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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Jan 07. 2018

인도기행6, 극한 사랑의 결정체 타지마할

사랑이 무섭다...

긴 여행 끝에 아그라에 무사히 도착한 우리들은 큰 캐리어 하나씩을 들고 재빨리 열차에서 내렸다. 우리들이 내리자마자 탈 때와 같이 붉은 옷을 입은 역의 짐꾼들이 몰려왔다. 직접 옮기려다가 짐꾼들이 짐을 어떻게 옮길지 궁금하기도 해서 짐을 맡겨 보았다. 묘기를 보게 되었다. 네 명이 우리 일행 13명의 짐을 옮겼는데 보통 한 사람이 큰 캐리어 4개씩 들었다. 두  개는 머리에 이고 하나는 팔에 걸고 하나는 끌고 이동했다. 그렇게 우리 버스까지 이동시켜 주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떨어질까 불안하기도 했다. 이런 노동에 대한 댓가도 1달러이고, 호텔에서 편안하게 짐을 옮겨주는 댓가도 1달러라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짐꾼 짐 나르는 모습


아그라는 델리 남동쪽 200키로 지점에 있는 인구 90만(1991)의 도시로, 무굴제국이 델리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1세기 동안 수도이기도 했다(1564-1658). 동쪽으로는 갠지즈강, 북쪽으로는 야무나강이 흐른다. 아그라에서는 타지마할, 아그라성, 시크라성을 보게 된다.


아그라에 도착하여 다시 바라나시의 도심지와 같은 매퀘한 매연과 뿌연 공기 그리고 시끄러운 크략숑 소음을 뚫고 도착한 곳은 가이드 말로는 아그라에서 가장 좋다는 Jaypee호텔이었다. 입구에서부터 호텔까지의 거리부터 로비의 크리스마스 트리 그리고 식당메뉴 가짓수까지 과연 특급호텔의 면모를 가진 호텔이었다. 호텔객실 중앙에는 멋진 정원과 벽폭포까지 설치하여 투숙객들의 기분을 좋게 했다. 객실 내의 침대와 욕실 또한 지금까지 묵은 호텔 중 최고 수준이었다.


아그라 Jaypee호텔


식사후 아그라호텔에서 처음 이동한 곳은 세계 최고의 건축물이라는 타지마할이었다. 세계 최고의 관광지중 하나답게 아침부터 굉장히 붐볐다. 어제 밤 도착할때와 마찬가지로 어둠만 사라졌을 뿐이지 똑같이 혼란한 도심을 뚫고 목적지로 이동하였다.



타지마할 주차장에서 다시 타지마할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셔틀을 타야 하는데 셔틀을 기다리는 동안 두 가지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하나는 'Pure Safe Water'이고 하나는 'Beer Bar'였다. 인도에서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생수 외에는 가게에서 파는 물이라 하더라도 함부러 사먹지 말라고 했는데, 얼마나 물에 대한 불신이 심하면 Pure하고도 Safe한 물일까 생각하면서 재미있게 봤다. 또 하나는 인도에는 음주문화가 없어 좀처럼 술집을 발견하기 힘들었는데 처음으로 술집 간판을 발견해서 신기하게 본 것이다. 술집이 있을 정도로 이곳은 유명한 관광지인 셈인 것이다.



세계 최고의 건축물이라는 타지마할을 만나는 절차는 만만치 않았다. 일단 소지할 수 없는 물건들이 많았다. 그래서 가이드는 이동을 시작할때부터 갖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을 여러차례 알려주었다. 거의 비행기에 탑승하는 수준만큼 까다롭다. 도착해서 기다리는 동안 타지마할 현장 가이드가 티케팅을 하고 표를 나눠주면서 물 1병과 타지마할에 입장시 신을 하얀 덧버선을 제공했다. 그리고 난뒤 남녀가 나뉘어 몸수색을 하고 가방검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남성에 비해서 여성들은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먼저 나온 남성일행끼리 30분 이상을 기다린 끝에야 여성일행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타지마할 동문을 통해 들어와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기념촬영을 한 뒤, 타지마할을 만나기 위해 북문을 향해 들어갔다.


