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 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창한오후 Feb 24. 2017

B

인연 거 무섭다.

대학생활은 그냥 등하교뿐.

그 시절 울고 웃던 내 인생은 Y청년회였다.

스물네 살 비슷한 시기에 전역한 동갑 친구 둘이서 사물놀이 팀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최소한 네 명은 있어야 하는 게 사물놀이인데..

문제는 사람만 부족한 게 아니라 악기도 없고 돈도 없다는 거지..


지금은 어느대학 교수로 있는 담당 간사님은 그 이쁜 눈으로 걱정하듯

"잘할 수 있겠어?'

"네 잘 됩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아무 대책 없이 잘 될 거라는 말은 나도 믿지 않았다.

옆 노래클럽 리더 격인 여자 친구는 지역신문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빽으로 문화면에 사물놀이 무료강좌 광고를 넣어주었다.

아주 귀퉁이 작은 몇 줄 광고에 신기하게도 사람이 오기 시작한다.


갓 고교를 졸업한 스물의 아가씨 두 명이 들어왔다.

배우고 싶은 한 명이 혼자 오기 싫어 친구와 둘이 왔단다. 

그때 만나 지금까지도 인연이 되는 다른 사람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그렇게 십 수 명의 정예 요원이 생겼다.


월 회비 만원을 모아서 장구며 징등의 악기를 사는데 재미있니까 모습 갖추 어지는 건 순간이데..ㅎㅎ

청년부 간사님께 호언장담한 지 불과 몇 개월만에 그 이상으로 잘 되고 있는 현실이 된 거다.ㅎ


그렇게 우리는 월수금 주 3회_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연습했다.

물론 끝나서 뒤풀이까지 빠짐이 없다.

집에서는 주는 용돈도 없는데 날마다 어디서 술을 얻어먹고 오냐며 신기해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청년시절이란 돈 없이 잘 돌아다니고 흠뻑 즐길 수 있는 마법 같은 시기라고 본다.


연습날 아니더라도 우리는 계속 만났다.

주말에 영화를 함께 봤으며, 이사를 도와주기 했 이도 저도 없을 땐 심심해서 만났다.

선배는 후배를 챙겼고 후배는 선배를 존중했는데

수도 없이 수련회를 다녀도 큰방 하나로 남녀 혼숙을 당연하다 여기며 술 먹고 쓰러지는 순서대로 들어 누웠다.

남녀가 유별해야 하지만 사실 여자로 보이지도 않았고, 남자로도 못 보던..

설명하려 해도 설명이 안 되는 가족 분위다.

맞아..

우리는 클럽, 동아리라는 말 대신 [가족]이라는 명칭을 썼는데

사물놀이팀 이름은 '아리랑 가족', 노래팀은 '00 가족', 사진클럽은 '00 가족'으로 불렸다.

가족 대표 직함은 '지기'다.

총무나 회계를 맡은 직함은 '부름'으로 심부름에 줄임말이다.

그를 통틀어서 연합회도 있었다.


잘 모일 때는 한 번에 대략 50명 됐으니 등록 인원은 그보다 훨씬 많았을게다.

이성들이 서로를 이성적이지 않게 오래 보다 보면

첫인상과 다르게 진면목을 알아가게 되는데.. 그들은 서로 잘도 맞춰 연인으로 발전해 나간다.

선배들부터 20년이 안 되는 시기 동안 결혼한 커플을 셀 수가 없다.

애를 낳고 키우며 최근까지도 매년 함께 가족 모두 수련회를 갈 정도로 끈끈한데

삼십 쌍? 넘지 싶은데.. 이중 아직 아무도 이혼한 커플이 없다.

가진 게 없어도 재미있게들 산다 정말.




이후 온라인이 활성화되면서 수 많았던 오프라인 조직은 괘멸되어 갔다.

우리도 하나둘 취업 길로 들어서면서 바빠지기 시작했은데..

모임황폐화되어 이젠 모이는 수가 줄어갔다.

사물놀이 배우겠다는 친구 따라 어설프게 온 한 명의 여후배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제조사다.

어느 날 사장님은 코엑스 유아용품 박람회에 조사를 다녀오란다.

관련 제품 조사를 위한 일이긴 했지만 일요일이고 혼자 가긴 그래서 후배와 다녀오기로 했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바로 옆에서 하는 결혼 박람회가 무료라네?

들어갔지


난 29살.

남이 보기엔 결혼 적령기 커플로 보였는지 양쪽 여기저기서 팔을 잡아끈다.

"신랑님 가구 좀 보고 가세요"

"신부님 웨딩드레스 상담받으세요"


왠 뜬금없는 신랑 신부?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고 말았다.


관심 가는 게 보이 길레 상담이나 받고자 들어갔다.

"신랑님 어쩌고 저쩌고, 신부님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언제 결혼하세요"

느닷없는 질문에.. 우린 아무 사이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대충

"내년 가을이요"


지금이 올해 가을이니 멀리 이야기한 것인데... 이 사람 눈빛은 총기를 잃는다.

그렇게 한 두 번 더 상담해도 '내년 가을'이라는 말만 들으면 손님 대접을 못 받는다는 걸 눈치챘다.

후배에게.. 일단 궁금한 거 상담이나 받아보게 내년 봄이라고 해보자..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임기응변적 거짓말 덕분에 한결 활기찬 상담이 되었다.

그런데...


그게 말이 씨가 돼서

그다음 해 봄.

결혼을 뚝딱 해치웠다..

이게 말이되?

그러곤 눈 한번 끔뻑 거리니까 아들 하나 생기고, 어어 하다 보니 또 한놈 추가... orz


지나고 보니 그렇게 철없는 결혼을 해야지.. 내가 언제 준비해서 언제 애 낳고 살겠나!

다 인연이 필연이 되고 필연은 모여 다시 인연을 만들어준 거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다면.. 결혼은 하고 싶은데 가진 것도 없고 가능성이 멀게 느껴진다면..

매년 봄가을 두 번 있는 결혼박람회에 각종 구실을 만들어 길 바란다.

나야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상담을 받다 보면 신랑님이 되고 신부님이 되는데 그 말은 바로 씨가 된다에 내 한쪽 팔을 걸겠어.


인연 거 별거 아닌데서 인생 확 비트는데 무섭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연정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