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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Sep 08. 2017

진로에 취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대학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 전에도 시간강사 신분으로 대학생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전임 신분으로 한 학교에 소속되어 일하게 되었다.


30여년 간의 직장생활 경험을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의 진로를 도와주는 일이다. 정작 내 자녀들에게는 바쁜 회사 일 핑계로 거의 하지 않던 일이다. 사실 이것도 무관심에 대한 변명이라면 변명일 수도 있겠다. 부모가 간섭할라고 마음 먹으면 자기 자녀의 진로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했을테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


그런 내가 학생들의 진로를 담당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대학에서 첫 번째 나에게 준 미션은 1학년 생 대상으로 "퍼스널브랜딩"이란 제목의 강의를 하는 일이다.


처음 해보는 강의라 걱정도 많지만 우선 제목부터 마음에 안 든다. 사람을 브랜딩 하다니? 사람을 대상으로 마케팅 원리를 도입하는 것에 거부감이 생긴다. 

언젠가부터 대학이 취업을 위한 준비하는 장소로 바뀌어버렸다고 한다. 저성장 시대로 진입하면서 졸업생들의 사회 진출이 어려워지다 보니 학교마다 학생들의 취업을 도와주는 일이 많이 생겼다. 정부에서는 각종 명목으로 학생들의 취업이나 창업을 위해 노력하는 대학에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한다. 사회적인 분위기로 등록금 올리는 것이 힘들어진 대학들은 저마다 이런 정부 자금을 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모대학은 이런 정부의 정책에 부합하려다  취업이 안되는 인문사회 쪽 정원을 줄이고 이공계 쪽 정원으로 무리하게 확대하려다 학생들의 반발에 부닥쳐 문제가 되기도 했다. 또, 한편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인문학이 중요하다며 인문학을 육성하는 정부정책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정책의 근저에는 졸업생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에서 출발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취업을 위해 고민을 하는 신세(?)가 된다. 취업을 준비하는 것 이외 대학에서 낭만을 찾고 추억거리를 만드는 것은 사치로 여겨질 정도다. 입학하자마자 자신을 어느 특정 기업과 직업에 맞추어 대학생활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학교의 여러 장학혜택의 수혜자도 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앞으로 공부를 잘해서 받는 장학금은 폐지하겠다는 취지도 알고 보면 일자리 정책과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각종 매스컴에서는 대학이 학문과 지성의 전당이어야 하는데 취업 준비를 하는 학원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학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의 비판에 자유로운 대학은 찾기 힘들 게 되었다. 그들의 비판이 일자리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하는 비판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본주의 원리 속에서 움직여지는 학교로서는 다른 대안을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퍼스널브랜딩....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 대상으로 빨리 자신의 흥미와 적성, 성격을 파악하여 진로방향을 정하고 그 진로에 맞춰서 자신을 만들어 가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과목이다. 그 진로는 기업 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살면서 해야할 일을 말한다. 



우리들의 대학생활은 어땠을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그 때는 대학은 지금의 모습과 달랐을까? 그렇지 않다. 그 때는 지금과 같은 진로관련 프로그램이 없이 혼자서 고민하거나 동료, 선배들과 고민할 수 밖에 없어서이지 지금의 모습을 다르지 않았다. 1학년에서 2학년 정도 대학분위기에 취해 오가다가 군복무를 마친 후부터는 대부분 학생들이 취업준비를 했다. 진학을 위해 대학원 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취업준비를 했던 것 같다. 크게는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 공무원과 공기업 준비를 하는 학생, 기업체 입사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교사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정도로 갈려서 졸업 후 준비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냥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이렇게 보면, 대학에서 미리 자신을 살펴보고 자신의 진로를 챙겨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취업문제가 워낙 크게 부각되다보니 마치 대학 신입생부터 취업준비를 시키느냐는 듯한 오해가 있어 그렇지만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그렇지 않다. 초중고를 거치면서 쌓아온 진로방향이 있다면 그대로 강화해 나가도록 도와주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진로방향을 확정해서 대학생활을 알차고 의미있게 보내라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내가 맡은 '퍼스널브랜딩' 프로그램은 이렇다.


자신이 누군지 먼저 알아보자는 것이다. 알다시피 의외로 자기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남이 보는 내가 다르고 내가 보는 내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이전의 나와 현재의 나가 다른가 하면, 처한 상황에 따라서도 내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문가의 힘을 빌고 전문 검사를 하다보면 진정한 자신의 모습에 가까운 근사치가 나오게 된다. 


그렇게 해서 확인된 자신의 정체성 그대로를 인정하고 자존감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가치를 키워나갈 수 있게 도와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해진 그들의 진로방향은 앞으로도 많이 달라지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겠지만, 혼자서 막무가내로 부딪히는 미래보다는 훨씬 나은 미래를 맞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결정되는 그들의 진로방향은 사람 숫자 만큼 다양할 것이다. 그렇게 정해진 뒤에 자신의 강점은 개발하고 약점을 보완하면서 진로방향대로 도전해 가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정말 중요한 일을 맡은 셈이다. 

앞으로 어떤 학생들이 나와 만날지 모르지만 그 학생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최종 결정은 자신의 것이라 하더라도 그 영향력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는 이런 프로그램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그냥 닥치는대로 살았지만 별 문제 없었는데  왜 이리 난리들이냐고 할런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시대를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우리들이 대학을 다니고 사회진출을 할 때는 경제 성장이 가파를때다. 지금의 중국처럼 매년 7~10%의 성장을 할 때다. 그래서 지금처럼 세련되게 진로를 도와주는 전문가나 기관이 없어도 그냥 쉽게 사회 진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로를 바꾸더라도 큰 문제없이 새로운 진로로 진입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냥 부딪히면 상처만 남는 시대다. 미리 준비하여 부딪혀도 만만치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새로운 진로로 방향을 바꾸려면 훨씬 더 큰 댓가를 치러야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 대학 초기부터 학생들의 진로를 도와주는 일은 참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중요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걱정은 세대 차다. 내 자녀들 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과의 소통이 걱정이다. 세대 차를 메울려면 그 만큼 더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들의 선배들 중에는 나이가 들어도 많은 세대 차를 잘 극복하면서도 멋진 인생 후반부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하드웨어야 바꾸기 어렵겠지만 내 생각과 마음은 얼마든지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미래에 적지만 소중한 디딤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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