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원희 Jan 03. 2018

인도기행3, 인도중의 인도, 바라나시

충격, 그 자체

인도 내에서 가장 인도다운 도시라는 바나라시로 왔다.

바나라시는 인도 북부 갠지즈강 중류에 위치하는 도시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 그리고 힌두교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도시로 간주된다. 불교와 자이나교에서도 중요한 성지로 꼽히는 도시다.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도 그 존재가 언급되어있다. 기원전 6세기 무렵 카시왕국의 수도로 번성했다가 이후 코살라왕국, 마가다왕국에 지배되었다. 11세기경부터는 이슬람 침략자들에게 약탈당하기 시작해 무굴제국 아우랑제브 황제 때 도시 대부분과 여러 힌두교 사원이 파괴되었다. 당시 파괴된 사원 중 대표적인 것은 흔히 ‘황금사원’이라고 부르는 비슈와나트 사원이다.

비슈와나트사원, 인터넷자료

연간 100만 명인 넘는 순례자들이 방문하여 성스러운 갠지스강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전생과 이생에 쌓은 업이 씻겨 내려가길 기원한다. 그들 순례자를 위해 갠지스강변에는 길이 약 4km에 걸쳐 '가트(Ghat)'라는 계단상의 목욕장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그 한쪽에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화장해 그 재를 갠지스강에 뿌리는 화장터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바라나시 호텔에서 인도 현지 요가를 체험하게 되었다. 

일행 중 반 정도만 참석하여 다소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지만 도심 속에서 하늘을 직접 바라보며 요가를 한 것은 첨이다. 개인적으로 매일 아침 스트레칭은 하지만 요가를 그것도 인도 하늘 아래서 요가를 체험하게된 것이다.

이번에 인도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알고있는 요가는 체위법이나 호흡법을 중심으로 한 '하타요가'에 해당하고 이 외에도 사회참여를 통한 봉사와 자기희생을 통한 카르마요가, 신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실천하는 박티요가, 지식으로 내면을 탐구하고 지혜를 일깨우는 즈나나 요가 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가선생님은 상상했던  멋진 몸매의 늘씬한 분은 아니라서 조금 실망했지만 나름 요가방법은 제대로 아는 분인 것 같았다. 이 분의 자세를 따라 햇빛이 내리쬐는 호텔 옥상에서 야외의 시끌시끌한 소음을 들으며 40여 분 요가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자세는 평소 내가 아침에 하는 스트레칭 자세였지만 좀 더 정확한 자세를 통해 지친 몸을 풀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인도 결혼식장면, 인터넷자료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가 요가를 체험하는 동안 아래에서 시끌했던 소음은 이곳 결혼식 축제 때문에 일어났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이곳 결혼식 광경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호텔에서의 식사는 뷔페식이었다. 일정 중에 인도여행 전체 기간중 호텔에서 식사하지 않는 경우는 2, 3번 밖에 되지 않았다. 아마, 이곳에서 일반현지식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3번 있는 식사도 한식과 중국식이었기 때문에 여행기간중 식사 문제로 힘든 경우는 전혀 없었다. 


호텔에서 이루어지는 인도 뷔페식에는 독특한 향과 소스가 있어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실제 식사를 해보니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곳 대표적인 음식중 하나인 여러 종류의 카레도 있었고 육류는 소고기는 없었지만 닭고기나 양고기를 재료로 하는 요리들이 입맛을 돋구었다. 그리고 란이라는 둥근 빵은 담백하고 구수하여 매번 양을 초과할 정도로 많이 먹었다. 그리고 커피도 쓰지 않고 숭늉처럼 구수하고 담백하여 식사 때마다 두잔 씩 마시곤 했다.


요가를 마치고 싸이클릭샤를 탔다.

이곳에는 릭샤라는 유명한 대중 교통수단이 있는데, 싸이클릭샤는 자전거를 세발로 만들어진 것이고 오토릭샤는 오토바이를 세 발로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것이라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그와 같은 형태로 제조되어 나온다고 한다. 

싸이클릭샤로 이동중

싸이클릭샤를 타고 이동한 곳은 바라나시의 관광의 핵심인 갠지즈강변에 가기 위해서였다. 싸이클릭샤는 2인씩 타고 이동했는데 도심으로 들어가자 매케한 공기와 함께 수많은 교통인파로 도로 전체가 운반수단들로 꽉 차버리게 되었다. 우리를 태운 싸이클릭샤를 운전하는 분들은 2사람을 태운 마차를 사람의 힘으로만 5키로 정도 되는 도심거리를 이동시켜 주었다. 이동하는 동안 우리들 바로 앞을 스치는 자동차나 다른 탈것들 때문에 위태할때마다 비명을 지르면 자신은 베스트드라이브라며 걱정 말라는 손짓을 하며 익숙한 솜씨로 도심을 헤쳐 나갔다. 


