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과 작은 것이 만날 때
분당에서 반가운 메일이 날아왔다. 새로이 문을 여는 책방에서 『미란다처럼』을 판매하고 싶다는 메일이었다. 책방에서 먼저 연락온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찌나 반가웠는지...! 당장 책을 포장해 보내고 근처에 갈 일을 만들어서 방문해 보았다. (근처 갈 일 만들기 : 근처 사는 친구 만나기)
정자역에서 내려서 바로 뒤에 흐르는 탄천을 건너면 '좋은 날의 책방'이 있는 동네가 나온다.
슬슬 걸어서 10분 정도 가니 백현 중학교와 백현 초등학교 근처 길목에 자리한 책방이 보인다. 오픈한 지 한 달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든 책방 앞에 늘어선 화환들... '신장개업' 느낌이 물씬 났다.
반가이 손님을 맞이해주는 책방지기의 인사에서 설렘이 느껴졌다. 일단 자리를 잡고 잠시 책방을 둘러보기로 했다. '좋은 날의 책방'은 북카페와 책방이 합쳐진 공간이다. 간단한 커피 메뉴가 있고 편안해 보이는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에 다양한 책장과 소품을 이용해 책을 진열해 놓았다. 최대한 다양한 책의 얼굴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느낌이 났다. 그냥 책장뿐만 아니라 책상, 책 바구니, 작은 선반, 아마존에서 특별히 주문한 책 거치대 등등 여러 가지 진열소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대형서점에서는 올라가기 힘든 평대 자리에 미란다처럼이 떡 하니 누워 있었다. 벌써 며칠 전에 책방지기 님 추천으로 한 여학생이 한 권 사갔다고 한다. 뭔가 미란다의 이야기가 힘이 되어줄 것 같아서 추천해 주셨다는데, 꼭 그 독자분에게 좋은 경험을 주는 책이 되길 빌었다.
가만히 책을 살펴보면 책이 모두 꼼꼼하게 비닐로 감싸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냥 비닐이 아니라 약간 도톰하고 질감이 있는 비닐이라서 안쪽이 책표지와 달라붙지 않고 책의 오염을 막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카페를 겸하고 있다고 해서 새 책을 커피를 만시면서 보면 오염이 될 것 같아서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책을 하나, 하나 다 포장해 놓아서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볼 수 있고 구매할 때 그 책을 그대로 사거나 아니면 아예 밀봉 포장해놓은 책을 골라갈 수 있다고 한다.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이곳에서는『미란다처럼』의 원서도 볼 수 있다. 원서를 구할 수 있는 책들은 옆에 가치 진열해 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고 한다. 원서 제목을 알려드리고 왔더니 같이 진열해 놓았다고 소식을 전해 주셨다.
이 책장은 단연 '좋은 날의 책방'에서 가장 주목 받는다고 한다. 책방지기가 직접 디자인하여 주문제작한 '개인 책장'이다. 나눠진 구역마다 열쇠가 따로 있어서 원하는 손님에게 자신의 책을 여기에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와인바에서 와인을 키핑(keeping)하듯이 책도 키핑해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집에서 새삼 책 읽을 마음이 안 잡힐 때 이곳에 와서 개인 책장을 이용하면 생활 패턴에 변화도 주고 '어떤' 여유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해나갈지 정해지진 않았고 손님들의 의견을 들어서 운영 방식을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바로 앞에 초등학교, 중학교가 있다 보니 가족 책장을 만들어 아이들이 갈 곳이 없을 때 와서 보관해놓은 책을 읽을 수 있게 해도 좋겠다고 하셨는데 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참 좋은 공간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책방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책의 배치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기도 하고, 손님들의 욕구에 맞춰서 세미나나 책모임을 꾸려 보는 일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책방지기만의 취향이 아니라 책방에 방문할 사람들의 취향이나 필요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은 한 번 겪어 보았지만 서점을 운영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궁금한 게 많아서 책방에 나가면 조심스레 이런저런 질문을 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서점을 시작할 때 책을 공급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에피소드를 듣게 되곤 하는데...
