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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Jan 05. 2018

인도기행4, 19금 카주라호

참 별 사원도 다 있네요...

바라나시에서 카주라호까지는 비행기로 이동한다. 가이드가 일정을 언급할때 늘 하는 말이 있다. "출발지연되지 않으면...."  여기서는 지연, 연착이 일상이기 때문이란다.


아니나 다를까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권을 끊고 나눠주면서 하는 말이 20분 정도 지연 출발한다고 한다. 그 정도라면 아무것도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제 이곳 사정에 익숙해져 간다. 다음날 오르차로 이동할때는 열차로 이동한다는데 열차의 출발지연은 더 악명 높기에 걱정이다.


이번에 여행을 같이 하는 사람은 총 13분이다. 한 부부만 아들을 데리고 오고 나머지는 모두 짝이다. 4쌍은 부부이고 한 쌍은 친구끼리 왔다. 여행에서 만난 일행끼리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공유하면 좋은데 그럴려면 통성명에다 전화번호 교환까지 해야해서 여행 초반에는 부담스러워 카톡 오픈채팅방을 열었다.  '인도****'이란 이름으로 여행기간 동안 서로 찍은 사진을 공유하기로 했다. 이 카톡방이 서로 빨리 친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예정대로 20분 정도 기다리다가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물론 자석배치는 델리에서 바라나시 올 때와 마찬가지로 짝을 맞춰주지 않아 우리들끼리 서로 조정해서 앉았다. 이륙 후 40분 정도 만에 도착한 카주라호 공항은 우리나라의 지방공항 처럼 조그만했다. 이 지역은 시골지역으로 인구도 1만 명 정도 밖에 되는 않는다고 했다. 바라나시에서 들었던 소음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호텔로 이동하는 도로도 한가했다. 이곳에서 묵을 곳은 라마다란 이름을 가진 숲 속의 펜션처럼 정겹고 예쁜 호텔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늦어진 점심부터 먹고 카주라호로 이동했다.


입구 호수 전경


카주라호 입구에 내리자, 쇠로 만든 길다란 모양의 간디모형을 들고 나타난 상인과 아이들이 20달러라고 외치며 호객을 하기 시작한다. 떠날때는 2달러까지 내려간 물건을 들고 고집스럽게 따라 붙는 이들을  뿌리치고 나아가니 입구에 호수가 나타났다. 큰 규모의 호수는 아니지만 신을 만나기 전에 호수를 지나면서 마음을 안정하라는 의미인 듯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호수였다.


호수를 지나고 사원 입구로 들어서니 1000년 전의 사원건물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붉은빛 사암으로 건축된 웅장한 건물들이 눈앞에 드러나자 입에서 탄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곳은 10~11세기에 찬델라 왕조시대에 건립되었는데, 찬델라 라지푸트족의 왕들이 시바신과 비슈누신 그리고 자이나교 대사제들에게 봉헌한 85개의 유명한 사원이 있는 곳이다. 그 중 지금은 20여개 만 남아있고 카주라라는 이름은 이곳에 많은 붉은대추 이름인 카주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인터넷 자료


전체는 서군과 동군으로 나눠져 있는데 서군은 힌두사원, 동군에는 자이나교사원이 있다. 대부분의 사원은 서군에 집중되어 있다.


맨 처음 간 곳은 제일 먼저 만나는 사원은 '락슈미' 사원과 그리고 그 옆에 위치한  '바라하' 성소다. 락슈미는 3대 신중 유지의 신인 비슈누 신의 아내다. 바라하는 비슈누신의 3번째 화신인 멧돼지의 산스크리트어 발음이다. 그렇게 보면 모양을 보면 상상 안되지만 부부신을 나란히 모셔놓은 사원인 셈이다.


락슈미 사원과 바라하 사원


인도에서 만나는 모든 신들은 창조의 신 '브라마', 유지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라고 보면 되는데 창조의 신은 한번 창조하면 끝이기 때문에 별 인기가 없다고 한다. 이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신은 유지의 신 비슈누인데 연꽃과 대지로 상징하며 행운과 번영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파괴의 신인 시바 신도 인기가 있는데 유지의 신은 현상 유지를 원하는 보수층 브라만, 크샤트리아 계층에 더 인기가 있고, 파괴의 신 시바는 현재 피지배 계층에 해당하는 바이샤, 수드라에서 더 인기가 있는 신이라고 한다.



