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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Jan 09. 2018

인도기행9, 11개 왕국이 사랑한 델리

꾸뜹미나르, 인도문 기행기

자이푸르에서 이제 델리로 이동한다.


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일이지만 숙박시설의 불을 켜는 위치와 방법 그리고 난방, 욕실 스위치와 작동방법을 통일했으면 좋겠다. 보통 하루 묵게 되는데 겨우 방법을 익힐때면 이미 나갈 때이고, 대체로는 화장실 스위치만 겨우 찾아서 사용하다 나오곤 한다. 세계적으로 숙박업소 콘센트나 전원스위치를 다르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묻고 싶어진다.


6시간 정도 고속도로로 이동했다. 거리는 260키로 정도니 시속 45키로 정도 되는 속도다. 자다깨다 해도 시간이 남아 노자의 도덕경까지 읽게 되었다. 도덕경의 내용이 무의자연에게 배움을 얻자는 철학적인 내용이라 인도의 삶과도 어울려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 여행 가운데 처음으로 한식당으로 가게 되었다. 궁이란 이름의 한식당이었는데 입구에 박진영, 나경원의원 등 여러 유명인이 다녀갔다는 사진이 보였다. 김치찌게, 밥, 파전, 오징어볶음과 밑반찬이 나왔다. 오래간만에 한식을 접해서이기도 했겠지만 생각보다 모두 맛있다며 만족감을 보였다.(결과적으로 나는 다음 날 종일 탈이 났다. 일주일 이상 인도음식을 먹을때는 아무 문제 없던 약한 장에 탈이 난 것이다. 확실히 우리나라 음식의 소스가 강했나보다.)


꾸뜹미나르 입구


식사후 이동한 곳은 올드델리의 '꾸뜹미나르' 유적

델리시내를 통과하며 유적지를 찾아 다니는 일을 쉽지 않았다. 별로 먼 거리도 아닌데도 1시간 씩 소요되고 워낙 무질서하고 교통이 막히고 또한 공기가 좋지않아 마스크를 착용하고도 견디기 쉽지않을 정도였다.


일행들의 말을 빌리면(나도 마찬가지 생각) 델리의 교통은 바라나시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소와 같은 동물이 활보하는 게 거의 보이지 않았고, 반면 자동차는 더 많아져 공기의 탁한 정도는 비슷했지만 질은 더 나쁘다며 두통까지 생긴다고 했다. 하긴, 지난 해 박원순 시장과 시청관계자들이 이곳에 방문했을때 집중되었던 질문이 서울 도심 공기에 대한 것이었다고 한 것이 이해가 간다. 인도의 초미세 먼지는 WTO기준의 40배이고 중국보다 더 심한 수준, 오토릭샤를 비롯한 대부분의 자동차가 경유차인 것도 한몫 하고  지하철이 있으나 아직 불편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대부분 자동차를 이용한다고 한다. 


꾸뜹미나르와 아치형입구 건물


꾸뜹미나르 유적 가까이 가자 황금빛의 우뚝 쏫은 건축물들이 문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유적은 1199년 델리  최초 무슬림 왕인 '꾸뜹 우드딘 아이박'이 힌두국가였던 인도에 승리하고 기념으로 세운탑인데 73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 한다. 지름이 15미터나 될 정도로 웅장한 탑으로 1층에서 3층까지는 사암으로 붉은 색을 띠고 있고 4층에서 5층은 대리석과 사암을 섞어 건립하였다. 내부에 329개 계단이 있으나 낙상사가 있고 난 뒤로는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전까지 관광지에서는 무굴왕국의 유적이라 5백년 쯤 유적이라면 이곳의 유적은 1000년 가까이 된 유적물인 셈이다.

꾸뜹미나르에 진입하 전에 아치형 건물이 있었는데 인도에서 이슬람 건축의 시초로 평가되고 있다해서 한번 더 보고 사진을 촬영을 했다.


힌두신이 삭제된 기둥 조각물


높은 꾸뜹미나르 외에도 주위에 이슬람 왕의 석관묘가 웅장한 건물과 함께 자리잡고 있었으며 과거 힌두교 사원이었다가 이슬람 사원으로 개축한 건물 기둥에는 힌두식의 기둥벽에 있는 신의 형상이 지워져 있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힌두식 사원이 개조되어 있는 중간에 시커먼 철기둥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4세기 굽타왕조의 것으로 알려진 순도 99.9도의 쇠기둥이다. 1500여년 동안 철이 녹슬지 않고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을 현대기술로도 19세기가 되어야 가능했다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지 미스테리라 한다. 


1500년 동안 녹슬지 않는 철기둥


입구에 알라이미나르란 이름을 갖고 있는 짓다만 유적지가 있었는데, 이것은 꾸듭미나르 2배를 목표로 짓다가 이 사업을 추진한 무슬림 3대왕 웃딘이 사망하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되어 24미터 정도의 형체만 남아있다고 했다.


