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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Jan 07. 2018

인도기행7, 아그라요새와 비운의 파테푸르 시크리

아그라성과 파테푸르 시크리 기행기

인도 최고의 유적지라면 타지마할이 먼저 생각나지만, 유네스코에 등록 기준으로 보면 아그라성이 먼저다. 타지마할에 넋을 잃고 있는 동안 일정이 바빠지게 되었다. 이동하는 도로에 넘어진 가로수를 치우는 공사까지 겹쳐 더욱 서둘러 점심을 먹고 아그라 성으로 향했다.


아그라성은 1965년 무굴제국 3대 황제 악바르가 만든 성이다. 햇살이 무척 따갑다. 여행을 오면 선그라스와 모자는 기본인데 늘 잊어버린다. 모자를 하나 살까 했는데 시간 때문에 서두는 가이드의 눈총 땜에 그냥 손으로 가리고 아그라성으로 들어갔다.


아그라요새


외모에서 위압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강한 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 곳은 인도 유일의 요새로 높이는 30미터에 이르고 길이도 2.5키로나 되는 성벽으로 견고하여 지금도 군사시설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라 한다. 이 성은 전체가 붉은 색으로 도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붉은 빛 일색이었다. 이 성의 별칭도 붉은 성이다.


이 성은 악바르대제가 만들었지만 샤자한이 궁성으로 개조를 하고 아우랑제브는 외부성채를 건설해서 이중으로 된 성벽 사이에 물길을 설치했다고 한다. 따라서, 관람 중에 붉은색은 악바르 대제, 그림이 강조되어 있으면 자항기르,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으면 샤자한 시대때 축조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아그라 게이트


악바르대제 시대의 높다란 아그라성 게이트를 통과하면 처음 만나는 건축물이 자항기르 궁전이다. 자항기르 궁전은 아버지 악바르가 힘겹게 얻는 자항기르를 위해 지은 궁전이라 한다.  자항기르 궁전에 들어가니 거대한 돌항아리로 된 자항기르황제의 욕조가 나타나고  이어 자항기르 궁전을 만날 수 있었다. 궁전 내부에 들어가 냉방을 위한 여름방과 난방을 위한 겨울방의 구조를 설명 들었다.


자항기르 궁전


가이드는 한 건축물의 천정과 벽면의 누르스름한 면을 가리키면서 이곳이 바로 영국이 들어와 금부분만 다 벗겨 나갔다며 나쁜 영국*이라고 얘기하여 다같이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성안의 설치되어 있는 왕자와 공주를 위한 놀이공간도 보고 성 안의 아름다운 모스크도 관람하였다. 또한 황제가 귀빈접견을 하던 디완이카스(private)와 백성들의 강연장으로 활용한 디완이암(public)을 관람했다.


나쁜 영국*


이어서 샤자한황제가 타지마할을 짓고 난 뒤 재정난에 빠져 있는 동안 막내아들 아우랑제브의 반역으로 유폐가 되어 있던 아버지 샤자한의 감옥(무산만 버즈탑)을 관람하면서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마지막을 보냈던 샤자한의 심정을 생각하며 우리들도 건너편에 보이는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몇 컷의 사진을 남겼다.  



이 아그라성은 이 지역 4개 있는 유네스코 유산 뿐 아니라 전국 84개가 등록되어 있는 것 중 처음으로 등재된 건축물이라 한다. 그 만큼 규모나 예술성에서 뛰어난 세계가 인정한 건축물이라 생각했다.


이어서 파테푸르 시크리 성으로 이동했다.

시크리 성은 아그라에서 37키로 떨어져 있는데, 버스로는 1시간 반이 걸렸다. 상당 시간은 아그라시내를 빠져나가는데 소요되었던 것 같다. 이동하면서 쌍용을 인수한 마힌드라 차량이 보여 인도의 차량 점유율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가이드 말로는 1위 타타, 2위는 일본과 합작한 스즈키마루티, 3위는 쌍용을 인수한 마힌드라라고 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자료와는 달랐다. 2016년 기준으로 스즈키마루티가 반을 차지하고 현대가 16.7% 이어서 마힌드라가 10% 정도로 3위를 달리고 있었다.


데코레이션된 대형 타타 화물차


그런데 거대한 화물차는 거의 타타라는 자동차브랜드를 달고 다니는 것 같아 타타그룹에 대해서 물어 보니 인도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그룹이라고 했다. 타타그룹은 역사가 150년으로 우리 삼성이나 현대보다 훨씬 오래된 그룹으로 매출도 100조에 이르는 큰 그룹인데 철강, 자동차, 통신, 차, 비료에 이르기까지 96개 자회사와 30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인도 최대 재벌 그룹이다.


