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수만큼 답이 많은 시대를 기대해 본다.
올해도 수능시험이 끝났다. 엄밀히는 시험치루는 행위만 끝났다.
수시입학이라는 제도가 생겨서 옛날 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수능시험의 위력은 대단하다. 수시입학의 전제조건에도 몇 등급이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옛날처럼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입시에 성적만 좋다고 되는 것 아니라서 사람의 다양성을 반영한다는 차원에서 입시제도가 점점 나은 쪽으로 보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 마디로 복잡해졌다. 사람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다양하게 선발하니 복잡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일반인은 기준도 잘 모르고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기준을 잘아는 부모와 학생이 더 유리하게 합격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입시제도가 복잡해져 버렸다.
그래서 과거의 제도가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는 예비고사, 종합고사 이름으로 한 번만 시험을 보면 되었다. 학교에 따라 본고사 제도가 있었지만 지금의 논술고사 만큼 야단을 떨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같은 경우 이미 두 아들을 6-7년 전에 대학에 보낸 적이 있지만 그때도 지금도 현 교육제도를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다. 그렇다 보니 입시전문가 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그것으로 돈버는 사람들이 자꾸 많아지는 것 같다. 결국 입시도 '돈'의 힘이 어느 정도는 작용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매년 수능시험을 볼 때면 부모나 당사자 못지 않게 긴장하고 노심초사 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능문제를 내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우연이 올해 그 조직 수능팀에 근무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최근 몇 년간 수능시험 문제로 자신의 수장이 바뀌었다면서 매년 수능이 마무리 될 때까지 엄청난 스트레스에 놓이게 된다고 했다. 문제에서 오류가 생기면 말할 것도 없고, 문제가 쉬우면 변별력이 떨어져서 문제가 되고, 문제가 어려우면 사교육을 조장하게 된다고 문제가 되고 이래저래 비판에 놓일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금년에도 수능문제에 대해 500여 건의 이의신청이 있는 상태라 어떤 결과로 마무리 될 지는 모르지만, 예년에 비해 문제의 난이도가 조금 높아져 변별력도 좋아지는 등 전반적으로는 좋은 평가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렇게 야단을 떨면서 공부를 해서인지 우리나라 학생들은 각종 세계 학력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보도를 접하곤 한다. 특히 수학이나 과학과목에서 그런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하는데 가만히 보면 우리들이 선진국이라고 했던 나라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국민들의 자질이 뛰어나서 그럴까 아니면 다른 나라 국민들 보다 더 지독하게 공부를 시켜서 그럴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몇 번씩이나 한국민의 교육 열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는 대단한 것 같다. 거기에는 사람이 전부랄 수 있는 우리나라의 환경적인 요인도 있을 것 같고 또 급격한 산업자본주의로 진입하면서 돈과 학력 위주의 사회가 되어 버린 것도 그렇게 우리들을 몰고 갔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렇게 학력위주의 사회로 진입한 우리들은 과연 행복하며 그토록 획득하려고 노력했던 대학졸업장이 우리들이 바람직하고 정의로운 민주사회를 사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느냐 하는 질문이다.
여기 프랑스의 입시문제가 있다. 대학에 가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거쳐야 한다는 3영역으로 나눠져 있는 2015년 바칼로레아 시험 문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1. (과학 계열 철학문제)
예술 작품은 항상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정치는 진실에 대한 요구를 피하는가?
-키케로의 <점술에 관하여>의 한 부분을 읽고 의견을 쓰는 문제
2. (인문 계열 철학문제)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인가?
(현재의) 나는 나의 과거가 만든 것인가?
-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의 한 부분을 읽고 의견을 쓰는 문제
3. (경제사회 계열 철학문제)
개인의 의식은 그가 속한 사회의 반영일 뿐인가?
예술가는 이해할 만한 무엇인가를 주는가?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의 한 부분을 읽고 의견을 쓰는 문제
우리의 수능문제는 이처럼 생각하게 하는 문제는 접하기 어렵다. 논술고사에서 해당되는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프랑스는 대학교를 가고 싶어 하는 모든 이에게 이런 문제를 풀게 한다고 한다.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하는 방법이 서툰지도 모르겠다. 맞다, 틀리다로 구분짓는 대화만 하려 한다. 정답이 있는 대화만 하려 한다. 그냥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얼굴을 붉히고 남의 얘기는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다가 나가버리는 식이다. 우리들이 뽑아 놓은 최고의 엘리트인 정치인들도 그렇다.
다시 수능으로 돌아오면, 그래서 우리나라 시험에는 정답이 중요하다. 시험이 끝나면 정답논쟁으로 지리한 싸움을 펼친다. 학력이 자신의 인생이 되는 나라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학력이 다시 돈이 되고 그 돈이 자기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쯤 학력이 삶의 기준이 아니라 생각의 힘이 삶의 기준이 되는 나라로 가게 될까?
우리는 언제쯤 학력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필요할때 갖추는 도구가 되며, 그 학력으로 인해서 사회에서 자존감 잃지 않고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정답이 중요한 나라에서 수능시험을 바라보며 막연한 생각에 젖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