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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Jul 16. 2020

그것밖에 없는 책방이라서

우리가 책방을 사랑하는 이유

<미란다처럼>을 냈던 2015년에는 동네 서점들이 막 조금씩 생기는 추세였는데, 서점 공간의 계약이 끝나는 2~3년째가 되니 거래하던 서점들이 몇 군데 문을 닫았다. 서점들의 실험이 이렇게 끝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뜻밖에도 더 많은 서점의 오픈 소식이 들려왔다. 책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서점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책을 좀 읽어 왔던 사람이라면 대형 서점에 가서 ‘왜 이렇게 읽을 만한 책이 없지?’라는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얼마 전에 갔던 홍대 입구에 연결된 대형 서점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활짝 웃고 있는 알록달록한 책표지가 베스트셀러 코너 전면에 깔려 있었다. ‘신간&베스트 매대’에도 그 책이 몇십 권씩 쌓여 있었다. 그리고 ‘베스트 오브 베스트’ 코너에도 역시 그 책(과 유사한 책)이 매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어른이를 위로하는 책’ 코너에도 같은 책이 보였다. 나머지 다른 기획 코너도 문화적 자극을 원하는 나의 구미를 당기는 책은 보이지 않았다. ‘정가 인하 도서전’과 유명 방송에 나온 책이 전시된 코너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릴 때 몇 시간이고 서가를 탐험하던 그런 대형 서점은 어디로 간 걸까? 따뜻한 말로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감성을 채워주는 에세이가 나쁜 책이라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책들이 발견될 수 있는 기회를 불필요하게 많이 앗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책방을 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대형 서점에서 보여 주지 못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어서 자신이 가장 집중하고 싶은 분야의 책방을 여는 경우가 많다. 문학, 고양이, 미스터리, 과학, 만화, 음악, 그림책, 여행, 인문학, 심리학, 독립출판물 등 한 가지 테마를 내세워서 책을 권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책방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책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니라 ‘읽으면 이렇게 재밌는데! 이 좋은 걸 나 혼자 할 수 없어!’라는 마음으로 책방을 운영한다는 게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여기저기 맛보게 해 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닌가?


나는 모든 이에게 ‘책을 잘못 고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학교를 다니면서 이 기회를 박탈당한다. 바로 ‘안티 독서 꼰대 대마왕’이 만든 것 같은 ‘필독 도서 목록’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필독 독서’의 덫을 피해 자기가 재미있게 느끼는 책을 찾아온 사람이다. 그들은 ‘책을 잘못 고르는 기회’도 충분히 가졌을 것이다. 나한테 꼭 맞는 좋은 책을 단번에 고르기란 서른 한 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눈으로만 보고 바로 내 입맛에 맞는 한 가지를 고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책 처방이라든가 책을 통한 상담 서비스도 이런 맥락에서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책을 읽으라고 하는 바람에 다른 방식으로 책을 접할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 그 기회를 주는 것. 남에게 책을 읽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랏님도 못하는 일일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해 본 사람은 다 동의할 것이다.


“물론 책이 중심이라는 규칙은 갖고 있지만, 책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책을 알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중략) 처음에는 책에 관심이 없던 손님도 일주일 후 제가 보낸 책을 받아서 읽고, 그 책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걸 알았습니다. 편지를 같이 보내니까 책에 호감이 생기고 다른 책도 더 읽어 보고 싶은 거죠.

서점에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고. 그렇게 책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도 저와의 만남이 터닝포인트가 되어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서점의 역할은 책을 많이 파는 게 아니라 한 사람에게라도 책의 의미를 전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서점을 둘러싼 희망> ‘사적인서점’의 정지혜 님 인터뷰 중(문희언 저, 여름의숲) 20쪽


그래서 딱히 상담이라는 이름을 명시적으로 붙이지 않아도 책방지기들이 하는 일, 한 사람과 대화하고, 책을 권하고, 파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다.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들이 쓴 책을 보면 자신이 세상 모든 책을 읽은 게 아니라서 추천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종종 본다. 하지만 내 생각에 사람들이 책방을 찾는 이유는 ‘모든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밖에 없어서’이다. 책방지기의 ‘편애’가 존재한다는 것이 대형 서점이 침범할 수 없는 작은 책방의 고유한 영역이자 서로 다른 책방들의 존재 이유가 된다.


나는 지역 서점과 작은 책방을 편애한다. 가끔 공급률을 대형 서점 공급률보다 낮춘 이야기나 책방에서만 주는 에코백을 따로 돈을 들여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몇몇 출판사 대표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럼 나는 그냥 “마음대로 하려고 시작했으니까 마음대로 해 보려고요.”라는 대답만 남기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속으로는 ‘뭐? 그렇게 이상한 건가? 젠장, 이래 놓고 금방 망하면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하는 눈빛을 받겠구만’ 이렇게 생각하며 후들후들 떨고 있지만).


작은 책방의 힘은 큐레이션에 있다고들 한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벗어나 새로운 책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책보다 더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이는 것은 바로 시간과 마음을 내어 그 공간을 지키고 있는 사람 아닐까. 그 사람이 가진 자원으로 만들어낸 책방이라는 공간에는 분명히 책 이상의 부가가치가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거나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간단한 명언을 철석같이 믿던 시절은

갔지만 그래도 책 말고 어떤 것이 그럴 가능성이라도 품고 있는지 상상이 안 된다. 누군가의 삶에 그런 가능성을 전해 주기 위해 책을 고르고 배치하는 정성이 있는 곳, 그래서 ‘그것밖에’ 없는 책방들이 우리의 발길을 이끄는 게 아닐까.



https://brunch.co.kr/publish/book/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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