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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Jul 27. 2016

종합서점, 일상을 이어주는 책의 네트워크

속초 동아서점에서

얼마 전에 편집자로 일하는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가 있다. 미국 출판사의 담당자가 서울로 출장을 왔는데 의아해 한 것이 있다고 한다.


왜 서울에는 서점이 다 지하에 있나요?



그 질문을 듣고 찬찬히 생각해보니 과연 그렇다. 서울의 대표적인 대형 서점인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모두 지하에 있거나 대형쇼핑몰 안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부턴가 자취를 감춘 동네 종합서점.

언제부터인가 서울에서는, 그리고 지방에서도 길을 걷다가 유리창 안에 진열된 책을 보는 것이 드문 경험이 되었다. 요즘 생기고 있는 작은 책방들은 겉모습이나 속모습 모두 매력적이고 개성이 있지만 수도권이나 특정 지역에 몰려 있기도 하고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서점 쇼윈도


ⓒ 동아서점


책이 다른 미디어에 비해 점점 멀게 느껴지는 것도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접하는 빈도수가 다른 미디어에 비해 점점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굳이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매일 스쳐가는 일상 속에 책이 진열된 쇼윈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쩐지 위화감이 느껴진다. 매일 스쳐가는 지하철, 버스의 꺼지지 않는 영상매체와 공기처럼 존재하는 손 안의 스마트폰을 떠올리면 더욱 비교가 된다.


마치 가두리 양식장처럼 책이라는 미디어에만 경계가 그어져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요즘 아이들이 책을 멀리 한다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어떤 책' 이전에 '책 자체'와 우리의 삶이 접점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 씨는 "오늘날의 서점은 '보통'을 잊어버리고 있다. '보통'이란 '왕래(오라이)'에 있는 것 아닐까? 사람들이 오가며 왕래하는 곳에 늘 있는 서점, 그런 것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 『서점은 죽지 않는다』 203쪽 (『서점은 최고』에서 재인용)



동아서점에 가다

1년 전에는 아쉽게도 발길을 돌려야 했던 동아서점.



동아서점의 안내문을 접한 순간부터(더욱 정확히는 오른쪽 아래 귀퉁이의 앙증맞은 책 모양 그림을 본 순간부터) '여기는 다시 꼭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1년 뒤에 드디어 동아서점에 직접 가볼 기회가 왔다.


토요일 새벽부터 바지런히 출발해 도착한 속초의 공기는 상쾌하고도 달콤했다. 동서남북 어디로 걸어도 좋을 것만 같은 날이었다.


아, 아무리 날씨가 끝장나게 좋아도 동아서점에 가는 것은 잊지 말아야지. 중앙시장에서부터 슬슬 걸어서 15분 정도 갔을까? 이쯤 되면 나올 때가 되었는데... 라고 생각할 때쯤, 한적한 길가에 반가운 동아서점의 모습이 보였다.

 


종합서점의 기억

문득, 난생 처음 종합서점에 들어선 후, 그 큰 공간을 가득 채운 책을 보며 '세상 모든 책을 읽고 싶다!'라고 패기 넘치게 외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평생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이 가득 찬 서점이 좋았던 이유는, 각자 다른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다채로운 숲을 이룬 모습과 매일매일 눈을 반짝이게 혹은 번뜩이게 만드는 새로운 정보들의 파도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인터넷을 처음 접했을 때도 비슷한 호기심과 흥분을 느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널찍한 서가 사이 바닥에 주저앉아 눈에 띄는 책을 펼쳐 보기도 하고 만화책이나 공포특급 같은 자극적인 책들에 정신을 빼앗긴다. 그리고 이 커다란 세계를 탐험하겠다는 모험심으로 서점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새로운 단어, 새로운 용어, 미지의 세계에서 날아오는 온갖 이야기들이 어린 나의 머릿속으로 침투한다. '분야'라는 말에 익숙해지기 전에 경계 없이 책의 세계를 탐험한다.


