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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Jul 13. 2020

작은 책방과의 접속

힘들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작은 것들의 만남'

<미란다처럼>을 막 출간했던 2015년은 전국에 작은 책방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작지만 기존 서점의 문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책을 다루는 책방들이었다. 특히 개성 있는 독립출판물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독립출판물을 주로 다루는 책방이 함께 등장했다. 


<미란다처럼>은 독립출판과 상업출판의 경계에 있는 책이라서 과연 작은 책방들에서 <미란다처럼>을 받아 줄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새로운 방식으로 서점과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에 작은 책방과 거래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특히 도매상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있는 독자와 만나기가 어려웠는데 책방들이 여러 지역 곳곳에 생기고 있어서 입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책방 SNS에 들어가 입점 절차를 확인하고 메일로 <미란다처럼>을 소개하는 글을 썼다. 어떤 책인지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텀블벅 이야기도 하고 왜 책을 만들었는지도 주절주절 풀어놓았다.


작은 책방과 거래를 시작할 때 공급률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사실 작은 책방의 위탁 공급률은 암묵적으로 70%로 고정되어 있어서(10,000원짜리 책을 책방에 맡기고 책이 팔리면 7,000원을 제작자에게 보내 주는 식)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지만 책방을 다니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책방 입장에서 책을 거래할 때도 불합리한 점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2015년도에는 아직 작은 책방이 많이 생기기 전이라 도매상에서는 매출이 적은 책방에 책을 공급하지 않으려 했고 직거래를 꺼리는 출판사들도 많은 상황이었다. 70%라는 공급률도 협상의 결과라기보다는 그냥 편의에 맞춰진 공급률이었을 것이다. 대형 서점에서 일방적으로 제시한 60%라는 공급률이 나에게 그러했듯이. 


출판의 전통적인 유통 특성(위탁 판매, 어음 결제) 때문에, 출판사 입장에서는 반품도 적고 현금 결제를 바로바로 해 주는 온라인 서점의 불합리한 공급률을 받아들이고 책을 팔 수밖에 없었던 것이 시장 상황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든 것 같기도 하다. 온라인 서점이 등장했을 때 무료배송 정책과 할인 정책으로 대형 서점끼리 서로 출혈 경쟁을 한 것도 구조를 악화시켰다고 본다. 분명 배송하는 과정에서 노동이 발생하는데 진공 상태로 사라진

듯한 배송 비용은 누가 부담하게 되었을까? 온라인 서점이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공급률이 점점 낮아졌다고 하니 배송 비용과 각종 할인에 대한 부담이 출판사가 부담하는 공급률 속으로 숨어들지 않았을까. 그렇게 성장한 온라인 서점이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배송도 무료로 해 주고 책값도 싸니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요즘에야 동네 서점들이 조금씩 독특한 개성과 지역과의 연계성을 띠며 생겨나고 있지만 인터넷 서점이 등장하기

전 동네 서점은 참고서 위주의 문구점이 대부분이었으니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산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일이 아니기도 했다.


출판에 관여한 모든 당사자가 지금의 시장 상황을 만들어 낸 셈이다(정부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출판 시장 규모가 점점 쪼그라드는 마당이라, 도서관이 기본적인 수요를 창출해 줘야 소규모 출판사나 수요가 한정된 책을 펴내는 이들이 생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도서관을 짓는 게 단시간에 되는 것도 아니니 다양한 책이 원활하게 많은 사람들의 손에 닿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다. 동네마다 서점들이 존재해야 책 문화도 사람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 수 있으니 지역 서점들이 문화의 연계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출판 유통 규칙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많이 팔 수 있는’ 규모 있는 서점과 출판사에 힘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들의 의지에 따라 공급률이라는 숫자가 정해지고 그것을 따라야 책을 팔고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인 자유 일꾼 아닌가. 나는 작은 책방보다 대형 서점에 유리한 그 숫자를 뒤집고 싶었다. 책방에 입고 문의 메일을 보낼 때 공급률을 협상할 수 있다고 적고 70%가 아니라 위탁 65% / 현매 60%의 조건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겨우’ 책 1종에 겨우 5%였고 책방에서 계산하기에도 오히려 귀찮을 수도 있었지만 거래 당사자 간에 ‘협상의 여지’가 있는 거래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서점에서 한 달에 한두 권 팔리는 책의 공급률을 5%로 낮춘다고 서점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진 않겠지만 혼자만이라도 그 관행을 뒤집고 싶었다.