준비해온 마스크를 차고 양 사방에서 울려대는 크략송 소리를 들어며 도로 속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고막에 거슬릴 정도의 소음도 이동하면서 점차 적응될 뿐 아니라 바로 앞과 옆에서 아슬아슬하게 자니가는 자동차나 오토바이에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릭샤체험을 즐기게  되었다.


갠지즈 강변에 가까와지면서 도로에는 점점 더 인파들로 북적였고 각종 교통수단들과 뒤엉키기 시작했다. 도로변에는 각종 농산물과 먹거리 그리고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로 들어서 있었고 도로에는 자전거, 삼륜자전거인 싸이클릭샤, 오토바이와  삼륜오토바이인 오토릭샤, 그리고 승용차, 트럭, 도로 가운데를 마음껏 어슬렁거리는 소와 개들 그리고 이렇게 많은 교통수단 틈 속에서 두 발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한 도로에서 섞여서 자석에 이끌린 듯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뒤엉켜 이동하다보니 교통수단별 절대속도는 별 의미가 없었다. 심하게 말하면 그 틈을 비집고 이동하는 사람의 걷는 속도가 제일 빠른게 아닌가 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모든 교통수단들은 크략송 경진대회를 하는 듯이 빽빽거리며 먼저 앞서가려고 다투었다.

이렇게 이동하다가 목적지의 500여 미터 앞에서 더 이상 전진할 수 없게 되지 우리들도 모두 내려 걸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거의 떠밀려 가는 수준이었지만 인파들 속에서 걷는 재미도 꽤 있었다. 


드디어 신성한 강, 갠지즈 강변에 도착했다.

매일 저녁에 있는 불의 의식 '아르티 뿌자'를 보기 위해서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르티 뿌자는 힌두교 브라만 사제들이 제례 음악에 맞춰 절도 있는 동작으로 불덩이를 돌리는 행사다. 


화장터 가트의 화장모습

강변에 모여든 사람들을 헤치고 우리들은 강변에 즐비하게 떠 있는 배에 올랐다. 그리고 배를 타고 먼저 이동한 곳은 '자라사인 가트'란 곳으로 죽은 이들을 화장하는 가트였다. 가트는 강변에 행사를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계단을 의미한다. 배에서 그곳을 바라보니 여러 곳에서 모닥불 같은 불이 보였다. 그 불꽃들은 모두 화장을 진행하는 불꽃이라고 했다. 미리 보고 듣고 간 곳이었지만 바로 눈 앞에서 그 모습을 보니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숙연해졌다.


인도인들은 이곳, 갠지즈 강가에서 장사를 지내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이곳에서 화장되기를 원한다고 한다. 갠지즈강은 그들이 믿는 힌두교의 세 신중 파괴의 신 시바의 강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다. 한 곳에 7, 8명씩이 천으로 덮힌시체를 들고 물가를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물에 넣었다 빼기를 다섯 번 반복해서 신성한 갠지즈 강물에 적신 후 장작 위에 놓고 불을 붙여 화장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사용하는 불씨는 수드라 계급의 정해진 집안에서 2000년 이상 대대로 꺼뜨리지 않고 지켜오는 것인데, 그 불씨로만 화장할 수 있다고 했다. TV에서 봤던 그 수드라 집안의 타오르는 불씨를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배에서 바라보는 푸자의식


배가 가까이 가니 15곳 이상에서 시커먼 연기와 함께 시체를 태우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는데 화장에 사용하는 장작나무는 망고나무라서 시체소각에 따르는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우리들 바로 앞에서 화장을 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으나 역겨운 냄새 같은 것은 거의 나지 않았다.


이것을 지켜보는 동안 죽음이란 것을 멀게 놓고 두렵게만 생각하는 우리들의 모습과는 달리 죽음 또한 생활 한 가운데 놓고 살아가는 인도인들의 모습에서 생각에 따라 죽음도 삶의 과정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여기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자의식

이 모습을 지켜본 후 처음에 배를 탔던 곳으로 이동했다. 수많은 배들이 '푸자의식'을 관람하기 위해서 모여 있었다. 우리는 배를 탄 채 강에서부터 그 의식행사를 지켜 보았다. 우리 뿐 아니라 우리처럼 배를 타고 그 의식행사를 지켜보는 인파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배들끼리 서로 맞댄 상태로 그 광경을 지켜 보았는데 그 모습 또한 장관이었다. 