한국경제매거진 자료, 타타그룹 이미지


이 그룹은 출발부터 성공과 이익과 같은 것이 목표가 아니라 '헌신'과 '신의'를 모토로 하는 그룹이라 한다. ‘사회로부터 얻은 것은 사회로’를 사시(社是)로 내세우고 있으며, 기업 이윤의 60%는 반드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실천한다고 한다. 경영권도 혈연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주는 모범을 보이고 있어 2세, 3세 경영으로 물려주는 우리나라 재벌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마스시타 고노스케를 비롯해 도요타의회장 등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경영인이 많은데 우리나라만 유독 그런 분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알기로는 유한양행의 유일한 회장 정도가 기업인으로서 국민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 아닐까싶다.


시크리성으로 이동하면서 겨우 모자 하나를 구입했다. 모자가게를 지나치며 구매 의도를 비치는 순간 조용하던 그 가게는 나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뒤집혀졌다라고 할 정도를 판매원이라 여겨지는 아이들 여럿이 민첩하게 따라 붙으면서 협상이 시작되었다.


인도 맥주와 메이드인 인도 모자


모자 하나 얼마냐고 했더니 1000루피 약 2만원을 불렀다. 그냥 가려고 하니 자꾸 내려가더니 5불(6천원 정도)까지 내려갔다. 그래도 그냥 가려하니 거머리처럼 불어 가격흥정을 해댔다. 결국 3불에 허름한 모자 하나를 구입한 후 관광에 나섰다.


시크리성 입구


이곳은 지난 400년간 버려졌던 유령도시로 1570년부터 14년간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무굴제국 3대 황제 악바르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자 이곳 시크리에 사는 성자 '살림 치스티'를 찾아가 그의 예언대로 후세를 얻게 된다. 이렇게 해서 얻은 아들이 바로 4대 자항기르 황제가 된다.


이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악바르가 살림 치스티의 부탁을 들어 수도를 이곳으로 옮겼다가 14년 만에 다시 아그라로 옮기게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 물부족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수도 이전 때문에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적도 있지만, 이때는 황제의 의사결정으로 간단히 수도를 이전했다가 다시 원복하곤 했던 것이다.


다양한 양식이 섞인 기둥


아무튼 이렇게 설립된 시크리 성은 궁전지역과 사원구역으로 나눠져 있는데, 3키로 정도에 도시의 흔적이 남아있을 뿐 지금은 버려진 도시가 되어 관광지로 명맥을 잇고있는 도시가 된 것이다.


악바르 황제는 서로 다른 문화의 화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종교적인 부분이다. 그의 첫번째 왕비는 이슬람인, 둘째는 카톨릭, 세번째는 영화 조다 악바르에서 등장하는 힌두왕비 조다이다. 각 지역의 문화와 종교를 포용하는 정책에 따라 건축물도 이슬람양식, 아프가니스탄양식, 힌두양식들이 조화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외관은 무굴양식이라도 벽면 석주는 힌두양식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식이다.


다가르 모스크는 이러한 문화융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모스크로 힌두교를 상징하는 연꽃 무늬,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아치가 결합한 독특한 형태의 모스크다.


조다바이 궁전


악바르 황제의 3번째 부인인 힌두왕비 조다 바이 궁전이 위치에 이르렀는데, 이곳 조다 바이 궁전은 왕비의 부탁을 들어 궁전을 힌두식으로 꾸몄다고 한다. 조다 악바르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조다 왕비의 기도소리가 들리는 듯 한 자리에서 지친 몸으로 기둥에 기대어 한 컷을 남겼다.


시크리에서 가장 인상이 남은 건물은 바람의 궁전이라는 판치마할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형식의 5층 건물인데 건물 벽이 없이 기둥으로만 만들어진 건물었고 그 건축물을 이루고 있는 기둥들은 제각기 다르게 디자인 되어 있었다.


판치마할


그리고 모든 궁전에 가면 반드시 보게되는 디와니카스와 디와니 암을 관람했다. 디완이카스는 황제의 개인접견실이고 완이암은 일반인들을 위한 강연이나 모임을 하는 장소이다. 악바르는 개인접견실을 이용하여 4대 종교지도자들과 국사를 논의했다고하는데, 중앙의 기둥은 각 종교의 양식을 혼합하여 장식되어 있었다.


인공 연못


좀 더 이동하니 중앙에 연단이 마련된 사각형의 인공연못도 보였는데 자료에 의하면 이곳에서 전설적인 음악가 탄센이 연주를 했다고 한다. 탄센은 무굴시대 음악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며 탄센이 노래하면 노랫말에 따라 불도 일어나고 비도 내렸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탄센, 인터넷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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