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칼 세이건
DNA에는 본능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생존 본능이 깔려있다. 예를 들어 고래가 플랑크톤을 섭취한 후 그 플랑크톤을 지방질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든가, 1킬로미터 깊이로 잠수하면서 숨을 참는 방법 같은 것이다. 멍청한 짓을 하는 이에게 ‘아메바’라고 놀리곤 하지만 사실 아메바 조차도 상당히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아메바의 정교함을 설명하기 위해 박테리아를 먼저 얘기하겠다. 박테리아는 살아가는데 대략 100만 비트의 정보를 필요로 한다. 100만 비트라면 100쪽 분량의 책 한 권에 해당하는 정보량에 해당한다. 하지만 아메바는 박테리아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아메바의 DNA에는 약 4억 비트의 정보가 담겨 있다고 한다. 4억 비트라 하면 대략 500쪽 분량의 책 80권에 해당하는 정보가 있어야 아메바를 하나 만들 수 있는 양이다.
한편 고래나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는 약 50억 비트나 된다. 이 양은 영어로 된 책 1000권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책의 분량이 몇 쪽인지는 안 나와 있다.) 이 1000권이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의 양이다. 또한 그 세포 하나하나는 몸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소장하고 있다. 따라서 칼 세이건은 세포 하나하나를 ‘유전자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시간이 흘러 생존에 꼭 필요한 정보 전부를 유전자에 저장할 수 없을 정도로 양이 증가했고 진화가 선택한 방법은 그 정보를 육체 바깥에다 저장해 두는 방식이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런 방식을 사용할 줄 아는 종은 지구 상에서 인류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책을 통해 우리는 1000년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지금까지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0의 14승 개의 신경 다발을 가진 지구인처럼 외계에도 이런 지적 생물이 존재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진화됐을지도 모르겠다. 보이저 탐사선은 지금도 아주 느린 속도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탐사선에는 레코드판과 바늘, 카트리지도 함께 있으며 겉표지에는 사용법이 적혀있다고 한다. 혹시 모를 외계 문명권이 이것을 발견하게 될 것을 염두하여 지구인의 존재를 알린다는 뜻에서 레코드 판에 인간의 유전자, 사람의 두뇌, 도서관 등에 관한 정보도 입력돼있다. 하지만 현재 지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과학에 대한 정보는 전혀 실려있지 않다. 보이저 호가 지구를 떠난 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지금쯤 보이저호는 광막한 성간에 있을 것이고, 그런 공간에서 보이저 호를 가로챌 수 있는 수준의 문명권이라면 그들의 과학은 지구의 과학보다 훨씬 더 앞서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저 우주의 천체만 탐사하기 위해 쏘아 올렸다 생각했었는데 이런 것 까지 신경 써서 쏘아 올렸다는 게 정말 의외였다. 새로운 생명체가 정말 존재한다면 레코드판에 실린 지구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진다. 혹시 모를 생명체를 위해 지구의 음악과 몇 종류의 지식이 포함된 보이저호 자체가 외계 생명체에게 보내는 편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