일행들은 락슈미사원과 바라하 성소 앞에서 앉아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드디어 카주라호 사원의 하이라이트인 '19금' 조각이 잔뜩 새겨져 있는 사원으로 이동했다. 처음으로 간 곳은 비슈누의 이복동생 이름을 딴 락슈마나 사원이었다. 락슈마나는 인도 대서사시 라마야나에 따르면 비슈누의 7번의 화신인 라마를 도와 악을 물리쳤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락슈마나 사원은 가운데 중앙사원이 있고 동서남북 귀퉁이에 조그만 사원이 들어서 있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이곳 사원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사원이라고 한다.


락슈마나사원


이곳 사원 외벽에는 다양한 형태의 애로틱한 조각물이 새겨져 있는데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또는 없는) 모든 성행위를 묘사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수간까지 묘사한 조각물도 있었다. 이런 낯뜨거운 성행위를 묘사한 조각을 한 이유는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 것 같다. 당시 유행한 탄트리즘(80년경부터 일어난 힌두교의 퇴폐적인 경향)의 영향이라고 하는 설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는데,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자이나교가 번창하면서 금욕을 강조하고 출가를 많이 하게 되자 인구의 축소를 걱정한 왕들이 사원벽에다 그와 같은 형상의 모습을 새겨놓음으로써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신성한 사원에 적나라한 성행위를 묘사하게 만든 탄트리즘은 300년경 인도에서 시작하여 500년에는 인도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쳤다. 많은 종교의 교리들이 본성을 억제하고 육체의 쾌락을 멀리 하도록 가르치는 반면 탄트리즘은 육체적 욕망과 물질적 가치를 자아 성찰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사상들은 훗날 불교에도 영향을 주어 성행위를 수행의 한 방편으로 여기는 좌도밀교를 만들어 냈다.(인터넷 작성자 Moozorim님 자료)


조각물에는 미투나(남녀교합상) 뿐 아니라 신들의 다양한 모습, 특히 가네샤(코끼리)가 많이 조각되어 있었고 조각된 신들 주위로는 금방 터질것 같은 여체의 무희(압사라)들과 천녀(수라순다리)들의 농염한 모습들로 조각되어 있었다. 이러한 조각들을 보면서 아무리 모래로 이루어진 사암이라 하더라도 돌인데 어떻게 저렇게 정교하게 조각을 했을까 놀라게 되는데 그 정교함 때문에 마치 조각을 먼저해서 맞춰넣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칸다리아 마하데바 시바사원


서군사원중 가장 웅장하다는 칸다리아 마하데바 시바사원은 35미터의 뾰쪽탑으로 위엄을 뽐내고 있었는데 마치 스페인에서 본 가우디성당의 옥수수탑모형이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이곳의 모든 사원의 지붕이 이렇게 되어 있었는데 이 형태는 북인도에서 널리 이용된 나가라 양식으로 '사카라'란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 꼭대기는 시바신이 살고 있는 카일리스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신전에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고 덧버선을 착용하고 들어가보니 컴컴한 안쪽에 시바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외벽은 락슈마나 사원과 마찬가지로 음란한 조각물을 필두고 다양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다.  


파르바티사원


이렇게 비슷비슷한 사원들을 둘러바고 나오는 쪽으로 다시 3개의 사원이 있었는데 사원의 북쪽에는 시바신을 모신 비슈와나트, 그의 부인을 모신 파르바티 사원 있었고 그 옆에는 시바신이 타고 다녔던 성스러운 소 난디 사원이 무리지어 있었다. 이곳 또한 외형벽에는 같은 조각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난디사원


그 동안  지진도 많았다는데 천년 이상 이런 건축물들이 어떻게 원형이 보존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인도인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믿는 신들이 지켜주었을 것이라 답이 나올 것 같아 물어보지는 않았다.


서군의 힌두사원을 보고나니 과연 인도의 국부라고 하는 간디가 이 음란한 모두 사원들을 없애버리고 싶다라고 했던 말이 이해가 된다. 이어서 동군 자이나교 사원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는 다시 상인들의 끈질긴 호객이 시작되었다. 가격이 자꾸 떨어진다. 아내는 교육용 교재로 '카마수트라' 그림책을 구입했다. 2달러니 2,500원 정도에 구입한 셈이다.


자이나교 사원


자이나교 사원을 들어선 순간 분위기가 달라졌다. 왠지 조용하고 경건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관리하는 분들도 절제된 모습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곳에는 신발 뿐 아니라 양말까지 벗어야 했다.