처음에 책을 어디에서 공급받는 게 좋은지 찾아보다가 서점연합에 문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서점연합에서는 다른 안내 사항 없이 그냥 지역 총판에 물어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역 도매상에 상담을 요청했더니 서점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고 견적을 내주겠다고 한다. 어떤 서점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적당한 참고서와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를 섞어서 공간 크기에 맞게 짜여진 책으로 견적을 내는 것이다. 아마 예전에 동네에 자리 잡았던 종합 서점에 맞춰서 유통을 해왔던 관행이 남아있어서 그런 것 같다. (참고서, 베스트셀러, 잡지 위주로 판매하던 종합 서점 입장에서는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 '팔리는 책' 위주로 팔아야 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작은 책방 입장에서는 원하는 책을 취급하고 싶어도 출판사에서 직거래를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출판사를 탓할 수도 없는 게 나 같이 책이 1종밖에 없는 경우에는 관리하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지 않지만 만약 책이 50종 정도인데 일일이 책방마다 일대일로 거래를 해야 한다면 관리비용이 무시할 수 없게 커진다. 이렇게 책방과 출판사 사이의 유통 비용을 줄여주고 효율적으로 책을 움직이기 위해 중간에 도매상이 존재해 왔던 것인데, 지금에 와서는 그 역할이 그야말로 예전 시대에 맞게만 머물러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어떤 도매상은 책방측에 보증금을 요구한다고 하기도 하니 작은 책방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작은 출판사나 작은 책방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큐레이션'에 있다. 관련 없는 책들이 뭉뚱그려져 있고 전국의 책방에서 팔리는 책이 다 똑같은 게 아니라 책방지기의 큐레이션에 따라 각 책방들이 다채로운 색으로 독자와 만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출판사도, 작은 책방도, '책 팔아서' 먹고 살 수 있었으면 한다.
도매상은 분명 출판 유통에 필요한 존재였지만 출판 환경이 변하면서 '작은 것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새로운 유통책이 필요해진 것 같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책에 써 있던 글이 생각난다.
"작아도 진짜인 일을 하고 싶었다."
책방지기가 들려준 또 한 가지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서점을 한다고 하니 유통 관계자가 하는 말이, 왜 서점을 하냐는 것이었다. 차라리 치킨집이나 편의점을 하지. 난 이런 말 뒤에 숨은 논리가 어떤 것인지 알고는 있다. 잘 팔리는 것, 조회수가 높은 것을 쫒아 너도 나도 뛰어들어 박터지게 경쟁하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다루려는 물건은 어떤 것인지 파악하지 않고 그저 몰개성적으로 한 가지 삶의 방식을 추앙하는 것.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배부른 삶을 바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 먹을 양을 다 먹고도 더, 더 채우기 위해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일에 매달려 하루 24시간을 보내다가 배가 터지는 삶보다는 배가 좀 고프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으로 내 인생을 채우며 살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해서다.
정말 보잘 것 없이 '작아도' 점점 줄어드는 인생의 하루하루를 '진짜인' 일들로 채우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책방을 한다고 하면 마냥 낭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직접 만나본 책방지기들은 대부분 척박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경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작은 것'들이 일상 속에 자리 잡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책방에서 선물 받은 책
예전에 제목만 보고 호기심 만땅 일어나서 기억해 두었던 책. 같이 책방에 갔던 친구에게 선물 받았다. 요거 읽고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도 읽어야지. 그런데 이 책이 만약 순서가 오른쪽->왼쪽이라면 이거 너무 편파적인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제목은 『Tales From One Pocket』과 『Tales From The Other Pocket』인 걸 보니 번역하면서 오른쪽/왼쪽으로 바꾼 것 같다.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번역한 제목이 좋지만 뭔가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든다. (오른쪽, 왼쪽에는 순서 개념이 없다고 생각해서...)
아, 나는 오른손잡이다.
분당 정자동 좋은 날의 책방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ooddaybookshop/
인스타그램 @gooddaybook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