우리들은 푸자의식이 끝나기 조금 전에 일찍 빠져 나와 다시 싸이클릭샤를 타고 호텔로 향하며서 올때 본 광경을 다시 한번 체험했다. 완벽한 무질서 속의 완벽한 조화를 느꼈다고 하면 언어의 유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 같았으면 모두 범법자가 될 만한 방식으로 도로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소리치며 이동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삶의 방식에 완벽하게 적응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발하는 모습

섣불리 겉모양 만 보고 그 모습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경제적 수준 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국민들의 섣부른 오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무사히 호텔로 돌아왔다. 5키로를 두 사람을 태운 값이 인당 1불이 너무 적은 것 같아 1불을 더해 3불을 주었더니 인당 2불 씩 주기로 했다며 4불을 줄 것을 요구해 그렇게 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2불만 주기로 했다고 한다. 속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 정도의 노동댓가로는 그것도 너무 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4시 30분에 모닝콜이 울렸다.


갠지즈강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 일찍 일어난 것이다.

어둠 속 새벽공기를 가르며 어제 왁자지껄했던 도로를 버스로 수월하게 이동해서 역시 목표 500미터 지점 앞에서부터 걸어서 이동했다. 걸어서 이동하는 동안 도로 좌우측에는 어제 도로 중간에서 활보하던 소와 개들이 사람들과 함께 잠자고 있는 모습들이 펼쳐졌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들이 하나가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몇 몇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은채 누워있어 혹시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 정도였다.


동물과 함께 자는 모습

이동 중에 이곳 사람들이라면 커피나 중국의 차처럼 즐기는 '짜이'라는 음료를 맛보았다. 조그마한 초벌 진흙 토기에 담긴 음료는 홍차, 우유, 설탕을 섞었다고 하는데 생강 내음도 조금 풍기는 맛이었다. 맛이 괜찮았다. 아내는 호텔에서 유리잔에 마시는 짜이 맛과 흙토기에 담아 마시는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고 했다. 아마 막걸리를 유리잔에 마시는 것과 전통 잔에 마시는 차이의 기분이었던 것 같다. 먹고 난 뒤에는 흙으로 만든 토기를 바로 땅에 던져버린다고 하는데 나는 아까워서 조심스럽게 토기잔 무더기 위에 올려 놓았다.


짜이

메인 가트를 앞으로 이동하는 동안 사두를 만났다. 사두는 힌두교의 수양을 위해 떠도는 사람들인데, 얼굴에 하얀색을 한 노인분들의 모습이 신기하여 지나가면서 사진에 담았다. 이곳에서는 수시로 얼굴에 하얀 바탕에 여러 무늬를 그려넣은 채 지팡이를 하나 든 노인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대부분은 진짜 사두이기보다는 사진촬영에 응해주고 돈을 받기 위한 분들이라고 했다. 외국인들에게 친절히 다가오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가까 사두라고 보면 된다.


사두?모습

어제와 마찬가지로 어둠 컴컴한 가운데 배에 올라탔다. 배의 난간에는 아직 아침이슬을 머금고 있어 축축하였고 새벽 강바람이어서인지 파커를 입었는데도 추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는 전날 갔던 화장을 하는 가트에 갔다. 전날 시체를 태운 불꽃이 재로 변한채 잔불만 덤성덤성 남은 상태였는데 소와 개들이 돌아 다니면서 그 잔불 사이로 제사 음식들을 뒤지고 있었다. 또 한 곳에는 새로운 화장을 위한 시체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화장을 위한 땔깜용 망고나무들이 빼곡이 쌓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새로운 시체를 들고와서 물에 담그며 다시 화장절차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시체를 태우기 위한 망고나무장작

이곳은 사람이 죽으면 우리처럼 문상을 받지 않고 하루 만에 이곳으로 이동시켜 화장을 하고 돌아가 13일간 기도를 하게 되는데 그 기간동안 사람들이 와서 조문을 한다고 했다. 24시간 내내 이렇게 쉬지않고 화장을 한다고 해도 시바의 강이라는 이곳 갠지즈강에서 마지막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10억이 넘는 인도인구 중에 얼마되지 않을 것 같아 여기 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여기에 오지 못하는 사람은 가까운 강에서 이런 절차를 갖는다고 했다.


화장터가트를 본 후 배를 이동시켜 강변에 이어져 있는 84개 가트를 보면서 이동했는데 이동하는 동안 우리처럼 보트를 타고 온 사람부터 노를 저어 이동하는 배를 탄 사람 등 다양한 형태로 인도중의 인도라는 바라나시를 경험하러 온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배 주변에는 엽서나 각종 기념품을 실은 배들이 다가와 호객을 했지만 일행중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강 상류로 이동하던 중 갑자기 수많은 갈매기 떼들이 우리에게 몰려들었다. 가이드와 배를 젓던 사람이 미리 준비해온 갈매기 먹이를 강에 던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인천 앞바다에서 맞이하는 갈매기 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갈매기들이 우리들을 덮치는 동안 여러 장을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84개의 가트에는 전날 본 화터장가트와 예배를 드리는 가트 뿐 아니라 목욕가트,  빨래터 가트 등이 있었는데 이런 가트들이 화장터 가트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어져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한 곳에서는 시체를 태우고 있지만 바로 옆에서는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몸매는 조금  안되는 분들의 목욕의식

그리고 새벽의 찬 공기에 떨면서 강에 들어가 목욕하는 모습도 신기했다. 우리에겐 신기하게 보였지만 그들은 신성한 행위를 하는 것이라 우리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놀라와 해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을 향한 자신의 행위에 열중했다.


