하지? 섬나라가 항해 능력이 없다니.. 정말 그랬다.
자기들끼리 치고받느라 육전은 뛰어났지만 항해 경험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바다로 16만 전투 병력과 보급선을 명까지 안전하게 보내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대마도에서 부산까지 거리는 49.5km.
대군이 대륙으로 바로 넘어오는 지름길인 것.
전투로 다져진 수많은 정병을 보유한 히데요시는 조선 군을 안중에 두지 않았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히데요시도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이. 순. 신.
전쟁 중 남해안 이순신 장군은 몇 년간 길목을 막고 해상을 차단했는데..
어떻게 그 넓은 곳을 다 막을 수 있었을까?
바다를 빙 둘러 돌아가면 될 텐데 싶지만
첫째, 한산도를 우회하면 배후가 조선수군 공격에 노출되는 위험이 있다.
둘째, 해안선을 돌아가고 싶어도 배 밑이 뾰족한 첨 저 선은 옆으로 치는 파도에 전복되는 구조적 단점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배들이 판옥선처럼 평저선으로 발달했던 것이고.
적군의 육로 보급선을 보자.
왜 육군이 경상도를 북진하기 위해서는 조령을 넘어야 하는데
조령은 말 그대로 새나 넘어 다니는 길이지 수레 하나 넘어갈 수 없는 험난한 길이다.
따라서 많은 군량을 보내기 위해서는 호남으로 진격하는 수밖에 없는데
거기를 이순신 장군이 딱 막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겠지ㅋㅋㅋ
평양까지 치고 올라간 기습공격은 육로 보급선이 길어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조선군은 도망가면서 적의 군량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태우며 후퇴하는 이른바 청야 전략이다.
먹을 게 없는 적병은 결국 사기저하로 이어졌다.
임란 후 7년 뒤 다시 벌어진 정유재란에서는 삼도수군통제사를 원균이 맡고 있었다.
원균은 조정 대신에게 수많은 뇌물과 끝없는 이순신 모함으로 직위를 얻은 자로서 포악하고 무능력하다는 평이 많다.
이때 왜군은 원균의 조선 수군을 개박살을 내버리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아는 칠천량의 패전인 것이다.
사실 답답한 것은 그 강한 함대를 가지고도 해전다운 해전을 못한 채 뿔뿔이 육지로 도망가다가 도살당했다는 것인데.. 장수 한 명의 무능력으로 호남이 뚫리고 나라는 풍전등화로 몰리게 된 것.
지난 임진년,
히데요시는 무고한 백성을 도륙하지 말 것을 명했었다.
점령 후 자신 백성이 될 것을 자신했기 때문.
임란 당시 경남을 교두보로 확보한 왜군에 가장 거세게 저항한 세력은 가까운 호남의병 공격이었다.
점령지 영남에 비해 호남은 이순신 장군에 힘입어 비교적 자유로왔기 때문인데
일본은 전쟁 시 점령지 백성들이 순순히 복속되는 경향이 있지만 조선은 달랐다.
모든 행정력이 무너졌음에도 백성들이 게릴라가 되어 치열히 대들은 것에 히데요시는 이해하지 못하며 분개했다.
칠천량에서 조선 해군이 무너지고 남원성 함락된다.
이때 어린아이 여자 할 것 없이 16,000명을 도륙하고 철저히 파괴했다.
호남 의병에 대한 설욕을 한 것이다.
선조는 의주 끝에서 명나라로 망명을 타진하고 있었다.
류성용을 비롯한 신하들은 목숨을 걸고 반대를 하고 있었다.
왕은 그 자체가 조선이기에 조선땅을 벗어나면 바로 구심점을 잃은 망국이 되는 것이다.
아랑곳없이 자신의 목숨 구걸에 급했던 선조를 명은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조선에 남게 된다.
사실 명으로서는 조선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는 것이 왜와 모의를 했다고 의심했다.
중세 동북아 최대 전쟁.
만일 조선이 무너지고 왜군이 올라왔다면 명나라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 없지만..
민심이 떠난 명은 히데요시의 대군을 이겨냈을 가능성이 매우 낮았을 것이다.
여차여차 컴백한 이순신 장군의 명언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전선이 있사옵니다."
명량 해전에 출전한 판옥선 수는 총 13척, 추후에 한 척이 더 건조 또는 합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령관선 한 척.
울돌목 적전 맨 앞에 서있다. 겁먹은 나머지 조선배는 나서기를 주저하며 모두 후방 3km에서 도망갈 채비로 관망하고 있었다.
명성이 대단한 해적집단 구르시마군. 일본에서도 해전에 매우 능한 군사집단이다.
그들 20여 척이 선봉으로 고속 전진 공격해왔다.
이들의 전략은 함포 사격을 피해 판옥선에 쇠고랑을 걸쳐 올라타는 것이다.
멀리서 밀고 오는 왜선을 향해 대포가 격렬히 방포한다.