사원 안에 들어가니 분위기는 엄숙했으나 그들 종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르를 비롯해 벌거벗은 모습으로 수행하는 모습을 보자니 민망하게 느껴졌다. 대부분 성화나 조각물들은 남근을 드러낸 채였고 현재 수행자들도 벌거벗은 모습이었다. 신자들의 친절한 안내가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했을때 마지막에는 기부를 요청하는 함이 놓여 있었다. 아무리 경건한 수행을 하더라도 돈이 없어서는 안되나 보다라는 생각에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자이나교 사원의 모양은 현대느낌이 나는 밝은 피부색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 사원들 역시 서군에서 본 힌두사원과 마찬가지의 외형에 색깔만 다르게 칠해서 그렇다고 했다. 자이나교 사원에는 상대적으로 난잡한 성행위를 묘사한 조각물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아마 자이나교 사원으로 바뀌면서 없애버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자아나교는 힌두교와 불교에서 나왔는데 살생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무소유와 금욕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자이나 사제들이 수행하는 모습을  TV 를 통해 접한적이 있는 이들은 2파로 분류되어 있다고 한다. 한쪽은 흰색옷을 입고 다니는 디깜바라(백의白衣)파와 다른 한 쪽은 온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수행하는 비깜바라(공의空衣)파로 나뉜다. 특히 이들은 살생을 엄격히 금지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빗자루 같은 것을 들고 다니면서 앉을때도 생물체가 다치지 않게 쓸고난 후 앉고 책을 넘길때도 그 빗자루로 쓸고 넘길 정도라고 한다. 또한 이들은 농업을 하지 않고 상업에 많이 종사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농업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명체를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이들은 일찍이 전산업무와 같은 곳에 많이 진출하여 현재 인도를  IT국가로 만드는데 주역이 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자이나교 최고의 사제


그래서 이들은 흙을 파는 일도 쉽사리 하지 않고 걸을 때도 맨발로 걷는다. 혹시 신발에 밟혀 죽은 생명체가 있을까 염려해서다. 우물물도 길러 다시 체에 걸러 마신다. 역시 생명체가 죽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들이 나체로 수행하는 것은 수행정도와 연관되어 있다. 수행정도가 높아질수록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수행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카주라호의 웅장한 건축물을 보고 난뒤 이런 건축물이 당시 백성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늘 전쟁과 기근 속에서 엄격한 카스트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들은 종교를 이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렇게 웅장한 건물은 종교지도자인 브라만과 정치지도자인 크샤트리아들이 그 하층계급인 바이사 수드라 계급의 피와 땀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만 결국은 그들 시스템을 더 공고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다. 현재의 부족함과 불만을 내세로 돌리기 위해 종교적인 장치를 통해 지배계급의 공고한 유지를 해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철학자 김용옥 같은 분은 이를 도덕적 압력(moral pressure)란 표현으로 동서양의 종교를 설명한다. 서양의 경우는 하나님과 천국의 소망을 통해 도덕적 압력을 느끼게 만들어 힘들고 괴로움 속에서도 선하게 행동하게 하고, 동양의 힌두교나 불교는 윤회개념을 통해서 현재의 선이 다음 생의 더 나은 탄생으로 연결함으로써 기존 사회시스템을 유지하는 도덕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호텔로 돌아온후 1시간 정도 휴식하고 다시 모여서 옵션상품인 민속공연을 보러갔다.  


공연장 입구


한 시간의 민속공연은 인근의 공연전문 홀에서 진행되었다. 100명 정도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50~60명 정도의 관객이 1시간 동안 관람했다. 공연장 입구에서부터 인도의 각종 神상들이 즐비하게 우리를 맞으면서 공연의 기대를 부풀게 했지만 막상 공연내용은 크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민속의상, 춤사위, 민속음악을 느껴보려고 노력했는데도 눈이 자꾸 감겼다. 인도의 민속춤을 소재로 7명의 배우들이 공연을 진행했는데 시골지역에서 하는 딱 그 정도 수준의 공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도관련 영화를 보면 인도에서는 춤과 노래가 영화의 스토리를 보강하는 역할도 하고 전체 영화를 끌어가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인도영화에서는 춤을 빼고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란 얘기를 들은 바 있어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마지막엔 인도 국기까지 들고서 열창하는  그들의 정성에 큰 박수를 보내며 지친 하루 일정을 마무리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민속공연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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