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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Jul 23. 2020

책덕의 산물과 부산물

1인출판사 7년 정산 타임!


2019년 여름, 코믹 릴리프 시리즈 3호와 4호를 출간했다. <미란다처럼>을 계약한 시점으로부터 5년 반이 지났고 창고에는 <미란다처럼> 1,200부, <예스 플리즈> 953부, <보시팬츠> 1,060부, <민디 프로젝트> 1,030부가 보관되어 있다. 손해보진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글쎄, 솔직히 고백하자면 돈이 나가는 시기와 들어오는 시기가 많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나도 잘 모르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대충 중간 결산을 해 보자(이해를 돕기 위해 대략적으로 계산한 것이니 정확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기를).


5년 반 동안 판 책 수량은 증정 및 텀블벅 후원으로 나간 수량을 제외하고 <미란다처럼> 1,600부, <예스 플리즈> 800부다. 평균 공급률을 정가의 60%로 계산하면 두 종의 수입은 각각 15,360,000원, 8,160,000원이니까 둘이 합쳐 23,520,000원. 여기에 전자책 수입 대략 1,500,000원 정도를 합치면 25,020,000원. 그리고 아직 현금화하지 않은 책 2,123부가 자산으로 남아 있다.


자, 지출을 살펴보자. 총 4종의 선인세가 도합 8,300달러, 환율을 1,200원으로 계산하면 9,960,000원이다. 거기에 저작권 중계료와 도판 사용료 등에 들어간 비용을 1,500,000원 정도로 계산하고 창고비는 월 평균 12만원으로 잡고 50개월 계산하면 6,000,000원. <보시팬츠> 같은 경우는 번역료가 들었기 때문에 3,000,000원의 비용이 추가되었다. 여기까지가 총 20,460,000원. 


미란다처럼 중쇄


여기에 추가될 수 있는 자잘한 비용은 프로그램 사용료, 사무용품 구입비, 마케팅비 등이다. 단순히 현금만 비교하면 수입이 조금 많지만 그동안 들어간 내 노동력을 계산한다면 어떻게 될지 대충 알 수 있겠지. 지출은 한꺼번에 나갈 때가 많고 수입은 매달 책이 판매되는 만큼 들어와서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책을 만들어 보고자 했던 목표는 달성할 수 있었다. ‘책 한 권 내고 망하기’로 했었는데, 결국 4권까지 만들고도 아직, 간신히 망하진 않았다. 책으로 돈 벌 생각을 하지 않고 시작했는데 정말로 책으로는 못 벌었고, 대신 빚도 지지 않았다. 만약 지금 있는 책의 중쇄를 찍는다면 창고비를 충당하고도 남을 돈을 벌 수도 있겠다(아직 가능성은 있다고!).



‘직접, 혼자 한다’던 규칙은 당연히 지키지 못했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책 곳곳에 다른 사람의 손길이 함께 담겼다. 최지예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려 준 <예스 플리즈>의 표지 그림과 박가을 번역가가 맡아 준 <보시팬츠>의 번역 덕분에 더 나은 책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책을 만드는 단계, 단계마다 도움을 준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면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내 모습이 철없는 아이 같게만 느껴진다.


‘아무 데나 팔지 않는다’는 규칙은 얼마나 지켰을까. 대형 서점 두 군데하고만 거래하다가 결국 한 군데와 더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되도록이면 오프라인의 작은 책방에서 많이 팔려고 했던 결심은 여전하다. 현실적인 유통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만 조금 불편하더라도 직거래를 원하는 책방과는 어떻게든 거래를 지속하고 싶다.


취향을 설계하는 서점으로 유명한 츠타야 최고경영자 마스다 무네아키는 <지적 자본론>에서 ‘자신이 만든 결과물 중에서 의도한 것 이상의 결과물이 탄생하고, 그것이 또 새로운 결과물을 낳는다. 부산물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산물이 없으면 부산물도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책덕의 산물과 부산물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봤다.



책덕의 코믹 릴리프 시리즈가 산물이라면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의도하지 않았던 부산물도 있다. 책을 쓰거나 강의를 하거나 새로운 분야의 편집 업무를 맡게 되었고 코미디 콘텐츠나 여성 코미디언에 대한 이야깃거리도 많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부산물은 출판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이다.


작더라도 주체적으로 무언가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이전에 없었던 큰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소속된 곳에 따라서 상대방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냥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만 골똘히 생각하면 되니까. 


책덕의 산물과 부산물은 한동안 계속 생산될 것 같다. 특히 부산물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만들어지고 마는 속성이 있으니까.




https://brunch.co.kr/publish/book/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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