놀랍게도 이순신의 배 한 척, 즉 사령관선 단 한 척으로 전멸을 시킨다.
뒤에서 보던 백성들의 만세와 좋아했을 모습이 선하다..
어느새 눈치 보던 배들이 조금씩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안위야 네가 군율의 칼에 죽을 것이냐.. 싸우다 죽을 것이냐. 네가 어디 도망갈 곳이 있더냐?"
가까이 붙은 배 한 척에게 장군님은 호통을 치셨다.
사실 안위 장군은 그나마 제일 용감한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너무 엄청난 적 위세에 잠시 눌렸던 것도 어찌 보면 인간적일 수 있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선봉에 올라온 것만 봐도 그렇다.
곧 구르시마 미치후사의 수급이 대장선 높게 걸린다.
아직 적은 앞에 거대한 모습으로 앞에 떠있다.
다음 선수로 와키자카 군이 빠른 속력으로 공격해온다.
힘 있는 함포사격과 수없는 화살.. 총탄이 오가는 가운데 와키자카 함대도 서서히 섬멸되던 중..
와키자카는 일본 무사 최대 치욕으로 알려진 적전 도주를 감행했다.
그전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를 당했던 설욕을 포기했지만
그나마 자신의 세력을 그나마 보전한 똑똑한 선택으로 보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속되는 전투에 지쳐가는 조선군은 또 다른 엄청난 함대와 격돌한다.
일본 최대 명문가인 도도 다카도라..
그는 왜군 총사령관이다.
도도 다카도라는 자신이 이순신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깨닫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속절없이 깨져나가는 부하를 뒤로 하고 몇몇의 수하를 이끌고 도망을 치는 것으로 전쟁은 종결된다.
이날의 모든 전투는 이로서 조선의 승리로 끝이 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명량해전이다.
지금 거명된 적장을 우리 사극에서 우습게 표현을 많이 했다.
그나마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 이후 진지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들은 일본을 최초로 무력 통일한 대단한 맹장들이며 아직도 일본에서 쩌렁쩌렁 추앙받는 인물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순신 장군한테 완벽하게 발린다. ㅋㅋ
조선 수군은 왜 이리 강했을까?
일단 장비가 달랐다.
판옥선 : 전투선, 배 밑이 평평한 평저선으로 거대 대포를 동시에 발사해도 견딘다.
고려 최무선부터 이어온 화약기술이 우수해서 다양한 화포를 사용했다.
당연히 원거리 전투가 뛰어나다.
배 크기가 적선에 비해 높고 크다. 단 병 접전에 강한 일본 무사가 쉽게 올라탈 수 없다.
(긴 세월 숫하게 몰려온 왜구로 인해 업그레이드된 판옥선이다.)
조선 배는 단단한 적송으로 만들어졌는데 적송은 옹이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판자를 두껍게
사용했다.
세키부네 : 왜의 주력 전투선 첨 저 선이라 포를 쏘면 배가 뒤로 넘어간다.
일본 전함은 약한 삼나무로 만들었는데 판재로 쉽게 만들 수 있어서 배를 빨리 만들 수 있는 게 장점.
또한 쇠못을 사용하므로 녹이 슬면 결합구조가 약했다.
나무못의 두꺼운 판옥선과 일본 배가 충돌하면 아주 그냥 아작이 나는 거다 ~!!
칼을 잘 쓰는 일본 무사는 판옥선에 한명만 올라타도 조선군은 그냥 학살을 당했다.
고속으로 달려들어 배에 올라타는 전법에 맞는 배가 세키부네다.
말하나 마나 훌륭한 지휘관이 지휘를 한 것이 이 모든 승리의 원인이다.
만일 원균 뒤로 이순신 장군도 무너졌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국경선도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명까지 정벌한 뒤 천축(인도)까지 진출하려고 한 히데요시는 단순 망상가라고 치부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엄청난 전투병력은 당대 세계 최강.
이 모든 것을 이순신 장군 혼자서 막았던 것이다.
총 16만 적병 중 이순신 장군이 확실히 죽인 왜군 숫자만 6만 명 이란다.
부상까지 합하면 10만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왜군 입장에서 보면 이는 천재지변 급.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 훌륭한 지휘관들이 많이 존재했다. 강감찬, 을지문덕 장군 등
이 분들은 국력의 총동원 지원을 받았지만
이순신 장군님은 군량, 무기, 병력을 전혀 지원받지 않았다.
오히려 선조는 수군 병력을 육군 권율에게 이동시키고 전란 중 특산품을 계속 요구하며 재촉했다.
그러한 최악 조건에서 찬란히 지워지지 않는 영웅이 탄생된 것이다.
그냥 사실적 내용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
임진왜란은 자칫 등급을 내린 표현이다.
당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국제전이였다.
동북아 3국 전쟁이 맞는 표현이다.
충무공님을 알아갈수록 지금을 사는 내게도 전율 같은 소름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