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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Jan 09. 2018

인도기행10, 힌두의 자존심 악샤르담

스모그 속의 마지막 일정 리즈가트, 악샤르담, 후마윤 

아침 뿌연 공기를 가르며 이동한 곳은 '악샤르담'이었다. 차가 막힐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의외로 교통흐름이 좋아 너무 일찍 도착했다. 9시 30분부터 입장이 가능하다해서 인근의 '라즈가트'로 이동했다. 라즈가트는 이 나라 국민들에게 최고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마하트나 간디의 화장한 묘다. 간디가 얼마나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는 이 나라 화폐를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화폐에는 간디의 초상화가 들어있다. 비록 그의 의도대로 이슬람과 힌두가 하나되는 나라가 되지는 못했지만 비폭력 무저항의 간디정신은 국민의 의식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고 하겠다. 


리즈가트


묘역은 웅장하지 않고 단아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마치 우리나라 노무현대통령의 묘역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묘역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했다. 신발을 벗고 차가운 대리석을 걸어 마하트마 간디가 안치된 곳에서 잠시 묵상하면서 이런 분들의 정신이 흐르는 인도이기 때문에 인도의 가능성은 우리가 보이는 면만으로 쉽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화폐 루피, 인터넷자료


입구에 공원처럼 조성된 곳에 간디의 동상이 서 있었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이동하면서 이번 여행길에 동행한 80이 가까와가는 노부부와 대화를 나눴다. 이 부부는 아들 둘을 두고 있는데 둘 모두 아이비리그에 있는 대학을 마치고 주립대 교수 등으로 잘 키워놓고 이제는 은퇴후 여행과 독서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사실 여행은 젊을 때는 돈이 없어 못하고 어느 정도 여유가 되면 바빠서 못하고 나이 들어서는 아파서 못한다는데, 이 두 분은 그런 차원에서 우리들에게 큰 희망을 주는 분들이라 생각했다. 


어르신들


더군다나 남편 분은 노트북까지 들고 다니면서 여행을 즐기고 있었고, 아내 분도 젊은이 못지 않은 순발력과 재치로 우리 일행을 즐겁해 해주셨다. 이렇게 멋지게 노후를 보내는 두 분을 호칭하기가 참 어려웠다.  보통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정도로 부르면 되는데 이 두 분에게는 그런 호칭이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 그냥 '어르신' 정도로 불렀다. 여자 어르신(?)께서 나에게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미 40대 중반인 미국에 있는 당신 아들이 여행을 가는 어머니께 했다는 말, "어머니, 여행할 때 어머니 모습을 찍으려 하지 마시고 어머니가 보신 것을 많이 찍으세요..." 여행을 본질을 얘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스모그 속의 악샤르담


이곳에서는 도시의 혼란에 비해서는 사람들간 충돌은 거의 보기 힘들다는 것이 일행들의 일치된 생각이다. 수시로 빵빵거리고 사람이 있든 말든 위협해대는 각종 탈 것들이 서로 뒤엉켜 짜증날 정도인데도 이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들의 삶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각박한 삶이 그들의 모습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도 그들은 싸우는 법이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이 그들의 주 종교 힌두교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보면서 세계 최대의 힌두교 사원이라는 악샤르담으로 향했다. 악사르담에는 카메라, 휴대폰을 비롯해서 아무 것도 못가져 들어간다고 해서 차 안에서 멀리서 보이는 전경을 찍으려 해보았으나 도시 전체가 짙은 안개와 같은 스모그로 가득해 의미가 없었다. 


과연 악샤르담으로 들어가는 절차는 지금까지 각종 관광유적물 입장 중 최고였다. 공항 몸수색보다 더 심했다. 모든 것을 차 안에 두고 지갑 정도만 챙겨 왔는데도 온몸을 더듬(?)었다.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까지 심하게 검색하지?" 중얼거리며 걸어 들어가니 안개막같은 스모그 속에서 악사르담의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악샤르담은 '신의 거주지'란 의미라 한다. 과연 인도인의 자존심이라 할 만한 건축물이었다. 지금까지 아그라, 오르차 등에서 보아온 건물들은 대부분 힌두사원을 이슬람인들에 의해 개조하였거나 이슬람인 양식으로 만들어진 무굴제국의 잔재물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곳은 그야말로 인도인들의 주종교인 힌두교가 주체가 되어 나머지를 포용하는 건물로 만들어진 힌두인의 자존심이 느껴지는 건축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모든 유적물을 제압하고도 남을 만한 건축물이었다. 역시 인도는 '힌두인의 나라야'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건축물이었다.