작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대형 서점의 일방적인 공급률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지지만 작은 서점 입장에서는 출판사들이 대형 서점보다 높은 공급률로 작은 책방과 거래하려고 하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책방 같은 경우는 인터넷 서점처럼 10% 할인을 할 수도 없고 공간 유지비도 필요할 텐데 이런 작은 책방에 대형 서점보다 높은 공급률을 요구하는 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급률, 공급률’하고 목을 매지만

사실 16,000원짜리 책을 팔았을 때의 수익 차이는 800원이다.


종수가 많은 출판사에게는 중요한 결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책이 1~2종밖에 없는 출판사에게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 차이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했더니 포항의 ‘달팽이책방’에서는 이런 답신이 왔다. “입점 수수료는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흑… 교보와 같은 공급률이라니 눈물이 나네요. ㅜ.ㅜ”

한번은 책방 ‘풀무질’에서 전화가 온 적이 있다. 가끔 전혀 모르는 서점에서 연락이 올 때가 있는데, 지역 도서관에서 책을 주문할 때는 해당 지역 서점에 주문을 해야 하고 만약 주문한 책이 거래하지 않는 출판사의 책일 경우 서점에서는 해당 출판사로 직접 주문 전화를 건다. 아마 풀무질에서도 그런 연유로 전화를 했을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하게 묻는 것이 공급률이 몇 퍼센트냐는 질문이다.


“60%로 거래하고 있습니다.”

“아이구, 훌륭하시네요.”


갑작스러운 칭찬에 어리둥절한 한편, 왠지 이 한마디에 오래된 지역 서점에서 겪었을 고초(?)가 전해졌다. 대형 서점과 같은 공급률을 불렀을 뿐인데도 훌륭하다는 칭찬을 받을 정도라니 대체 출판 유통 구조는 얼마나 뒤틀어져 있는 걸까? 그때 당시 이런 생각을 블로그에 적었다.




나도 작고 서점도 작다면 서로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 어차피 많이 팔리지도 않고 수요가 적은 덕후용 책은 광고를 하지 않고서야 대형 서점에서 관심 받기도 힘들다. 인터넷 메인 화면 노출에 100만 원씩, 대형 서점 평대 광고에 150만 원씩 광고비를 쓰는 대신 소규모 서점, 지방 서점으로 가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일 행사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 


외국 출판사에 로열티만 지불하면 되는 번역가이자 출판사인 나만이 할 수 있는 출판 실험일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저자나 번역가에게 인세를 주어야 하고 편집자, 디자이너 월급도 주면서 출판사 규모도 유지해야 하는 사람이었다면 공급률 5%에 목숨을 걸어야 했을 수도 있으니까.


길게 봤을 때 지역 서점이 망하고 소규모 출판사가 망하면 대형 서점이나 대형 출판사도 살아남기 힘들다. 그러니 독점 체제가 아니라 함께 상생하며 다양한 책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책을 안 읽는 독자, 할인 경쟁을 부추긴 서점, 싸구려 책만 만드는 출판사만 탓하고 있을 순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정의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각자의 정의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세운 나의 정의는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내가 속한 세상을 받치고 있는 불평등한 시소를 조금이라도 수평에 가까워지도록 균형을 맞추는 쪽에 앉는 것뿐이다. 물론 수평에 대한 기준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수평 상태는 대한민국 곳곳에 서점들이 있고 출간되는 책의 종류도 다양해서 TV 프로그램과 연예인 가십을 즐기는 사람만큼 책에 대한 수다를 떠는 사람도 많은 세상 정도일까나.



https://brunch.co.kr/publish/book/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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