요리책을 보다가 그 옆의 과학책을, 만화책을 보다가 그 옆의 운전면허 자격증 책을-

한 공간에 존재하는 가벼운 책과 무거운 책의 리듬감-

일본 작가의 추리소설 옆에, 프랑스 작가의 SF소설 옆에-

아직 장르라는 말을 모르던 나의 머릿속에서 내가 서점에서 탐험한 경험이 그대로 나만의 책세계를 구성하기 시작한다. 취향이란 것이 자리잡기 전, 어린 내가 '책을 좋아해요'라고 말할 때 지칭한 책은, 그저 서점 안을 가득 채운 '모든 책'이었다.


이제 '세상 모든 책을 읽겠다'며 큰 서점을 찾는 일도 드물어졌다. 책을 소비하는 방식도, 구매하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디지털 공간에서 책의 정보는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소비자는 키워드로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는다. '종합적으로 책이 모여있는 공간'은 일상에서 사라져간다.


매년 약 4만 5천종(2015년 기준)의 책이 출판된다. 출판되는 대부분의 책을 수용할 수 있는 온라인 서점에 비해, 오프라인 서점은 한정된 공간에 선별한 책을 구비하고 판매해야 한다. 한정된 책으로 매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팔리는 책 위주로 파는 것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되고 말았고, 동네 서점을 가면 거의 비슷한 책으로 구성된 책장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동네에 남아있는 종합서점들이 소량의 베스트셀러와 참고서로 대부분의 매출을 유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은 음식이나 소모품처럼 박리다매할 수 있는 성질의 상품도 아니고 책이 다루는 주제는 점점 더 세분화되고 있다. 직원이 많은 대형서점이 아닌 하나의 서점에서 모든 분야의 책을 다룬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종합서점'을 운영한다는 것,
그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가치를 품어야 할까?




'1956' 단순한 숫자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면 오바?


동아서점을 살짝 탐험하기로 한다. 종합서점답게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칸칸이 나누어진 책장에 작은 라벨을 붙여 소분류로 책을 진열해 놓았다. 분류별로 한 칸을 다 채웠는데 들어가야 할 책이 한 권 더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사소한 궁금증을 떠올리며 서가를 돌아다닌다.


저 책을 서가의 어디에 놓고, 그 대신에 어떤 책을 빼서 어디로 옮길까? 그 오른손의 움직임 하나가 어쩌면 책 한 권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른다. 실로 신성하면서도 잔혹한 장면이다.

- 『서점은 죽지 않는다』 74쪽


아마 손님에게는 서점의 책들이 매일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같이 느껴지겠지만, 매일매일 아주 조금씩 책들은 자리를 옮기고 있을 것이다. 더 적당한 분류로, 더 적당한 위치로, 새로운 책이 오면 변하는 책의 관계 속에서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서...


책의 네트워크가 그렇게 펼쳐져 있었다.




큐레이팅에 대한 고민

일본 드라마 <싸우다, 서점걸>에서는 페가수스 서점의 열정 넘치는 신입 점원이 직접 쓴 '책소개 글'을 책에 붙여놓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이를 본 부점장은 '당신이 쓴 책소개 글에는 서명이 없다. 책을 고르는 것은 손님이다. 당신의 취향을 밝히고 싶다면 독자를 한정하는 글을 익명으로 책에 붙일 것이 아니라 블로그를 하는 게 낫다.'라고 말한다. 책을 잘 소개하고 싶은 마음의 신입 점원에게 가혹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에 대해 깊이, 그리고 오랫동안 고민해온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나도 서점을 한다면 내 사심을 잔뜩 담아 책을 소개할 것 같은데, 혼자 하는 서점이라면 몰라도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그리고 '다양한' 독자가 찾는 종합서점이라면 조심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해가는 시대에 맞춰 변화를 모색하는 중소 서점은 조금이라도 독자의 발길을 부추기고 독자가 한 권의 책이라도 집어들 수 있도록, 그리고 서점 자리에 또 다른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서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망원동 한강문고

한강문고에는 점원들이 이름을 내걸고 책을 소개하는 메모를 붙여놓은 코너가 보였다. 조금이라도 독자와 가까이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대전 계룡문고

대전 계룡서점은 지역 대표 야구팀 관련 책들이 매대 맨 윗줄을 채우고 있었다. 지역의 색이 확 느껴지는 서점 풍경이었다.


동아서점의 서가 곳곳에는 짧지만 눈에 들어오는 메모가 붙어 있다. 대부분 '요즘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을 것 같은' 키워드다. 다른 말로 '트렌디'하다고 표현해야 할까나?