스와이미나라얀


이 건축물은 1968년에 짓기 시작했는데 지지부진하다가 2005년이 되어서야 완공하여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축물은 전반적으로 밝고 깨끗했다. 라자스탄에서 나오는 붉은 사암과 이태리의 흰대리석을 주재료로 만들어진 이 사원은 높이 43m, 넓이 96m, 폭 109m의 대형 건축물로 외벽에는 동물·식물·무희 등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고, 9개의 돔과 234개의 기둥, 2만여 개 조각상이 새겨져 있었다. 


내부에 들어가니 힌두교의 신의 반열에 오른 '스와이미나라얀'의 탄생에서부터 자라면서 깨닫고 설법하는 과정들이 하나씩 조각되어 있었고 힌두의 신인 브라만, 비슈누, 사바와 그의 아바타들이 형형색색 조각되어 있었다. 또한 인도 베다신화에 나오는 라마야나에 라마왕 시타왕비, 하누만 장군 모습도 인상깊게 새겨져 있었다.


바깥벽 코끼리 조각


바깥에 나와 둘러보니 시바신의 아들의 얼굴이 되었다는 코끼리 조각의 수많은 형상들이 갖가지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어 이곳에서는 코끼리가 신의 반열에 올라와 숭배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건축물을 한바퀴 돌면서 새겨진 코끼리와 갖은 동물들, 식물들을 뒤로 하고 다시 신발을 신으면서 일행들은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이게 바로 인도의 힘이야" 그런데 이렇게 놀랍고 기묘한 건축물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 너무 아쉽다고 하면서 대신 관람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나를 잃어버리면 다른 하나를 얻게 되는 지혜를 인도 악사르담 관람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고 말하면 억지일까?


즐거워하며 반기는 학생들


이제 일정의 마지막 유적지를 향했다. 무굴제국 2대 왕인 후마윤의 묘가 있는 곳이다. 후마윤묘가 있는 곳에 들어서니 역시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오가는 길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행렬이 즐겁다. 이곳 학생들은 하나 같이 밝은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마치 학교에서 시킨게 아닌가 할 정도로 한결같이 기분 좋게 반겨준다. 이런 아이들의 깊고 맑은 눈을 보고 있으면 괜히 즐거워진다. 


후마윤묘는 타지마할 묘에게 영감을 준 묘라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니 타지묘할 묘의 네 기둥을 빼고 색깔은 흰 대리석 색깔에서 붉은 색깔로 변해 있을뿐 거의 같은 모습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타지마할 묘는 아내를 사랑한 샤자한 황제 지시로 만들어진 묘라면 이곳은 일찍 죽은 남편 후마윤을 위해 아내 하지베굼의 지시로 만들어진 묘이다. 타지마할처럼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천국을 상징한다고 의미인데 이때부터 천국개념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후마윤묘


후마윤 묘에는 후마윤과 그의 아내 묘가 있다고 했는데 직접 관람을 해보니중앙에는 석관묘 하나만 자리잡고 있어 합동묘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주위에 샤자한 아들등 150여 왕족들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서 살펴보니 주위의 작은 방들마다 작은 규모의 석관묘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묘는 보지 못했는데 아마도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곳의 묘는 사람이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방치(?)되고 있어 가까이서 사진도 찍고 만져보기도 할 수 있었다.


식당으로 가는길 선거 포스터


후마윤묘를 끝으로 인도관광을 마쳤다.


그리고 마지막 점심으로 '무굴식' 식사를 한다는 곳으로 갔다. 버스에 내려서도 꽤 많은 거리를 이동하여 음식점으로 갔다. 여행의 마지막이라 지쳐서 그랬는지 실제로 멀었는지는 모르지만 꽤 멀게 느껴졌다. 대신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 지역 중산층들로 보이는 부촌들의 거리를 구경할 수 있었다. 도착한 음식점에는 신나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게 무굴식 식당의 모습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데 무굴식 식당의 윗층에 클럽이 있어 그렇다고 했다. 


무굴식과 힌두식의 차이점이 뭔지는 모르지만 이곳 식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탄두리' 치킨이다. 탄두리 치킨은 화로구이치킨이란 뜻으로 우리 나라의 전기구이 치킨 같은 것에다가 소스가 칠해져 있는 치킨이었는데  담백하고 맛이 있었다. 


탄두리 치킨과 소스, 인터넷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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