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웨이 위 고>의 주인공 베로나와 버트는 오랜 연인 사이다. 출산을 앞둔 두 사람은 근처에 살고있는 버트의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 수 있었으면 했지만, 그런 두 사람에게 버트의 부모님은 앞으로 2년간 해외에서 살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한다. 두 사람은 고민 끝에 앞으로 태어날 아기와 함께 살아갈 장소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콜로라도에서부터 아리조나주의 피닉스와 투싼, 위스콘신주의 매디슨, 캐나다의 몬트리올,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까지 실제로 그곳에서 가족을 꾸려 살고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마주한다. 자식들의 인생에 맞춰 남은 인생을 계획하기보다는 노년의 행복을 찾아 나서는 노부부, 아이들 앞에서도 성적인 표현을 숨기지 않는 개방적인 히피 가족,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을 입양해 살고 있지만 남모르는 임신 고민을 안고 사는 부부, 혼자 사춘기 딸을 키워야 하는 남자의 사연이 과장스럽고 코믹하게 묘사된다. 2010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나는 무척 좋아한다. 이 영화가 좋은 이유는 유쾌한 로드무비라는 점,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나는 베로나와 버트가 두 사람만의 보금자리를 찾는 과정을 보며 나도 그런 보금자리를 찾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회 분위기는 돈을 벌어 똑똑한 재태크를 하고 부동산을 늘려가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흘러갔다. 사람들의 주된 대화 소재가 수도권 지역별 아파트 값이 되면서 자꾸만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과연 내 남은 생의 배경이 될 집을 경제적인 가치로만 선택해도 되는걸까?
팍팍해져가는 서울살이에 지쳐가는 동시에 새로운 삶의 터전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 나의 행복했던 기억은 어린 시절 1년 정도 살았던 충청남도 부여에 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옷이 아니라 몸에 편한 옷을 입고 풀숲을 누비며 옥수수를 쪄먹고 바람에 흔들리는 벼가 내는 소리를 들으며 뛰어다니던 시절이 그리웠다. 도시생활자의 시골에 대한 답 없는 판타지로 들릴 수도 있지만 몇 년 전부터 나는 진지하게 지역에서의 삶을 상상하며 부여와 공주를 방문하고 있다.
반려인과도 앞으로 우리가 어디에서 살아야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대화를 나눈다. 베로나와 버트처럼. 이쯤에서 우리집 가족 구성원을 소개하자면 나와 반려인, 그리고 고양이 모카리, 음식물 처리를 담당하는 미생물 토균이, 바닥 청소를 담당하는 로봇청소기 로보리가 있다(표본으로 삼기 꽤 좋은 21세기형 가족 구성 아닌가).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려면 집과 일자리가 일단 있어야 겠고, 지역의 특성도 파악해야 하며 동네 분위기도 알아야 한다.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상상하다 보니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르며 나의 경우에는 ‘어떤 사람들과 이웃하며 살아갈지’가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절실히 깨닫는다.
얼마 전에도 좋아하는 친구, 다시 말해 가까이에서 살고 싶은 친구와 함께 공주와 부여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젊은이들이 오면 기회가 많다는 규암마을 책방지기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과연 서울을 떠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답을 찾아가는 이 여정조차 현재진행중인 우리의 삶이기에 유쾌한 로드무비를 찍듯이 즐겨보려 한다. 내 삶을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이 나에게 맞는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영화 <어웨이 위 고>에서 베로나와 버트는 과연 두 사람만의 안식처를 찾았을까? 영화로 확인해보기 바란다. 참고로 영화 OST도 참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v_MOfQEwJW8
위 글은 <월간 에세이> 2022년 8월에 실린 칼럼의 미교열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