거창한 설명 없이, 마치 한 권의 책 제목처럼 눈에 띄는 문구들이었다.


동아서점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다. 가운데 떡 하니 자리한 책상이나 창가의 기다란 바 형식의 책상은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듯, 넉넉~하다.


엉덩이를 보호해주는 푹신한 의자, 요 자리도 아주 좋다.


기~다란 바 형식의 책상은 동아서점의 정체성을 이루는 데 한 몫 하고 있다


동아서점에는 종합서점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매대가 있다. 바로 독립출판물 코너다. 대부분의 큰 서점에서 독립출판물을 다루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과 일대일로 거래해야 하기 때문에 배본이나 결제를 일일이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이 클 것이다. 그 모든 게 비용이기 때문이다. 종합서점을 찾는 독자 대부분에게는 다소 실험적으로 느껴져서 판매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도 있을 듯하다. 어쨌든 서점의 한 공간을 차지하는 순간 매출을 어느 정도 담당해야 하니까.


독립출판물 테이블의 자리는  내가 보기엔 굉장히 '명당'이었다.


기존의 종합서점으로서 독립출판물을 다룬다는 생각,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쉽게 시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동아서점에서는 다양성이라는 가치에 더 무게를 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아서점을 '경험'하며 새삼 종합서점에 대해 생각한다


모르겠다. 디지털 미디어의 범람과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당연하다고 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새로운 미디어가 어린 시절 내가 경험했던 종합서점의 가치를 모두 대체할 수 있을까? 굳이 책을 펼쳐보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 책의 쇼윈도가 스며드는 것, 내가 찾는 분야가 아니더라도 우연한 책과의 만남을 기대할 수 있는 장소, 책이 배치된 모습으로 나만의 책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경험...

또 다른 생각도 든다. 지금 우리는 같은 공간(한국)에 살지만 세대별로 즐기는 미디어가 극심하게 나뉘어 있다. 접하는 언론 채널(인터넷 언론/TV 언론), 미디어 채널(스마트폰/TV), 커뮤니티(SNS)... 세대 간에 같은 한국말을 써도 점점 말이 통하지 않는 느낌이 든다. 오프라인 공간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이 찾는 공간에 중장년층이 있거나 중장년층이 있는 공간에 젊은이가 있으면 어색해 보인다(홍대/종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갈라져 있다.

그래도 종합서점만큼은 아이부터 노인까지 섞여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적어도 비슷한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내가 노인이 되어도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는 종합서점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좋겠다.

서점이 차례로 사라지고, 얼굴(개성)이 없어지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그녀처럼 맞서며 '책'을 바람직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각자 자기 자리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서점원들을 편들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지금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앞으로도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 『서점은 죽지 않는다』 53쪽


동아서점다운(그게 뭔지는 각자 느끼는 대로) 책봉투


새로운 미디어의 기능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편리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끝에 잃어버리고 있는 가치도 있음을 잊고 싶지 않을 뿐이다. 동아서점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정말, 동아서점이 있어서 다행이다.




참, 그러고 보니 요즘 '속초 간다'고 하면 다들 '포켓몬 잡으러 가냐?'고 묻는다는 군요.


- 네, 포켓몬 잡으러 갑니다. 포켓몬도 잡고 책 할인도 받고.


출처 : 동아서점 인스타그램



책방에서 산 책

만듦새가 범상치 않은 책. 앞날개 뒷날개 길이가 다르고 기름종이로 곱게 싼 모양새가 정성스럽다. 속초에 가기 전에 동아서점 페이스북에 소개된 것을 직접 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딱 펼쳤는데 눈에 들어오는 시. 피식 웃음을 터트린 뒤, 바로 사기로 결심했다.


이 시집을 가끔 펼쳐본다. 시인의 시선이 고스란히 내게 다가오는 순간이 많다. 살짝 미소를 머금게 만들거나 가슴이 철렁하게 만들기도 한다. 분명 시인데도 산문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국문학 지식이 없어서 이게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 언제 펼쳐도 응시하게끔 하는 힘이 있는 시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속초 동아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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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켓몬 항시 대기 중

출처 : 동아서점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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