타지마할 들어가기 전 입구


타지마할은 무굴제국 5대왕 샤자한이 그의 세 번째 왕비인 뭄타즈 마할이 19년간 14번째 자녀를 낳다가 죽자 그녀를 추모하여 건립한 궁전형식의 묘지다. 수 많은 왕비중 가장 총애를 받은 왕비인 뭄타즈 마할은 미모는 볼품 없었지만 지성과 애교로써 샤자한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왕비였다고 한다. 그녀 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신임한 샤자한은 변방 정벌시에도 그녀와 함께 갈 정도였다고 한다.


샤자한과 뭄타즈 마할, 인터넷자료


1632년 착공하여 기능공 2만 명과 코끼리 1000마리를 동원하여 22년 동안 공사하여 만들어진 타지마할은 입구의 수로 및 정원을 비롯해 타지마할묘를 둘러싼 4개의 기둥과의 완벽한 좌우대칭의 균형미를 이루고 있다. 전체가 최고급 대리석과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졌고, 터키 티벳 미얀마 이집트 등 각지에서 조달된 보석과 준보석을 사용해서 무덤을 꾸몄다. 대리석면에는 무늬를 정교하게 새겨 넣었는데 이것을 피에트라 듀라 모자이크 기법이라고 한다.


피에트라 듀라 모자이크 기법


타지마할에 대한 샤자한의 정성은 대단했던 것 같다. 타지마할 완공후 국가재정이 동이 날 정도였으며, 타지마할 이후 더 나은 건축물이 나오지 못하도록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손목을 잘랐을 정도라고 하니 그녀에 대한 샤자한의 사랑은 거의 병적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황토색으로 된 거대한 북문을 통해 들어가자 어둠컴컴한 공간에 나 있는 문을 통해 멀리서 타지마할이 눈에 들어왔다. 워낙 유명한 건축물로 들어와서인지 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그 건축물은 마치 꿈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유령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유령처럼 나타난 타지마할


타지마할이 보이는 좁은 문 밖으로 나가니 가로 세로 300여미터의 사각형의 정원과 수로가 나타났고 그 너머 4기둥으로 둘러싸인 타지마할이 나타났다.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각도를 제대로 못한채 찍어서인지 투명한 대리석 탓인지 타지마할 모습이 빛으로 반사되어 사진에 잘 담기지 않았다.



수 많은 사람을 비집고 사진을 찍고 난 뒤 정원을 걸어 타지마할로 다가갔다. 정원 중간에는 영국 다이애나비가 방문하여 앉았다는 곳에서 다시 사진을 찍고서는 타지마할 본 건물로 다가갔다. 양쪽에는 붉은 모습의 웅장한 이슬람 사원이 균형을 이룬채 서 있었는데 좌측에 보이는 사원은 실제 사용중인 사원이고 오른쪽 같은 모양의 사원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었을 뿐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다이애나 의자에서 찍은 타지마할


타지마할 주위에서 아름다운 대리석 벽면을 만지기도 하고 가까이서 사진을 찍고 한참을 기다려(외국인은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데 줄을 잘못 섬) 묘지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샤자한이 사랑했다던 왕비의 관과 샤자한의 관이 있었는데 그것은 가짜 관이고 실제는 지하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왼쪽 샤자한, 오른쪽 뭄타즈 마할 가묘


어둠 컴컴한 가운데 있는 관을 보고 나오면서 아내와 나는 샤자한이 사랑했다던 뭄타즈 마할을 제외한 나머지 수많은 왕비의 입장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결국은 이러한 샤자한의 행동도 왕비를 위한 행동이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타지마할을 둘러싸고 있는 야무르 강 건너편에는 샤자한이 검은 대리석으로 같은 모양의 무덤을 만들어 다리로 잇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전설이 있는 가운데, 샤자한은 이 무덤을 만든 20년 후 그의 막내 아들인 아우랑제브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된 뒤 아그라의 요새 무산만 버즈탑에 유폐되어 말년을 보내게 된다. 그는 무산만버즈탑의 창문을 통해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다던 뭄타즈 마할이 묻혀있는 타지마할을 보면서 쓸쓸히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스페인 그라나다에 갔을때 알함브라 궁전을 본 일이 있다. 그때 알함브라 궁전은 타지마할 다음으로 두 번째 아름다운 궁전이라고 했던 적이 있다. 한 쪽은 궁전이고 한 쪽은 무덤이기에 맞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아름답기로만 본다면 알함브라 궁전도 만만찮고 타지마할은 아름다운데다 신비롭게 느껴지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알함브라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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