알라이미나르 유적, 인터넷자료


델리는 현재에도 수도이지만 인도에 지리적 입지가 좋아 역사적으로 11개 왕국이 수도로 삼을 정도로 유서 깊은 도시이다. 이렇게 각 왕국이 생길때마다 자신의 왕국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각종 건축물의 전시장이 된 곳이 델리란 생각이 들었다.


델리는 지진도 많은 곳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유적이 보존되어 있는 것이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꾸뜹미나르 유적지를 돌면서도 느꼈던 점은 이렇게 귀한 유적이 너무 많으니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우리들은 편안하게 유적지와 유물을 만지기도 하고 유적물에 앉아서 쉴 수도 있어 좋았지만 우리나라였으면 그 부분을 출입금지를 했거나 유리로 차단한채 관람을 시켰을 정도의 유적물들이었다.


바하이사원


다음은 연꽃사원이라는 바하이 사원으로 갔다.

바하이 사원으로 가는 길도 만만찮았지만, 도착해서도 엄청남 기다림 후에야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은 30여년 밖에 안된 건축물인데 이슬람교 신흥종파인 바하이가 9개의 정신적 길이 있다며 연꽃모양으로 건축한 사원으로 모든 종교에 오픈된 사원이다. 평소 자기 종교만 옳다고 주장하며 강요하는 것은 폭력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온 나에게는 꽤 흥미로운 장소로 기대가 컸던 곳이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델리에 가까이 있어서인지 인도의 대표적 명소인 타지마할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바하이사원


줄을지어 기다리니 마대로 된 쇼핑백 같은 것을 나눠주고 거기에 신발을 벗어 담아 가게 했다. 사원은 거대한 연꽃 모양으로 되어 있었고 실내는 1000개의 좌석이 있어 누구든 앉아서 자신의 종교방식대로 기도를 드리되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소리를 내지 않고 기도를 드리면 된다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인 이 바하이 사원은 이란 출신의 캐나다 건축가 파리보즈 사바가 설계했다고 한다.


세계인을 하나로 상징한듯 ... 바하이 사원 벽면


그리고 예정된 악사르담 사원은 오후 5시까지 밖에 입장 못하는 이곳 원칙 때문에 다음 날로 미루고 인도문을 관광하러 갔다. 가는 길에 대통령궁과 인도게이트로 가는 길도 만만찮았다. 주차를 못해 빙빙돌다가 겨우 자리를 찾아 버스에서 내려 인도게이트로 다가갔다. 인도게이트로 이동하는 동안 넓은 차가 없는 길에는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좌판을 깔고 각종 거리음식과 기념품 등으로 관광객을 부르고 있었고 다른 곳이나 마찬가지로 조잡한 기념품을 들고 우리들에게 달러를 외치는 상인들이 있었다. 틈을 비집고 웅장한 인도게이트로 향했다.


인도문으로 가는 도로


인도에서 길거리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금물인데, 지나가면서 구운 옥수수가 먹음직스러워 농산물인데 별 문제가 있겠느냐 생각하면서 옥수수 한 개를 사먹었다. 단맛이 아주 많이 나는 맛난 옥수수였다. 옥수수를 먹으면서 일행 중 한 분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 분은 인도야말로 다국적 기업 몬산토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되고 있다며 이곳 농산물은 GMO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라며 걱정했었다. 몬산토는 베트남 전쟁시 고엽제를 공급한 기업으로 전 세계 GMO특허권의 90%, 세계 작물 종자 사용권의 67%를 점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저항성 옥수수와 콩을 퍼뜨리고 있는데 이 유전자 조작 작물은 제초제를 뿌리면 주변 작물을 다 말라 죽는데 이들 작물한 싱싱하게 자라게 된다고 한다. 기업 이익을 위해 생태계를 파괴하고 건강을 해치는 농산물을 만드는 주범인 셈인데 인도를 비롯한 세계 대표적인 농업국가들이 몬산토의 조종 속에 들어가고 있음을 안타까와한 것이다.


몬산토관련 이미지, 인터넷자료


인도게이트는 우리의 독립문과 비슷한 기념문인데 우리의 독립문과 비슷하다.  파리의 개선문을 바탕으로 에드윈 루티언스에 의해 설계된 문 모양의 기념비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영국령 인도 제국의 군인 약 8만 5천명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높이 42m의 아치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인도 병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위키백과 인용)


인도문


인도문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서 가이드에게 인도 청년들은 데이트를 안하느냐고 물었더니 이곳은 남녀가 데이트를 하는 문화가 없다고 한다. 언젠가 자료에서 인도는 지금도 95% 이상이 중매로 결혼하며 결혼 후 이혼율이 가장 낮은 국가라고 읽었던 기억이 났다. 인도는 이런 문화 때문에 대놓고 연애를 즐기지는 못하지만 숲이나 어두운 곳을 자세히 보면 연인들이 즐기는 모습이 많이 보일거라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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