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에 푹 빠져 지낸 지 1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급기야 어제는 오늘 새벽까지 야근을 했다. 물론 자발적인 야근이긴 하지만 겁나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제는 국립생태원에 가서 '데이터 시대, AI 시대, 국립생태원에 필요한 것'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인도 체스의 유래부터 횡렬형 쐐기벌레까지 썰을 풀고 이제는 Know-How, Know-Where, Know-Who 시대를 넘어서 Know-What 시대라 열변을 토했다. 지금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느껴지냐 물으며 AI 유료결제라 했다. 그런데 하룻밤사이에 엉뚱한 생각이 몰려왔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AI에게 다듬으라 했다.
이론적으로는 임금이 오르면 노동의 공급량이 늘고, 임금이 내려가면 공급량이 줄어든다. 경제학 교과서가 설명하는 단순한 수요·공급의 원리다. 그러나 현실의 노동시장은 이 단순한 곡선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임금이 오르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이 내려가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을 공급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난다.
이 모순은 단순한 이론과 현실의 차이를 넘어 사회 구조의 불평등을 드러낸다. 생활을 위해 일할 수밖에 없는 다수의 노동자는 임금이 낮아질수록 더 많은 노동을 제공해야 하고, 이는 노동 공급 과잉을 낳는다. 그 결과 임금은 다시 떨어지고 노동시간은 더 늘어난다. 유시민 작가가 이를 “파멸적인 항구적 경쟁”이라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멈출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악순환적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지쳐가고 삶의 질은 파괴된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은 이 경쟁을 더욱 심화시킬 조짐을 보인다. 플랫폼 경제와 글로벌 초경쟁은 임금 하락과 노동시간 증가의 악순환을 세계적 차원에서 확장시키고 있다. 이제 더 많은 일을 해도 생존만 겨우 유지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방치한다면, 노동자는 개별적 힘으로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끝없는 경쟁의 수레바퀴에 갇히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해야 한다. 개인의 힘으로는 이 파멸적 경쟁을 멈출 수 없다. 그러나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단결하고, 공정한 협상을 통해 권리를 지키며, 필요하다면 행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악순환을 끊고 인간다운 삶을 지켜낼 수 있다. 노동 3권은 단지 헌법 조항이 아니라, 파멸적 항구적 경쟁으로부터 사회를 지켜내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