일출이 시작되기 전에 가이드는 DIYA(빛이라는 의미)라고 하는 꽃잎으로 만들어진 중간에 촛불이 있는 종이배를 하나씩 주면서 소원을 빌고 강에 띄워보라고 했다. 조심조심히 강물 위에 꽃을 띄우면서 손에 닿은 갠지즈강물을 따스했다. 파커를 입은 몸은 한기를 느낄 정도였지만 물은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아마도 신의 손길이어서 그럴거란 생각을 해봤다.


일행이 DIA를 뛰우는 장면

겉으로 보기엔 지저분한 이 강물을 담기 위해 우리의 약수터 통과 같은 것을 팔고 있었는데, 가이드 말로는 이곳에서는 여전히 이 물을 담아 가라앉힌 후 식수로 활용하고 있기도 한다고 해서 괜찮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게 새벽공기를 가르며 이것 저것 인도를 음미하는 동안 흐린 날씨를 헤치고 장엄하게 느껴지는 해가 올라왔다. 올라올수록 점점 붉어지는 모습이 더욱 성스럽게 느껴졌다. 상식적으로 보면 갠지즈강을 바라보는 쪽이 서쪽인데 어떻게 해가 서쪽에서 뜰까라고 생각했는데 가이드가 의문을 풀어주었다. 이곳이 바로 갠지즈강이 역류하는 지점이어서 방향이 반대로 느껴진 것이라 했다. 장엄한 일출과 오가는 배 그리고 갈매기까지 포함한 일출광경을 사진에 담고 배에서 내렸다. 


갠지즈강 일출장면

배에서 내린후 다시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날이 어느 정도 밝아졌기 때문에 다시 붐비기 시작하는 사람 사이를 헤쳐 나와야 했다. 이동 중에 사전에 들은 만큼은 많지 않았지만 도로 곳곳의 동물 배설물을 피해다녀야 했고, 최대한 불쌍한 모습을 한채 구걸하는 많은 걸인들을 만나야했다.


몸의 불편한 부분을 어필하며 구걸하는 어른을 비롯해서 아이같은 어린이가 갓난애기를 안고 구걸하는 모습 등 여러 모습으로 관광객에게 자비를 구했지만 우리들은 사전에 들은 가이드의 지침대로 냉정하게 지나쳤다. 한 사람에게 베풀면 무더기로 몰려와 곤란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는게 좋다고 했고 또한 한국처럼 구걸을 위한 조직들이 움직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호텔에 돌아온후 식사를 했다.

벌써 세 끼 같은 호텔 뷔페 식사였지만 끼니때마다 달라진 음식으로 물리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 인도식 음식인데도 불구하고 식사에 큰 불편이 없었다. 오히려 건강식을 먹는다는 느낌으로 부담없고 좋았다. 그래서 인도인들 가운데는 비만자들이 거의 없는 지도 모르겠다. 하긴, 이 정도의 식사를 매일 하는 인도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거라도 보면 사실 이들에게 비만자가 거의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곳 여행을 하면서 두가지 문화가 없다는 가이드 설명에  놀랐다. 하나는 음주문화이고 또 하나는  난방문화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까지 그 복잡하고 무질서한 가운데서도 술에 취해있던 사람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실제 술을 먹지 않느냐고 했더니 실제로 술집은 거의 없고 술을 구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부모 몰래 나가서 먹기도 하지만 그게 일반적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렇게 무질서한 문화 속에서 술까지 더해진다면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에 다행이란 생각도 하게 했다.


도로변에서 널브러져 있는 소떼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따뜻해야 잠을 잘 수 있는데 내가 잠잔 이곳 호텔에서는 18도 이상 조절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옷을 더 껴입고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이곳에는 난방문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게 되었다. 난방장치가 없는 건지 이 나라 전력사정으로(호텔에 머무는 동안 몇 번 정전됨) 온도를 더 못올리게 한 건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전반적으로 이 나라에는 난방문화가 없다고 했다.


이틀, 만 하루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충격 속의 시간들을 보냈다. 마치 인도여행을 끝낸 기분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더 멋진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에는 에로틱 사원이 있는 카주라호로 이동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자기계발서 딱 3권 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