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폐인'이라니 무슨 말씀, 나는야 '배운 덕후'
밤새 퀭한 눈으로 드라마를 돌려 보던 과거의 내 모습(꼭 과거만은 아닐걸...)을 떠올리면 정말 "커서 뭐 될래?"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되돌아보면 드라마를 통해 얻은 것도 (나름) 많다. 드마라 활용법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손에 꼽는 것이 '언어 익히기'인데 물론 나도 미드, 영드로 영어에 제법 익숙해지긴 했다.
하지만 드라마로 언어 익히기는 여기저기에 간증글이 많기도 하고 미드로 영어 배우는 컨셉의 책도 많아서 식상하잖아? 그러니 이번엔 다른 종목(?)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 섭하니까 한 줄로 정리하자면...
"프렌즈, BGM으로 활용, 토익 LC만, 성공적..." (초반부터 영드, 미드 섞어 보면 발음이 이상해질 수 있음.)
나는 어릴 때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만화 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 '흔한 꿈많은 아이'였다. 그러니 이런 애들의 특징은...
1. 맨날 '대갈치기'만 한다.
얼굴만 그리고, 맨날 표정도 거의 비슷하게 그린다. 그림 밑천이 빈약하달까.
2. 인체 포즈가 졸라맨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맨날 그리는 단순한 캐릭터들의 몸이 비슷비슷하다. 얼굴만 바뀐다. (호빵맨임?) 그리고 당연히 포즈도 비슷비슷하다. 의자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옆으로 걸어가거나 덤블링을 하거나 헤드스핀(?)을 하거나... 그런 거 없고 캐릭터들이 앞만 본다.
요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연습만이 살 길인데, 여러 가지 방법과 노하우를 담은 인터넷 글과 책들이 있다. 책으로는 『오른쪽 두뇌로 그림 그리기』라든지 『창작 면허 프로젝트』라든지 『미소녀 포즈 그리기』(음?)라든지... 하지만 그림 배우는 방식도 사람마다 맞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무턱대고 돈을 들이기보단 공짜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후훗-
흔히 권해주는 방법으로 '잡지 떼기'가 있다. 잡지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 한 장 따라 그리는 것을 말한다. 오! 좋다는 건 한 번쯤 시도해 봐야지, 하고 시작했지만 물론 잡지 한 권을 다 그릴 생각은 못하고 아무데나 펼쳐서 마음에 드는 포즈를 따라 그렸다.
내 손에서 다시 태어난 패셔니스타들...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받아들이고 그리도록 하자. 결과물만 보면 나쁘지 않군, 하는 마음이 든다. (원본 대조 금지!)
만화 그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모르는 사람(=나)에게 현실을 깨닫게 해줄 수 있는 방법. 하... 만화가들, 존경합니다... 자세가 된다.
『교도관 나오키』, 그림체 안 예쁘다고 무시하지 마라. 연출이 끝내주는 만화는 그림체를 뚫고 감동을 전해주니까...ㅠㅠ (『도박묵시록 카이지』그림체 비웃던 사람이 손에 땀을 쥐고 만화책 붙잡고 있는 거 내가 봤어!)
요렇게 집에 있던 만화책을 보며 따라 그려보았는데 '나는 만화가 못해먹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큰 소득(?)을 얻고 드디어 대망의...
드라마 장면을 따라 그리는 방법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점 세 가지를 꼽자면...
1. 표정이 생동감이 있다. 아무래도 잡지 떼기는 표정이 한정되어 있을 수 있는데 드라마는 여러 가지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에 표정이 훨씬 다양하고 생동감도 있다.
2. 다양한 사람들. 잡지나 만화는 대부분 멋진 비율의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드라마는 다양한 체형과 연령대의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서 좋다. 뚱뚱한 사람, 마른 사람, 작은 사람, 큰 사람,
3. 두 사람 이상 등장하는 떼샷이 많고 공간감을 익히기 좋다. 만화나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딱 하나의 피사체만 존재하는 그림보다는 여러 피사체가 어우러진 그림이 더 풍부하게 느껴지는데, 맨날 캐릭터 하나만 낙서하던 수준에서는 가장 필요한 게 바로 떼샷 그리기였다. 그리고 평면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공간감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기에도 장면 따라 그리기가 도움이 되는 듯하다. (연출자들이 알아서 구도를 잘 맞춰서 카메라에 잡아주니 구도 익히기도 오케이!)
사실 작년에 한 달 정도 열정 넘치게 그리다가 안 그려서 부끄럽지만... 그려본 걸 공유해본다. (기대 금지!)
미드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무슨 드라마인지 맞춰 봅시다! (잇츠 퀴즈타임! 난이도 최상급...ㅠㅠ)
여기까지 지못미 루시 리우 시리즈...가 아니고 작년에 한참 즐겨본 드라마다. 정답은 아래 그림 밑에...
정답은, 미국판 셜록 <엘리멘트리>! 막간을 이용해 드라마 소개를 하자면, 멘탈 약한 츤데레 셜록과 카리스마 뿜뿜 루시 리우판 왓슨 콤비가 뉴욕에서 벌이는 추리 수사물이니 '너무 무겁지 않은 수사물 덕후'에게 추천한다. (<캐슬>이나 <NCIS> 같은 거 좋아하면 좋아할 거유...)
요번 드라마는 무엇일까요?
바로 넷플릭스의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배우들 얼굴이 매우 그로테스크해지거나 우스꽝스러워졌지만 그 드라마 보고 그린 거 맞다. 내 그림체가 좀 더 잘 잡혀 있었다면 구도만 차용해서 녹여내는 게 가능했을 텐데, 그게 안 되니까 너무 실사처럼 그려지는 와중에 만화처럼 그리려는 본능이 섞여서 괴상한 그림체가 탄생!
<하우스 오브 카드>는 유명하니까 설명 패스~ (귀찮아서 아ㄴ... 맞음.)
요렇게 그린 그림들이 쌓이면 처음에는 너무 못그려서 버리고 싶다가도 왠지 그 부족함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지경에 이른다. 이 글을 쓰면서 오늘부터 또 장면 따라 그리기를 시작해 보자는 의욕이 솟아 올랐다. (불끈!)
드라마는 참 좋은 것이여. (여러분, 드라마가 이렇게 유용합니다!)
영화도 가능!
참고로 애니메이션은 독특한 캐릭터나 판타지스러운 풍경을 그리게 되어서 좋다. 물론 아름다운 화면 때문에 자괴감에 빠지기 쉽다는 것은 함정.
게임도 가능!
요즘 게임들, 특히 콘솔 게임들은 그래픽과 연출이 영화 뺨 후려칠 정도로 좋아졌다. 물론 게임에 몰입한 상태에서 그림이고 나발이고 될리가 없지만 나중에 꼭 그리고 싶은 장면이나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캡쳐해서 따라 그려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