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사회야!
"교수님! 그룹과제는 안됩니다. 절대 안됩니다. 무임승차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안됩니다."
요즘 학생들은 상대평가로 학점이 받게되니, 그룹별로 과제를 해서 그룹성과에 의해 같은 점수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좋은 동료를 만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대체로는 서로 어색하게 만나 소통하기가 만만치 않은데다 일부 학생들은 아예 과제에 참여치 않고 무임승차 하는 학생들을 경험하기 때문에 꺼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룹별 과제나 발표를 하겠다고 하면 반드시 몇 명은 안된다는 메일이나 문자를 보낸다. 설사 그룹별로 과제를 하더라도 학점이 뛰어난 학생끼리 묶어 달라 하기도 하고, 성비균형에다가 서로 얼굴을 알면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므로 같은 과끼리 묶지 않도록 요청하기도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밖에 없고, 사회생활이란 것도 결국은 사람들 간의 관계맺기라고 볼 수 있어, 대학에서부터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방법을 배우는 차원에서 그룹과제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설득해보지만 만만치 않다.
대학생들간의 이런 분위기는 학점부여 시스템의 영향도 있겠지만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도 없지 않을 것 같다.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이 이전보다 발전된 모습이라는 가정 할 때 그 발전의 힘은 사람들간의 협력과 경쟁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인간 개개인으로는 조직에서 나오는 시너지를 당해 낼 수 없다. 그래서 조직 속에서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조직 속에서의 경쟁도 필요하다. 만일 조직과 개인간 경쟁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빠르게 인류들이 만든 업적에 이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경쟁 속에 협력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직 속에는 항상 무임승차하는 부류가 생긴다. 그래서 수많은 조직 이론가들은 이 무임승차자를 막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해왔지만 근본적으로 피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무임승차는 개개인의 책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사회공공재로 가면 더 심각해진다. 가령,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라는 공공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리가 함께 누리는 이 '자유'라는 공공재는 다 같이 지키려고 노력해야 잘 유지되고 발전될테지만,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갑자기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노력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제외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무임승차 하는 것이 최고의 처신일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나같은 생각을 했더라면 지금 누리는 이 '자유'는 요원했을 것이다.
우리 선배들이 대학 다닐 때인 1960년 대만 해도 대통령의 정치내용이나 정부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딘가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2017년 현재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모르게 이 만큼 많은 자유를 누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현재의 자유 그 동안 누군가의 엄청난 희생과 댓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고 산다. 어쩌면 지금 누리는 '자유'라는 공공재의 혜택이 원래부터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 6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현재의 자유를 위해 수 많은 희생이 있어왔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그 공공재를 위해 희생할 때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냥 방관하며(어떤 이는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하고 비난하며) 무임승차족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낸다.
대학교에서 팀플(그룹과제를 대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을 하는 것은 사회 공공재와는 달리 당장 나의 점수와 직결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임승차 족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들로 인해 선의의 성실한 학생들이 피해를 보면서 팀플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팀플을 싫어하는 학생 중에는 무임승차족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지만, 몇 몇 학생의 경우는 다른 학생과 함께 하는 것을 무조건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런 학생들은 다른 학생과 말 섞는 것 자체를 싫어하거나 혼자하면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팀플을 함으로써 오히려 더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들이 사실은 팀플이 제일 필요한 학생들이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에는 자본의 경쟁원리 속에 살아가면서 함께 도와주며 사는 방법보다는 상대를 제쳐야 내가 살 수 있고 평가도 상대평가를 통해 협력할 수 없는 분위기가 요즘 대학생들의 팀플에 대한 현상을 만든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상이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사람들 간의 협력과 경쟁 속에서 성장한다. 그렇지 않다면 조직이란 개념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기업조직은 말할 것도 없고 몇 몇 사람이 모이게 되면 반드시 조직이 만들어진다. 개인이 일하는 것보다 조직을 만들어 일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이 형성되는 순간 조직 속의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시작된다. 그 갈등을 생산적인 갈등으로 승화하지 못하면 개개인으로 일할때보다 성과가 떨어질 수도 있다. 이를 역시너지현상이라 한다. 그래서 사람들 간의 협력하면서 경쟁하는 방식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몇몇 학생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중간고사 과제를 팀플로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무임승차로 인해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최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반영해 보았다.
과제수행을 혼자서 할 수도 있고, 2명 혹은 3명으로도 할 수 있게 했다. 팀플을 희망하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혼자서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대신 팀플을 하는 조의 경우에는 조금의 가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2명으로 하는 경우는 0.5점, 3명으로 하는 경우는 1점씩 더 부여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팀플을 할 경우의 어려움을 인정해 줬다. 그리고 팀은 자율적으로 맺도록 만들어 등록하면 인정해 주기로 했기 때문에 아는 학생이 없어 팀플을 하고 싶으나 함께 할 학생을 찾기 어려운 경우는 나에게 개인 문자를 달라고 해서 내가 중재를 해줬다.
그렇게 했더니 대상자의 70%이상의 학생이 자율적으로 팀플에 참여를 했다. 몇몇 학생들은 파트너를 구해달라고 요청이 왔다. 개인이 과제를 하겠다는 학생을 상대로 전화를 해서 몇 팀이 더 만들긴 했지만 개별로 과제를 하겠다고 한 학생들에게 전화를 하니 대부분은 그냥 혼자 하겠다고 했지만, 그 중 몇몇은 얼굴을 몰라 혼자 하려고 했던 학생이 있어 팀이 맺어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매의 어려움을 실감했다.
내가 조금 힘들긴 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팀플을 하는게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조직 속에서 수많은 세월을 살아갈 우리 학생들이 벌써부터 혼자서 살아가는 데 익숙하게 만들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혼자 하겠다는 학생들의 의견도 존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런 친구들을 억지로 팀을 맺게 하기 보다는 스스로 필요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중간고사일에 그룹별 과제발표가 진행된다. 발표는 혼자서 과제를 한 친구에게도 자격이 주어진다. 발표를 하고 자신들끼리 평가를 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서로 협력하면서 경쟁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학생들의 팀플에 대한 태도를 보면서 나는 무임승차해온 일은 없었는지, 근본적인 원인이 뭔지를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