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8일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쿵쾅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간은 새벽 6시 반. 찌뿌두둥한 몸을 일으켜 세우고 무슨 일인가 하고 밖을 보니 바로 옆집이 공사를 하고 있다. '뭘 다 때려 부수나, 왜 이렇게 시끄러워...'
프로 집순이 답게 밖으로 나갈 생각보다는 귀마개를 귀에 꾹꾹 눌러 끼고 컴퓨터를 켰다.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집중하려 하는 순간, 흔들~ '아, 지진이 나면 이런 느낌이려나?' 싶은 흔들림이 느껴졌다. 정말로 집을 때려 부수는가 보다.
결국 흔들거리는 모니터를 보며 한숨을 푹 쉬고는 대충 씻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이 공간을 사이에 두고 공사 중. 올해 초에는 3층 가정집을 사무실로 개조한다고 한 달이 넘게 공사를 하더니 집순이 밖으로 끄집어내기 대작전도 아니고...
화장실쪽이 공사장쪽이라 공사 천막 때문에 시뻘개서 화장실 문 열고 깜짝 놀랐다. 연극 무대도 아니고...
리모델링 정도인 줄 알았는데 건물이 사라졌다. 이 더운 날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뭔 죄냐 싶어 더위사냥을 깨물고 있는 일꾼들 옆을 지나쳐 동네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이 기회에 반지하에 동거 중인 개미떼들이나 다른 좋은 장소로 찾아갔으면 하고 바라면서...)
동네 골목에 숨어있는 작은 책방, 안도북스에 들렀다. 시원한 차도 얻어마시고 책 구경도 했다. (책방에서 읽은 것 중에 안도북스 책방일지가 제일 재밌었다는 사실)
다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거리로 나섰다. 2시 반, 배고플 타임.
난 왜 쌀국수만 먹으면 맥주가 땡길까. 아무도 없는 식당에 앉아 쌀국수를 후루룩후루룩 먹는다. 아~ 사치스럽다, 라는 생각이 든다. 북적이지 않는 맛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경험, 드물다 보니 무지하게 사치부리는 기분이 든다.
식당 벽에 '타이 바질'이 필요한 분은 드린다는 안내문이 있어서 '타이 바질은 어떤 향일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분주하게 정리하시는데 물어볼까 말까 물어볼까 말까 하다가 계산대 앞에서 질문을 꺼냈다. 이탈리안 바질과는 완전히 다르게 민트와 비슷한 향이 난다고 한다.
요리 출장 공지문을 보면서 이곳에서 맞이하게 될 새로운 메뉴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렇게 열심히 발전하는 동네 식당이 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냥 요즘에는 소박하면서도 반짝이는 사람들이 참 그 자리에 있어줘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요즘 읽는 책. 만듦새는 미국책처럼 돈 들이지 않은 티가 많이 나지만(왠지 안 그래도 잘 팔리니까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느낌?) 재밌다. 제목은 번역하면서 새롭게 붙인 것 같은데 원래 제목과는 좀 분위기가 다르지만 스티븐 킹과 그의 창작론에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작가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이제 일해야지. 집앞에서 아직 공사가 한창이길래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로 향했다.
엄청나게 깔끔해서 앉아도 될까나, 하는 염려가 드는 공간.
무엇을 시킬까 하다가 '피콜로 라떼'라는 생소한 메뉴가 눈에 띄어 물어봤는데 매우 자신있게 추천하셔서 주문하고 말았다.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체질이라 라떼 종류는 자주 먹지 않지만 가끔 강하게 땡길 때가 있다.
그냥 아메리카노를 시킬걸 그랬나, 후회했는데 맛을 보니 시키길 잘했다. 자신있게 추천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이 깊다. 뭐랄까, 음식 만화에 나오는, 배경으로 식재료 산지의 모습이 휘황찬란하게 반짝이는 그런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커피의 원산지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향이 깊고 다채롭다고나 할까. (커피 맛은 잘 모르지만) 커피를 다 마시고 집에 와서도 그 커피향이 계속 맴도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커피맛이 좋아서 다시 가고 싶은 카페는 별로 없었는데 여기는 다시 갈 것 같다. 배경 음악도 집중하기 좋게 뉴에이지나 재즈 음악이었고.
한동안 공사 때문에 계속 밖으로 피신 가야 할 것 같은데, 커~다란 챙이 달린 밀짚모자나 하나 사서 쓰고 다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